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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y 30. 2024

초등 1학년 교사의 삶

등굣길 시간표에 적힌 낯선 낱말 하나에 소란스러워진다. 

“통일이 뭐예요?”

“응 이따가 수업시간에 가르쳐줄게.”


“선생님, 창체 밑에 쓰여 있는 통일 그거 뭐 하는 거예요?”

“그거 뭐 하는 건 아니고 오늘 공부할 거야.”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통일이 뭘까요?”

“그래, 진짜 궁금한 건 알겠다. 나도 진짜 통일 때문에 오늘 힘들다.”

‘통일’ 글자는 왜 써가지고 이 난리를 만들었나 모르겠다. 

인내심이 아주 필요한 1학년 교사.  


“선생님, 저 화장실 가도 돼요?”

“응. 다음부터 쉬는 시간은 묻지 말고 가.”


“선생님, 저 손 씻고 와도 돼요?”

“응, 밥 먹기 전에 손 씻는 건 이제 안 물어도 돼.”


“선생님, 물 마셔도 돼요?”

“응. 목마르면 언제든 물 마셔도 돼. 담부터 묻지 말고 그냥 먹어.”


하나에서 열까지 다 물어보고 확인받는 아이들. 

“선생님 지금 똑같은 말에 여러 번 말해야 해서 진짜 힘들어.”

“히히, 우린 하나도 안 힘들고 재밌어요.”

먼 훗날 사리가 열개쯤 나올 것 같은 1학년 교사  


드뎌 창체 시간.

여덟 살 아이들은 어느 수준으로 통일 교육을 해야 할까?

짧은 만화로 접근해 봤다. 

“색깔 때문에 나눠졌던 초콜릿들 

벽이 없어져서 이제 자유롭게 만나겠지?

우리 이야기야.”

일본에 점령당했던 이야기, 그리고 전쟁과 휴전,

이산가족 이야기를 해줬다. 

너무나 진지하게 듣는다. 

네 살에 헤어진 아들을 아흔 살 할머니가 되어서 만나는 

몇 년 전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여줬다. 

“선생님, 슬퍼요. 마음이 이상해요.”

“저 할머니는 이제 돌아가셨을 것 같아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도 들려줬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가족이랑 헤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괜히 ‘통일’ 배웠어요. 슬프고 속상해요.”

그런데 아까 전부터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가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왜 전쟁을 한 거예요? 말로 하면 되잖아요. “

“맞아, 너희들처럼 말로 하면 되는데 총 들고 싸우는 어른들도 있어.”

“그럼 저는 어른 안될래요.”

웃음이 나온다. 

“너희들이 어른이 됐을 땐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었으면 좋겠어.”

학습지 속 분단 장벽에 예쁜 평화의 메시지로 그림을 그리자고 했다. 

아이들의 마음이 알록달록 채워져 있다. 

여덟 살 순수한 마음에 늘 감동 먹는 1학년 교사.  


'할머니의 용궁여행'을 읽어줬다. 

경상도 바닷가 할머니랑 둘이 사는 아윤이.

“선생님이 경상도 사투리로 할머니 목소리 내줄게.”

낯선 어투가 재밌는지 이야기에 쏙 빠져든다. 

“우리 바다에 플라스틱 같은 거 버리지 말자.

바다는 우리의 생명줄이야.”

“선생님, 우리 컸을 때 지구가 멸망하면 어떡해요.”

“야!!!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다 하냐.”

“지구가 멸망하면 우린 다 죽어. 말도 안 돼.”

친구에게 우르르 몰려가 항의하는 아이들.

너무 겁을 줬나.

완급조절도 잘해야 하는 1학년 교사.   


“이렇게 빨리 금요일이 오다니, 싫어요.”

“선생님이랑 헤어지기 싫어요.”

“월화수목금 월화수목금이었으면 좋겠어요.”

하교 인사를 하고 나가다 말고 매달리는 아이들.

누가 봤으면 영영 못날지도 모르는 이산가족인 줄.

“선생님도 주말이 싫어. 너희들 못 보니까.”

거짓말도 진짜처럼 해야 하는 1학년 교사.


(그런데 사실 요 예쁜 아이들이 주말에도 한 번씩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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