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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Hong May 17. 2024

극장이 사라졌다.

내 탓이다.

추억의 장소가 또 하나 사라졌다.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극장이었다.

세상 바뀌는 거 어쩔 수 없다 해도 아쉬움이 가라앉지 않는다.

내 탓 같기만 하다.

영화를 방안에서만 즐긴 탓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마지막으로 극장을 갔던 게 작년 여름이다.

그동안 영화를 안 본 게 아니었으니, 많은 영화를 거실 소파에 누워 본 거였다.

참고로 나는 넷플릭스, 디즈니, 파라마운트, 아마존, HBO에 가입되어 있다.

극장 주인이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문을 닫는다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극장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말하고 싶다.

울고 웃던 소중한 장소니까.


극장 말고는 현실도피 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던

옛날 옛적부터 시작해..

만남의 장소는 대부분 어느 극장 앞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던 때,

그 누군가에게 바람맞고 씩씩거리던 때가 있었다.

기다리던 영화의 개봉 소식에 흥분과 떨림을 억누르며

극장 간판을 바라볼 때도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겠지만,

주먹만 한 매표소 구멍을 사이에 두고 직원과 기싸움을 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가운데에서 조금 오른쪽 자리로 주세요!"

"2층은 싫은데요."

"왼쪽은 자막이 잘 안 보인단 말이에요!"

한글 자막이 오른쪽 귀퉁이에 세로로 나올 때였다.

친구 중에는 "아가씨 몇 시에 일 끝나요?"를 물은 녀석도 있었다.

매표소 구멍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놀랍게도

"너 죽을래!"였다.


오늘 이 영화를 안 보면 인생이 끝날 거 같아 암표를 구입한 적이 있고,

단속반에 쫓기는 암표 장사 아주머니를 대신해 극장표를 사준 적도 있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며 쥐포를 내밀었다.

어둠을 틈 타 은근슬쩍 썸녀의 손을 잡으려 했던 객기 아니 용기도

당연히 극장 안이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 영화를 보고 있게 되고

그 아이는 이제 대학생이 되어 나보다는 친구들과 영화 보는 걸 즐긴다.

나의 개인사가 극장과 연결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두컴컴한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유를 느꼈다.

영화의 길이만큼 모든 걱정을 뒤로할 수 있었다.

이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극장 밖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때가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지고 억지로 극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추억으로 느껴져

다행이긴 하다.


어수선한 극장 내부


영화를 좋아하고 그만큼 극장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극장과 멀어졌다. 뒤돌아보니 내가 너무 멀리 와 있다.

극장표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예매를 하란다. 자리를 고르란다. 누워서 볼 수도 있단다.

술도 판단다. 누워서 술을 마시란다.

가격이 비싸졌다.

그래도 아쉽기만 하다. 슬프다.

극장이 사라지고 있다.

텅 빈 주차장이 쓸쓸하기만 하다.


집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

너무너무 편하다.

하지만

극장을 위해 가끔은 극장을 찾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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