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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Mar 11. 2024

봄의 소리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고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 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 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신동엽의 <산문시> 중’.   

   



가만히 앉아 창밖을 보자니 소소한 그리움이 생겨나고 잊혔던 산문시도 한 줄 생각나는 시간입니다.  나른한 기지개가 찾아들고 햇살 퍼지듯 기억의 한편 이야기가 몽글거리며 솟아 경계를 허무는 이 평온이 행복합니다.  나의 영역으로 주어진 유리성 안에서의 독재가 이제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은 더욱 확실하게 자기 표정을 짓고 그중 일상도 정확히 여덟 시 안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궁색한 시간의 햇빛은 일찍부터 발산할 길이 없어 안달이군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사람들 사이로 내 영혼을 디디며 사랑을 나누어주다 떠나가는 추운 그대들.     

그대로 지나치기엔 너무 큰 부피로 앉아 있습니다.     


놀이터에 아이들의 그네 타는 소리가 삐걱이고 맑은 유성음이 내 몸속에서 낭랑하게 흘러내립니다.     

옛 리듬을 조용히 만나보고 끝까지 내가 가야 할 길에 서야 합니다.  

   

새들이 지저귀고, 문득  물 냄새를 맡고 싶었습니다.      

비릿하게 살아있는 물을 피부 깊숙이 느끼고 싶었습니다.     

아침부터 고독이 앙금처럼 고인 아스팔트 위를 걸었습니다.     


모두들 내게 따뜻한 입김과 체온을 나눠주는 사람들임을... 목밑으로부터 바짝 치켜드는 그리움을 다시 삼키며 열심히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다시는 쉬이 건너뛰지 말아야지.. 여기 이 자리 이 뜨거운 순간을.


남색풍금을 두드려봅니다.     

투명한 리듬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간직해야 할 음계들을 챙기며 나는 한결 미화된 추억의 장부를 정리하기로 합니다.     


목마름을 위하여 나의 노래들이... 무수한 별들이. 또 그렇게 빛을 내겠지.. 어느 시간엔가..     

모든 것이 희미해지기에 이쯤에서 생존을 위한 숨을 쉴 수 있겠습니다.     

나는 현재 더해질 것도 덜해질 것도 바라지 않으며 포만감 없는 현실에 있습니다.     


용케도 잘 견뎌냈습니다.     

이 계절 방황의 매력 없는 족보들은 그칠 줄 모르더니 어느덧 내 나이를 견고히 흐르는 강이 생긴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우러나오는 냉소가 그 강에 섞여 흐르고 있습니다. 지울 수 없던 노래들도 지워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성의 문을 열어 내 발걸음을 허락하고 그곳에 있어도 좋다는 눈빛을 보내봅니다.    

  

이렇게 이렇게 의미는 소멸하나 봅니다..     

창에는 수십 가지로 솟아오른 고목의 줄기 사이로 꽃이 올라옵니다.    

  

까치집이 보이는 따스한 공간. 탁 트인 창. 속삭이는 이야기, 요란하지 않지만 결코 조용하지도 않은 소소한 평화로움, 세련된 봄이 소곤소곤 스며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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