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어린 시절과 재회하다.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by 카타

2004년은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의 해였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상영기간을 늘려 티켓 가격을 반으로 할인하는 이례적인 행사까지 진행하였다. 나는 영화가 개봉하고 난 며칠 후 갑작스럽게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감동적이었다. 눈물을 지나치게 흘린 탓에 얼굴이 퉁퉁 부은 터라 몹시도 민망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그렇게 흥행에 성공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영화계 소식에 매우 무심한 데다가 영화관에 적극적으로 출입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퇴근 후 인터넷 기사로 접한 세상 소식들을 하나 둘 풀어놓고 우리와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하셨다.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나 공연이 우리가 보기엔 어땠는지, 사람들의 평은 어떤지와 같은 내용들을 궁금해하신다. 하지만 대화의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에 관해서는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신 경우가 많았다.


<태극기를 휘날리며>에 대한 아빠의 관심도 그렇게 시작했다. 아빠는 영화보다는 공연이나 음악회 등에 관심도가 높고, 고전영화가 아니면 큰 관심이 없는 분이셨는데 퇴근 후 신발을 벗으시면서 이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때까지 나는 <태극기를 휘날리며>에 대한 아빠의 관심을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에 대한 나의 평을 들으신 이후에도 여느 때와는 달리 여러 번 그 영화에 대해 물어보셨던 것을 평소에 눈치 빠르던 내가 왜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며 상연기간이 길어지고 언론에서도 누적 관람객 수를 다룬 보도가 이어졌다. 영화의 작품성뿐 아니라, 제작비용, 흥행요인을 분석하는 평론 등 모든 게 화제였다.


얼마 후 아빠와 집 근처 쇼핑몰에 들렀다가, 영화관이 있는 층에 잠깐 멈춰 섰다. 아빠는 상영시간표를 꼼꼼히 살핀다. 영화관 자체를 썩 좋아하시는 편이 아닌데 왠지 모르게 평소의 아빠와 다른 모습이다. 아빠는 나만큼이나 성격이 급하고 즉흥적인 걸 싫어하시는 분이다. 미리 계획하지 않는 일정이란 아빠가 정말로 원하는 것에 대한 간곡한 표현인 셈이다. 아빠가 뭔가 망설이는 기색이 있으면 질문을 구체적, 능동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원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보고 싶어?"라고 묻는 대신 "보러 갈까?"라고 묻는 식이다.


"보고 갈까?" 아빠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빠는 내심 보고 싶은 마음을 비치시면서도 이미 영화를 본 나의 기분을 살핀다. 나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다시 본다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한번 본 영화를 가족과 함께 다시 보는 일이 특별한 일도 아니다. 아빠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표를 구할 수 있으면 보고 가자고 하신다. 마침 곧 상영되는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아빠는 왠지 기대하시는 눈치였다. 영화관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아빠는 어떤 영화들이 상영 중인가 꼼꼼히 팸플렛을 둘러보신다. 나는 영화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도 아빠의 마음을 일찍 알아채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보러 오자고 먼저 말하지 않은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사실 2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시작 부분을 정말 좋아한다. 영화는 6.25 참전용사 유해 발굴단의 작업모습으로 시작된다. 발굴된 유해와 유품을 모신 관에 태극기를 씌우고 분향소에서 큰절을 올리는 모습이 나오는 영화 속 장면에서 괜스레 뭉클해졌다. 노인이 된 주인공이 구두 한 켤레를 쓰다듬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딸랑이는 종소리, '오빠는 풍각쟁이야' 노래와 함께 이제 막 근대화를 시작한 1950년 6월 서울 거리로 화면이 전환된다. 과거의 산물과 현대문물이 오묘하게 섞여, 조선과 서양 그 어느 곳의 색깔도 확실하지 않은 서울의 풍경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조화로우니 신기한 일이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이어질 때 살짝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았다. 아빠가 영화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긴 시간 함께하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당황했다. 아버지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상대가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문득 알게 되는 마음이 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순간 깨달아지는 경험들이 있다. 아빠의 눈물을 본 순간, 깨달았다. 아무런 의문 없이 그냥 알게 되는 경험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함을.



아빠는 과거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고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 된 그 시간, 그 장소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아빠는 그 영화 속 다른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아빠가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아빠의 어린 시절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마음 한 구석 풀리지 않을 숙제로 남아있기에 자꾸만 꺼내어 보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반복적으로 들었던 아빠의 이야기를 전래동화 같은 옛날이야기쯤으로 생각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담백하게 풀어놓는 당신처럼 담담한 기억이 되었을 거라고 왜 쉽게 단정 지었을까. 아빠에게는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나의 경험은 짧고 단조로웠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비로소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부터일까, 나는 해외기자들이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 어린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닌, 종군기자들이 찍은 1950년대 헐벗은 빈민국의 아이들 중에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나는 가끔 장난 삼아 아빠에게 물어보곤 했다.

"아빠, 혹시 옛날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아빠 어린 시절 모습을 기억할 수 있어?"

"모르지~" 짧지만 아빠 특유의 말투로 대답한다. 가끔씩 내가 특이하고 황당한 질문을 하면 아빠는 시답잖은 소리 한다는 느낌을 살짝 담아 싫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한다. 짧지만 무심한 대답은 아니다. 가끔은 그런 아빠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자주 있었다.


언젠가는 질문을 바꿔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혹시 아빠 어릴 때, 이상한 어른들이 카메라 들고 아이들 모아놓고 사진 같은 거 찍은 기억 없어?"

곰곰이 잘 기억해 보라고, 혹시 종군기자들이 아빠 어린 시절을 찍어갔을지 모른다고 진심을 눌러 담아 장난스럽게 아빠를 채근했다. 역시나 나이차이 많이 나는 둘째 딸의 황당한 질문에 아빠는 씩 미소를 지으시고는 싫지 않은 표정이다. 어쩌면 아빠는 곰곰이 기억을 되돌려 곱씹어 보거나, 나처럼 종군기자들의 사진들을 검색해 그 안에 담긴 아이들의 표정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늘 상대방의 말을 꾹꾹 눌러 담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분이니까.


아직도 6.25 전쟁 당시 사진들을 볼 때마다, 그 시간 아빠 나이었을만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관찰한다. 사진 속 어린아이들은 이제 80이 훌쩍 넘어 누군가의 부모가 된 지 오래일 것이다. 멈춰진 시간에 존재하고 있는 그 아이들의 아픔도 흐른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을지, 사진 속 모습처럼 멈춰져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때늦은 걱정도 해본다. 나의 쓸데없는 생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저 어린 시절의 모습 중에 아빠가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정말 혹시나, 만약에 아빠의 모습을 내가 알아볼 수 있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는 쓸데없는 걱정 하나를 더한다. 아빠의 어린 시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만으로 머무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네 하는 더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지만, 곧 이마저 다 상관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나는 그냥 단지 아빠를 더 긴 시간, 오래도록 보고 싶을 뿐이다.

어린 시절의 아빠모습에 대한 궁금함보다도 나이 먹은 아빠의 모습이라도,

어느 때 어느 모습이건 상관없이,

그냥 아빠를 다시 만나 황당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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