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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Apr 01. 2024

부유하는 상처 5

소문

오랜만에 고등어를 사 왔다. 집안에 냄새 배는 게 싫어 잘 먹지 않는 음식인데 손자가 먹고 싶단다.

미국에서 자란 애가 별게 다 먹고 싶네라는 생각을 하다가 사돈집에서 먹어봤겠지라고 지레짐작했다. 갑자기 술 좋아하는 사돈네가 생각나, 유쾌하지 않은 마음으로 생선 손질을 시작했다. 어두워진 눈이 세심해진다. 배를 갈라 내장, 아가미를 엄지 손가락으로 밀어내고 칼로 내장을 쓸어냈다. 포를 뜨듯이 반으로 펼쳐 조심스럽게 잔가시를 제거하고 기왕 시작한 거 깔끔하게 끝내자고 다짐한다. 쓸 일 없던 굵은소금을 한참 찾아야 했다. 손질한 고등어에 소금을 뿌리고 채반에 올려놓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던져 놓고 엄마의 잔소리 전에 손을 씻으려던 참이었다.

마당의 수도에 허리를 숙이는데 앞집에 사는 원식이 엄마가 숨을 몰아 쉬며 쏟아지듯이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엄마 계시니?" 말은 나에게 하며 턱으로 문간방을 가리키고, 입모양으로 있어?라고 물었다.

쪽마루 밑에는 신발이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 엄마! 원식이 엄마 오셨어!"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마당 옆 부엌에 있던 엄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 숨 안 넘어가! 왜?"

원식 엄마는 촐싹거리는 걸음으로 엄마를 부엌으로 되밀며 들어갔다. 좀 전까지 목청을 높이던

두 여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방에 들어 가 라디오나 들으려는데 벽을 타고 낮은 소리가 들렸다.

미스 신 얘기가 언뜻 들린 거 같아 벽에 귀를 갖다 댔다.

"아 그렇다니까 12시가 다 된 시간에 이 집으로 들어가던 게 저 아래 중국집 짱개라니까.."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알고 계셨어?" 엄마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들리는 건 원식 엄마의 목소리 뿐이었다.

"내 그 여자 그럴 줄 알았다니까.. 아니 알면서도 그냥 놔둘 거야!, 어쨌거나 요즘 젊은것들이 그렇다니까..

어찌나 남자들을 홀리는지.... 이제 짱개까지.."

원식 엄마의 혼자 말과 혀 차는 소리가 귀에 털썩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동네 길 쪽의 창문을 두드리는 손, 무게가 느껴지는 발걸음. 아무리 조심해도 소리를 만들어 내는 빗장은 귀신이 아닌, 짱개였다. 중국집을 다섯 개나 갖고 있다는 중국 사람이었다. 중국집 짱개라 불리던 사람을 중국집에서 보는 일은 드물었다. 어쩌다 동네에서 보게 되면 언제나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이었다. 덩치도 동네에서 가장 컸다. 아저씨들의 수군거림이 질시 때문이었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다.


나의 가을 소풍날 미스 신은 이사를 갔다.

소풍에서 돌아오니 문간방은 비어있었다. 이른 여름 짐을 풀었다가 가을에 짐을 싸 나갔다.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 전셋값을 돌려줘야 한다고 아빠는 당황했다.

"아 그러길래 왜 갑자기 잘 사는 사람 내보내고 그래!"

"동네 사람들이 엔간해야지요!"

"뭐 라들 그러는데?"

"젊은 년이 유부남 짱개 하고 놀아난다고 얼마나 수군거린 지.. 알기나 해요! 남자들이 더 했다니까!"

"됐다, 됐어 애들 듣겠다. 목소리 낮춰!"

나는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마루에 굳어진 채 움직이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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