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사진첩을 찾습니다.

잃어버린 것과 잊혀진 것은 다르다.

by 카타

나는 부모님이 만들어 놓으신 가족앨범을 참 좋아했다. 어디에서 찍은 사진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진 속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등 세세한 내용들을 탐색하면서 몇 번씩 넘겨보곤 했다. 부모님과 언니, 우리 가족이 세 식구였던 때의 가족사진을 보면 묘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 기억에도 없는 한 때 모습들을 보는 것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어른이 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처음의 의미는 특별하다. 언니가 부모님에게 특별한 '첫째'였다는 것은 부모님이 찍어주신 사진의 양이 나의 사진보다 훨씬 많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모님에게 이미 자식의 존재가 익숙해진 이후에 태어난 나의 사진첩들은 언니의 사진첩들에 비해 양도 적고 정성도 적게 들어간 것이 한눈에 보여 살짝 섭섭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첩이 나에겐 정말 중요하고 소중한 기록이다.


엄마의 어린 시절의 앨범은 다른 의미로 특별했다. 몇 장이긴 하지만 엄마의 꼬마 때 사진을 보며 나와 어디가 닮았나 유심히 관찰한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내린 엄마가 웃고 있는 사진. 이모와 삼촌들의 어릴 때 모습이 담긴 사진. 다들 모습이 변해서 어린 내 눈엔 구분이 어려워 언니에게 일일이 확인을 요청하기도 한다. 대학시절, 화려한 분장을 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연극무대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시간 속, 엄마가 아니었을 때의 모습이다. 나에겐 모두 낯선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생경한 엄마의 모습이 좋아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처럼 다양한 사진들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앨범 없어?"

어느 순간, 아빠의 사진첩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아빠에게 물었다.

"아빤 없어."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아빠. 아빠만의 특유한 어투로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라는 뜻이 포함된 문장이다. 아주 어렸을 때이지만, 아빠에 대한 또 하나의 선명한 기억이다. 아빠에게 우리처럼 어릴 때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른 가족들이 보관 중이라거나, 분실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


아빠에게 새로운 가족인 우리가 생기기 전까지 아빠의 젊은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사진첩 없는 낱장의 모습으로 이름 모를 상자에 조용히 보관되어 있었다. 대부분 군대를 제대하고 뒤늦게 입학한 대학시절,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다. 흑백 사진 속 아빠는 내가 알고 있는 아빠의 모습보다 훨씬 빼빼 마른 모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1940년대 중반에 태어난 세대에게 어린 시절의 앨범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독특한 이력은 아닐 것이다. 해방이 되고 6.25 전쟁까지 겪어온 세대에게 사진첩을 만들고 보관할 사치스러운 여유가 있는 집이 얼마나 있었을까. 늦은 나이에 결혼 하셨기에 내 나이에 비해 부모님의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한국사의 아픔은 전혀 모르던 어린 시절, 나에겐 아빠의 유년기 시절을 추억할 앨범이 없다는 사실은 몹시 마음 아픈 일이었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록이었지만,) 아빠의 과거 기록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사진이 존재하지 않으면 어른이 되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점차 잃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잊는 것이 아닌,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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