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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Apr 18. 2024

그녀의 그림자 1

인륜지대사

하나! 둘! 셋! 찍습니다. 뷰티풀! 네, 잠시만요. 그대로 계시고요. 다음은 부모님 모시고

올게요. 그리고 형제 가족 분들 준비해 주세요. 그렇지요. 예 그러고 계시면 돼요. 아주

자연스러워요. 신부님 오늘 너무 예쁘시다. 자 그대로 한 번 더! 활짝 웃으면서, 아이고 신랑 분

너무 경직됐어요. 어깨에 힘 좀 빼실게요. 오케이, 좋습니다. 카메라 보세요! 찍습니다!


언제나 뻔한 드라마 속 대사 같은 말. 너무도 진부한 시나리오. 그것이 나의 직업이고, 남의 행복을

엿보며 살아간다. 나는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 신부를 가깝게도, 멀리도 볼 수 있다. 신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신부의 눈매를 보며 상상을 시작한다. 이십여 년 혹은 고작 삼십여 년

남짓한 그들의 인생.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눈가의 주름은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촘촘한 주름은

잦은 웃음으로 생겼다. 웃을 일 많았던 집안이다. 오늘의 결혼은 더 많은 웃음을 줄지.. 

이제는 웃음 따위와 멀어 질지.. 살아보면 알 일이다.

많지 않은 주름에 폭이 넓다면 웃을 일 별로 없었던 것. 

눈썹 끝 처진 주름은 사연 많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올라간 주름 끝은 이야깃거리 없는 

심심한 분위기였을 거라는 걸 말한다. 관상도 결국은 경험이다. 매주 수 백명의 얼굴과 마주하다 보니 

데이터 베이스는 쌓이고 나는 젊은 주름에서 인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눈가의 주름을 관찰하는 게 흥미롭지만 관찰할 시간은 길지 않다. 화장으로 주름을 덮어 버리기

전에만 허락되는 짧은 시간. 그 시간 속에서만 나는 그들의 주름을 관찰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화장 전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게 유행이 됐다. 신부가 일상의 모습에서 아름답게 

변화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 시작됐으리라 짐작되는데 나에게는 예상치 못한 흥밋거리가 되었다. 

젊은 여자의 주름을 들여다 보고 사연을 상상하는 건 나의 비밀스러운 기쁨이다.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연기가 아닌 솔직한 웃음이 내 얼굴에 스쳤을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결혼식장에 간다면 사진사를 눈여겨봐라.. 신랑, 신부만큼이나 하객들 앞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내 기쁨을 들키지 않으려 카메라를 좀 더 얼굴에 밀착시키고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신부의 이모다.


"여기요! 사진사 양반 너무 신부만 찍지 마시고 이쪽 들러리들도 좀 찍어 주세요!" 

들러리라고 그냥 병풍 역할만 할 순 없잖아!"


주변에 있던 친지들이 크게 웃는다. 

이 집안의 코미디언은 이 여자다.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험인물.

잘 다루면 내편에서 도울테고 이 여자 눈 밖에 나면 내 험담을 

신부가 이혼할 때까지 할 요주의 인물이다. 프로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예, 그럼요. 들러리가 있어야 신부가 돋보이는 날이죠." 대충 자동으로 맞춰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정도의 사진만 찍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결혼 사진사는 온종일 장소를

이동해 가며 사진을 찍는다. 아침부터 신부의 화장, 머리 손질부터 찍기 시작해 식장으로 이동해

혼례를 찍고, 식이 끝난 후에는 만찬 겸 연회 행사까지 찍어야 한다. 

사진사는 지친 몸이지만 끝까지 미소를 띠어야 한다. 프로가 쉬운 게 아니다.

신랑, 신부는 물론 하객, 가족, 일하는 사람 모두가 지칠 때쯤 그들이 말하는 인륜지대사가 끝난다.


그런데.. 진정한 인륜지대사는 이혼이 아닐까?

만남보다 어려운 게 헤어짐 아닐까?

신랑, 신부의 만남보다 어려운 게

남편, 아내의 헤어짐 아닐까?

만날 땐 좋았지.. 하지만 헤어질 때는..

처남, 처제, 매형, 매제, 사돈의 팔촌까지 온갖 인물이 신경에 거슬린다.

나의 적들이 가족수만큼 늘어나니 당연히 신경 쓰인다.

눈가의 주름은 과거만을 알려줄 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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