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슴슴하게씀 Jan 02. 2022

올해는 다르다

20220102

20220102 올해는 다르다


새해를 맞아 연간 목표를 세웠다. 올해 해야 하는 몇 가지를 정리했다. 고심하면서 간추렸다. 이제 실행에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전에 작년 목표를 얼마나 이뤘는지 보려고 다이어리를 한번 열어보았다. 소름이 끼쳤다. 올해 목표가 작년 목표와 완전히 똑같았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목표도 재작년 목표와 별 다를 바 없었다.



거의 모든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에는 ‘운동’ 그리고 ‘영어공부’가 적혀 있을 것이다. 하나 더 꼽자면 ‘저축’이지 싶다. 이럴 거면 애초에 다이어리를 만들 때부터 그 세 가지를 첫 페이지에 새겨 놓고 파는 게 맞다. 그럼 한참 고민 끝에 올해는 새로이 작정한 듯해놓곤 뻔뻔스럽게 작년과 똑같은 목표를 적을 필요도 없다. 시간도 아끼고 잉크도 아끼는 일이다.


올해도 작년과 같은 세 가지를 새로운 마음으로 적었다. 그 새로운 마음조차 작년 이맘때와 같다. 달라진 바를 굳이 찾아보자면 목표를 적어 놓은 글씨가 좀 더 진지해졌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똑같은 행동을 매년 반복하면서 정작 실제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늙어가는 게 내 인생일까. 진짜 그런 걸까.



사람은 살면서 사람이란 게 잘 바뀌지 않는 동물임을 배운다. 사람들은 평소에 잘하지 못하다가 뒤늦게야 이번에는 진짜 잘해보겠다고 말하곤 한다. 비장한 표정과 말투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다가 얼마 못 가 역시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실망한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실망하는 순간은 비장한 결심을 선언했던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었을 때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실망만 하면서 살아왔다. 올해는 운동과 영어를 잘해보겠다고 다짐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 결과 야트막한 산을 내려올 때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외국인을 만나면 원체 작은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듯 더 작아진다. 겁이 없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자 했지만 사소한 문제에도 시야가 좁아져 불안해하고 늘 미루기만 한다. 여태껏 수백 수천번의 결심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처음으로 결심을 하기 전의 나와 엇비슷하다. 사람이 참 한결같다.



실망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에는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된다. 연인들은 보통 그렇게 헤어진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과 헤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그 지점에서 시작할 생각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제와 오늘이 180도 다른 사람은 상대하기가 거북하다. 그래서 1도씩만 야금야금 움직일 계획이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탁 원상 복귀되면 어떡하냐고. 그런 상황에 다 때려치우게 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두 가지 말이 준비되어 있다. 너 이 녀석 참 사람답구나. 그래도 올해는 다르다.



지난해 끝맺음이 썩 좋지 않았던 친구와 연말을 보냈다. 친구는 난항을 겪은 후 새 출발을 앞두고 있는 중이었다. 그와 와인잔을 부딪히며 건배사를 읊조렸다. 올해는 다르다.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보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에 공감했던 것이다. 그 해결 방안으로 세운 취기 가득한 건배사였다.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며 또 결심했다. 올해는 다르다. 사실 이 말은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이 매년 시즌을 시작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참고로 이 팀이 마지막으로 우승한지는 30년이 넘었다. 이 팀을 응원하며 몇 년째 열렬하게 속아서 올해는 다르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어쩌면 단숨에 확 달라지는 그 쉽지 않은 일을 보고 싶어서 정이 든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서, 올해는 다르다. 아 진짜로.


작가의 이전글 고요한 밤, 비루한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