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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언영 May 19. 2021

나 자신을 보살피지 않은 '벌'

‘누가 나 좀 돌보아 주었으면 좋겠어 ‘

얼마 전 딸들 앞에서 ‘누가 나 좀 돌보아 주었으면 좋겠어’하며 엉엉~ 울어댔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친 거지 싶어 스스로 당황스러웠다. 이상한 가슴 통증과 더불어 철렁 내려앉는 증상이 계속되어 검색해 보니 부정맥을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한다.


부정맥이라면 심장 질환인데, 그럼 심장 질환이면 어느 날 갑자기 갈 수도 있는 건데, 그럼 나의 두 딸들은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런데 왜 그리 서러운지..


이런 우울감이 며칠 동안 계속되더니만, 어느 날 간절히, 뱃속 깊은 곳에서  ‘누가 나 좀 돌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다가 발에 무엇이 걸려 휘청거리며 돌아보니 ‘나는 없었더라’ 같은 거다. 


삶의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로 인해 힘들어하고 상처 받은 ‘나’는 없었고, 무조건 아이들 지켜야 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거 같다.


내 새끼들!! 암탉이 알을 품 듯, 거칠고 센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나는 내 새끼들이 피해 입고, 

힘들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은 듯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


6년 전 남편이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한국으로 일터를 옮겼을 때,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그래서 우리 셋,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다.


아이들이 그런다. 아빠가 한국으로 간 전, 후의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다고.. 그럼 된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힘들었고, 상처 받은 내 마음은 다독이지 못했다.


적어도 남편 붙들고, ‘나는 당신이 가는 게 싫어, 불안하고, 마치 아이들과 내가 버림받은 느낌이야. 가지 마’라고 나의 이야기를 했었더라면… 

나는 그 대신 말도 못 하는 분노를 그에게 쏟아부었다. 상처 받은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게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버린 채 말이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결국 남편과는 헤어졌고, 그 이후 더욱 억척스럽게 살아왔다. 이혼한 부모라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더 열심히 아이들 건사하며 으쌰~ 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에서야 그게 과연 제대로 된 내 삶이었을까? 싶다. 그게 아이들을 건사 안 하고 나만을 위하는 건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 있지 않고, 아이들만 위한 삶을 살아왔다. 


‘엄마는 괜찮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너희들이 정말 귀하고 소중해’라는 게 나를 엄마로 둔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것이었을까? 싶은 의문이 이제야 든다.


자신이 있었고, 내가 강한 줄 알았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며칠 전, 내가 지금 이렇게 아픈 이유는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아가, 그동안 나에게 버림받아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나를 돌보는 게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삶의 중심을 나 자신에게 두려고 해 볼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그 무엇도 결국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그런 중심을 가지고 다시 살아보고자 한다.


그동안 힘들었고, 상처 받았던 나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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