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놀던 마을이 작아졌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풍경
어른이 되어 방문한 고향은 어릴 때 기억보다 훨씬 작아진 느낌이다. 내 키는 거의 자라지 않았고 나이만 먹었을 뿐인데, 내가 성장하는 동안 어른과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걸까? 집에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던 우체국은 내 기억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내가 다니던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이 작아진 게 분명하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어린이 걸음으로 15분쯤 되었을까? 작은 구멍가게 두 곳이 학교 정문 앞에 나란히 있었고 집까지 오는데 크고 작은 슈퍼마켓들이 서너 군데 있었나 보다. 아이들로 북적북적하던 문구점은 문을 닫은 지 오래인지 상호명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간판이 낡은 세월을 보여준다. 5일마다 장을 서던 시골마을이었지만 근처에 터미널이 있는 읍내에 위치해 외부인들과 오가는 사람이 꽤 많았던 동네였다. 1일과 6일은 다양한 먹을거리부터 식물, 강아지, 고양이, 새 등 구경거리가 많아서 늘 언니와 손을 잡고 장구경을 갔다. 장이 워낙 크게 섰기 때문에 멀리까지 나갈 필요도 없었다. 마침 우리가 고향에 방문한 날 역시 장날이었는데 구경거리가 많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간이식 텐트 몇 개가 설치되어 있고 몇몇 분들이 도넛 같은 간식을 판매하고 계셨다. 그마저도 손님이 뜸했는지 도넛 3개를 1000원에 판매하시면서 서비스로 하나를 더 넣어주셨다. 턱없이 쪼그라든 기대를 접고 시장을 지나 터벅터벅 옛길을 걸었다.
"어? 언니, 저기 봐바! " 반가움보다 훨씬 큰 놀라움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풀빵을 구우셨던 할머니가 같은 장소에서 풀빵을 굽고 계셨다. 낡은 포장마차와 수평이 맞지 않는 기다란 의자, 풀빵을 굽는 할머니까지 기억 속 그대로의 모습이다. 할머니는 국물이 많은 떡볶이와 작은 어묵이 몇 조각 동동 떠있는 어묵국도 함께 판매를 하셨다. 우리는 저 나무의자에 앉아 뜨거운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지. 국화빵보다 무른 느낌의 풀빵은 문제집이나 잡지책의 낱장을 무심하게 찢어 고깔모양으로 봉투를 만들어 넣어 주셨다. 할머니는 마치 어제 본 모습처럼 풀빵을 굽고 계신다. 할머니의 시간은 멈춰진 것일까. 강산이 변하듯 달라진 마을에서 '틀린 그림 찾기'가 아니라 '같은 그림 찾기'인 듯 선명한 모습이다.
언니와 나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풀빵을 샀다. 꼭 언니 손을 잡고 와야만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었던 꼬마가 좋아하던 그 풀빵이다. 긴 시간 잊고 있었던 추억이 발길에 '툭' 채인 돌멩이처럼 튀어나온다.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풀빵 가격 정도일까. 풀빵은 어릴 때 기억의 맛보다 달지 않았고, 너무 뜨거워 한참을 후후 불어 먹어야 했던 것처럼 뜨겁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히 괜찮았다. 더 달콤하고 맛있는 풀빵 가게가 아니어도 우리는 기억 속 그 소녀들과 함께 '바로 그' 풀빵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니까.
옛 동네를 추억하며 걷는 도중 또 한 번 재촉했던 발걸음을 멈췄다. 아빠가 사용하던 차고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이다. 차고의 천막이 찢어져 어설프게 덧붙인 자국도 그대로다. 우리 가족만 기억하는 10여 년 전 아빠의 흔적이다. 흘러간 시간이 무색하게 너무도 건재한 우리의 차고. 튼튼하게 지었다는 아빠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 차고 안에는 새로운 차고주인의 자동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반가움에 <한때는 아빠가 정성 들여 관리했던>, <우리의 차고였던> 그곳을 카메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