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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슴슴하게씀 Jan 09. 2022

힘 빼고 살기

20220109

20220109 힘 빼고 살기


고등학교 때 농구 동아리에 들어갔다. 내 워너비는 레이 알렌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폼으로 3점슛을 쏘던 당대 최고의 슈터였다. 그런 그의 영상을 보며 슛을 연습했다. 그러다 대회에 나갔다. 경기 중 자유투 기회가 왔다. 차분하게 던지자. 차분하게. 발끝은 골대를 향하게. 무릎 반동을 이용해서. 손목 스냅도 잊지 말고. 온몸의 움직임을 생각하면서 자유투를 던졌다. 휙. 공은 골대에도 닿지 않았다. 그날 한 골도 못 넣었다.


운동을 잘 못한다. 몸이 뻣뻣하다. 남들은 쉽게 익히는 동작을 따라 하는 데에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체육 시간마다 곤혹스러웠다. 여러 종목들이 하나같이 어려웠지만 그중에도 배구가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토스를 배우는데 내가 못하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라 했다. 어깨에 힘을 빼라고 했다. 아니 저는 그 힘 빼는 걸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운동 신경을 타고 난 사람이 부럽다. 그런 사람은 뭘 하든 동작이 가볍고 요령이 있다. 처음 겪는 상황도 배운 것을 곧잘 응용해서 대처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 거냐 물으면 십중팔구 그냥 하다 보니까 되더란 답 밖에 들을 수 없다. 실제로 그냥 하니까 되는 사람이기에 해줄 수 있는 대답도 그게 최선인 거다. 그 사람은 그냥 하면 되는 거고 나는 그냥 하면 안 되는 것뿐이다. 재수 없지만 별수도 없다.



운동 신경 좋은 사람보다 더 부러운 사람이 있다. 행복을 타고 난 사람이다. 처한 상황과 무관하게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 물론 매 순간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은 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잘 산다. 본인은 행복한 줄 모르고 사는데 옆에서 보면 분명 행복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비결을 물어봤자 그쪽에서 해줄 수 있는 뾰족한 답이 없다.


나는 늘 힘을 빡 주고 산다. 지금이 최선인지, 뭘 해야 나아질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에 잔뜩 들어차 있다. 그 고민은 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에 따른 해결방안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머리를 굴려 개선의 여지를 찾고 적절한 방책을 실행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를 찾고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 속에서 해답을 찾거나 혹은 좌절한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행복한 사람은 옆에 앉아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생각한다. 뭐가 문제야.


자꾸 힘이 들어간다. 지금 행복한지, 뭘 하면 행복할지, 이쯤에서 행복을 느껴도 되는지 스스로 검열하며 산다. 그렇게 행복하고 싶다고 티 내고 사니까 행복도 내가 부담스러워서 거리를 두는 것 같다. 좇을수록 멀어지는 상황이다.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의식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눈을 깜빡이고 숨을 쉬고 침을 삼키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이다. 만약 의식하게 된다면 일상생활을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냥 생각해보니까 오늘 하루 눈도 잘 깜빡이고 숨도 잘 쉬고 별 탈 없었던 걸로 지내야 한다. 행복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별생각 없이 살다가 돌아보니까 행복했던 거다. 지금처럼 행복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산다면 불행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마치 도를 닦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원하는 걸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니.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체육 시간에 토스를 못 했던 건 내 잘못이 아니다.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사람에게 힘을 빼라고 말하는 건 도를 닦으라는 것과 같은 요구였다.



어렵겠지만 힘 빼고 살아보겠다. 행복을 애써 의식하지 않겠다. 어찌 그리 행복한지 남에게 묻지 않고 어찌 이리 불행한지 나에게 묻지 않겠다. 행복이 뭔지 모르는 척하면서 살다가 진짜 모르게 되는 경지에 오르는 걸 목표로 삼겠다. 그럼 언젠가 나도 멋들어지게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냥 살다 보니까 되던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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