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도 심심하니까

우리가 놀아줘야 해.

by 카타


아빠, 언니와 함께 우리 셋은 친구처럼 많은 것을 함께했다. 가족과 보낸 절대적인 시간이 많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많은 일들을 함께 겪어왔다는 의미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공유한 경험이 많기에 우리는 낱낱의 개성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서로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별다른 노력 없이 이해받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축복이고, 가족들에겐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제멋대로 살고 있다. 이해받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언니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을 갖고 싶어 하곤 했다. 그중 하나는 자전거였고, 다른 하나는 당시 유행이었던 조이스틱 게임기였다. 자전거 사고를 걱정하신 아빠는 자전거는 거절하셨지만 대신 '재믹스'라는 게임기를 사주셨다. 재믹스는 재믹스 본체에 게임이 저장된 '팩'이라는 제품을 끼워 넣어야만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아빠와 함께 재믹스를 사러 완구점에 갔던 날, 우리는 3종류 정도의 '팩'도 함께 구매했다. (그중 한 가지는 아주 유명한 게임인 '갤러그'였다. 우리가 자주 했던 게임은 '요술나무' '빵공장' '양배추' 정도였다.)


언니는 신이 났고, 나는 아무 생각이 없던 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 게임기라는 신문물을 접하게 되었다. 언니와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본 아빠는 신기하고 궁금하셨는지 아빠도 한번 해볼까 하시며 합류하셨다. 그 뒤로 우리는 많은 날들을 함께 했다.


가끔씩은 아빠가 먼저 우리 방문을 열고 "게임 한번 할까?" 하시면서 씩 웃으시곤 했다. 나는 게임에 정말 소질이 없었다. 늘 손이 빠른 언니가 1등, 아빠가 2등, 나는 3등이었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한판씩 게임을 했는데 게임에 소질이 없는 나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게임이 끝나버리는 수준이어서 아빠는 몇 판씩 더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반면 언니는 게임을 꽤 잘하는 편이어서 언니 차례가 되면 다음 차례가 되기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항상 즐겁게 게임을 했다.


우리는 늘 해오던 게임이 지겨워지면 아빠에게 새 게임팩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다. 언니와 나는 그때를 돌아보며 게임팩이 지금 생각해도 꽤 비싼 가격이었는데 참 철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철없는 두 자매는 아버지 주머니를 많이도 털어먹었다.



설날 같은 명절에는 기다란 달력에 아빠가 투박하게 그린 윷판을 놓고 윷놀이를 했다. 아빠는 특별히 1등~4등까지 상금을 주셨다. 모든 가족이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다만 아빠는 상금을 주는 주체이기 때문에 윷놀이에 참여하면서도 늘 '적자 재정'인 이상한 명절이었다. "아빠는 항상 적자!"라고 하시면서도 껄껄 웃으시며 윷놀이를 하시는 아빠의 모습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다.


어른이 된 후, 아빠와 쌓은 유대감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감에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정서적 안정감을 검증받은 것 같은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데이터의 표본인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타고난 기질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처럼 예민한 기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이런 통계적 수치에 표본이 아니라 편차 쪽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충분하다. 아빠와 쌓은 유대감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 편차를 현저히 작게 줄여 주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빠 딸이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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