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때까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억의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까지 인지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보통은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그날의 기억이 몇 살 때쯤인지 짐작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진으로 보고 알게 된 사실을 경험 자체를 기억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기억은 언제가 처음일까? 중요하지 않은 일이지만 가끔씩 이런 특이한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껌딱지처럼 언니만 쫓아다니는 통에 언니가 나를 몹시 귀찮아했던 기억,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이불을 무릎에 덮고 텔레비전을 보던 일상의 기억,
성당에서 열린 크리스마스이브 행사 도중에 깜박 잠이 들어 집에까지 엄마 등에 업혀 왔던 기억,
수많은 기억들 중에 어느 기억이 나의 첫 번째 기억인지,
이 궁금함은 아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나에게 어떤 기억은 파편같이 조각이 난 상태로 머릿속을 떠돈다.
조각난 기억은 나머지 파편들을 찾아 나선다.
퍼즐처럼 완성하려고 노력하지만 혼자만의 기억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기억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온전히 완성된 기억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없을 것이다.
어떤 기억은 모든 감각이 소거된 채 역사서의 기록처럼 사건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도 있다.
나에게 특별한 기억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기억이다.
나는 분명 그 경험의 주인공인데도 마치 관찰자처럼 나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배경, 나의 기분과 상대방의 목소리 톤까지 하나의 장면으로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행복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추억들이 많다.
언니와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렸다. 12월은 특별히 착한 어린이가 되는 달.
우리는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다짐과 함께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산타할아버지에게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어느 해 크리스마스날, 새벽에만 오신다는 산타할아버지를 올해는(!) 꼭 만나고 자겠다는 생각으로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면서도 잠자리에 들지 않는 나를 달래며 아빠는 산타할아버지가 오면 꼭 깨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꼭 깨워준다는 다짐을 여러 차례 확인한 후, 깊게 잠이 들었다.
새벽녘 아빠가 나만큼이나 작은 목소리로 나를 깨운다.
"카타야 카타야.."
아주 어린 날의 기억이지만 그날의 아빠 목소리가 선명하다.
"산타할아버지가 바빠서 우리 카타 못 보고 가서 정말 미안하대."
산타할아버지의 바쁜 근황을 전하며 자고 있는 내 가슴에 커다란 선물을 놓아주는 아빠. 잠결이었지만 올해도 산타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는 속상함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아빠에게 칭얼거렸던 기억.
기도까지 한 정성으로 받은 선물이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그날의 온기만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