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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유지향 Feb 01. 2024

유리문의 오역에 관하여

  당겨야 열리는 문 앞에서 나는 자주 있는 힘껏 밀어붙인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 앞에만 서면 나는 자주 오역을 하고 만다. 번번이 커다란 손잡이 바로 옆에 떡하니 ‘당기시오’라고 쓰여 있는 빨간 글씨는 크기에 상관없이 봤어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밀어붙이고, 못 봤으니 밀어붙이는 건 당연지사다. 한 손으로 밀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싶으면 나머지 한 손을 보태어 낑낑대며 밀어재끼는 수고를 마다치 않는다.

  애당초 당겨야 열리는 문이었으니 제아무리 힘이 센 천하장사가 와서 민다고 열릴 문이 아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말간 유리문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오역을 일으키게 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것은 유리문이 아닌 문은 당기라면 당기고 밀라면 밀어 단번에 문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시작되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유리문의 속성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유리문은 유리로 된 문이다. 즉 경계를 짓고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 문이면서 유리의 속성을 함께 지녔다. 유리는 내부와 외부를 나누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통하는 것처럼 꾸밀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따라서 유리문은 경계를 나누되 경계가 없는 것처럼 꾸밀 수 있다. 마치 안과 밖이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속임수를 쓸 수 있는 능력을 내 앞에서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온몸에 순수함을 풀장착한 나는 그의 발칙한 속임수에 매번 속아 넘어가고 만다. 유리문 앞에 다다르면 내 손은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동작을 한다. 그 사이 눈은 유리문 안쪽 구석구석을 스캔하느라 사방팔방으로 레이저를 쏘아 댄다. 손이 우직하게 문 앞에서 손잡이를 잡고 밀어붙일 동안 눈은 문 너머의 휘황한 세계에 정신이 팔려있다. 빛을 투과하는 유리의 성질에 홀딱 반한 눈은 막혀있지만 막혀있지 않은 유리문 안에 이미 도착해 있다. 눈은 투명한 유리문을 통과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손은 아직도 손잡이를 밀어붙이는 중이다. 결국 유리문 앞에서 손과 눈이 시간차를 두고 유리문을 통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다급해진 손은 자꾸 헛손질을 해 댄다. 손과 눈 둘 다 내 몸에 달려 생사고락을 함께한 지 반백 년이 넘었는데 호흡이 척척 들어맞지는 않는다. 종종 그 둘은 유리문 앞에서만은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엇박자를 타는 것이다.     

  다음으로 에너지 효율성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보겠다. 당기는 것은 미는 것에 비해 더 많은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행위다. 당기는 행동은 손잡이를 잡은 손의 손아귀와 손목 그리고 팔에 골고루 즉각적인 힘을 주어야 한다. 손가락 하나만 톡 갖다 대면 저절로 스르륵 열리는 자동문이 아니고서는 당겨서 문을 여는 것은 밀어서 여는 것보다 비효율적인 행위이다. 나는 에너지를 충전하기 무섭게 방전되는 오래된 배터리팩이어서 가성비가 많이 떨어진다. 교체를 해야 한다거나 충전이 필요하다는 경고표시등이 깜빡거리는 주기가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짧아지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힘을 써서 최대치의 결과물을 얻어 누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수년 전 망육望六에 접어든 연세라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한글로 ‘당기시오’ 라거나 ‘미시오’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유리문의 오역은 대체로 적당한 선에서의 밀고 당김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영어로 적힌 ‘pull'과 ‘push' 앞에서는 오역의 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국어는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영어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파벳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국어와 영어의 학습 기간은 무려 6년이라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나보다 다섯 살 연상의 남편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수세에 밀린다 싶으면 온몸에 장착하고 있던 나이를 무기로 삼는다. 자기가 지성의 전당에서 전공영어공부에 매진할 때 단발머리 중학생인 나는 겨우 알파벳 필기체 정도나 쓰고 있었겠다며 기다란 시간의 줄자를 내 앞으로 들이밀곤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이 내게 들이미는 전천후 만능 무기인 오 년에 일 년을 더한 시간만큼 국어보다 짧고 얇은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의 비례 법칙에 따라 교육받은 기간이 길면 길수록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닮아도 너무 닮은 ‘pull'과 ‘push' 같은 영어가 쓰인 유리문 앞에서 오역이 한참 길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나의 유리문의 오역은 유리문의 발칙한 속임수에 의한 몸의 반응 속도의 차이,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공짜심리 법칙과 시간의 비례 법칙이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수수께끼 같다거나 미스터리한 현상이 절대 아니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엄벙덤벙거리는 경향이 있다거나 허당미가 철철 흘러넘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따라서 앞으로는 나의 유리문의 오역에 대하여 매번 구구절절한 변명거리를 찾으려고 동동거릴 필요가 없다는 명쾌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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