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서 태어난 건반 위의 시인 쇼팽은 '빗방울 전주곡'을 명곡을 남겼다. '전주곡(prelude)'이란 본격적으로 음악이 전개되기 전 도입부 역할을 하는 짧은 곡이다. 연주자가 연주에 앞서 악기의 음정은 잘 맞는지 소리는 잘 나는지 점검해보고 손가락도 풀기 위해 악기 소리를 내보는 데서 유래했다. 대개 독주 악기를 위한 작품이 많다. 그런데도 쇼팽은 '빗방울 전주곡'은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작품이다.
연주 시간이 5분 남짓하지만, 사랑의 아련한 기쁨과 쓰라린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곡이다. 왼손가락이 계속해서 같은 패턴으로 건반을 두드리기 때문에 낙숫물 소리를 연상케 한다고 해 이런 별칭이 생겼다. 이 곡을 쓰던 1839년, 쇼팽은 스페인의 유명 휴양지인 마요르카에 머물고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여섯 살 연상인 조르주 상드와 그녀의 두 자녀와 함께였다. 성공한 소설가이자 화제의 인물이었던 상드는 쇼팽의 연인이었다.
그 무렵 쇼팽은 심한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파리의 추위를 피해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자 이 섬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마요르카 날씨는 최악이었다. 숙소도 마땅치 않아 간신히 발데모사 수도원 근처에 있는 오두막집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지독한 추위가 몰려오는 바람에 쇼팽의 건강이 더 나빠지고 말았다. 쇼팽을 진단한 의사는 그가 죽을 거라고 말했다. 각혈하는 쇼팽을 보며 주민들은 감염될까 봐 두려워했다. 설상가상으로 쇼팽과 상드가 결혼하지 않은 걸 알게 된 주민들은 그들을 곱게 보지 않았다. 휴양을 온 게 아니라 유배를 온 듯했다.
쇼팽에게 필요한 건 건강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였다. 파리에서 마요르카로 향할 때 피아노를 가져가려 했으나 세관에 묶여 가져올 수 없었다. 어렵사리 피아노가 도착한 건 그들이 섬에 도착한 지 한 달 이상 지난 뒤였다. 자유분방한 상드와 고지식한 쇼팽은 의견 충돌이 잦았다. 건강을 잃고 사랑에 지친 쇼팽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피아노뿐이었다. 그는 작곡에 몰두했다. 쇼팽이 작곡한 24개 전주곡 대부분은 마요르카에 머물 때 만들어졌다.
비 내리는 어느 날, 쇼팽은 홀로 피아노 옆에 앉아 있었다. 상드가 두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것이다. 쇼팽은 멍하니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허물어져 가는 육신, 지쳐버린 마음, 방황하는 영혼, 게다가 처량하게 쏟아져 내리는 겨울비. 그는 무의식적으로 피아노 위로 손을 가져갔다. 쇼팽의 전주곡 15번은 그렇게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