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 by seonghyeon_ist
<작가 진이령의 어린 시절 이야기>
나는 여동생이 3명 있는 네 자매 중의 장녀이다.
막냇동생이 태어날 때 나는 만 7세,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엄마는 산달 막달이 되어가자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와 어린 두 명의 동생까지 다 케어할 수 없어서 나를 잠시 친조부님 댁으로 보냈었다.
친조부님은 경상도에 계셨는데 그때 내가 잠깐 다녔던 학교는 분교였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100명이 안 되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
내가 경상도로 잠시 유배(?)를 가게 됐던 때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무렵이었다.
그 당시 분교의 모습은 옛날 추억의 학교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조개탄을 피우는 난로 위엔 도시락을 얹어놓아 데우기도 했고, 누군가 우유를 올려놓아 터져 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곳에서 풍금을 처음 봤다.
선생님께서 페달을 밟아 공기를 주입시키고 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신기한 악기.
펌프 같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 바로 풍금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음악 시간이었다.
20여 년도 더 전이라 이젠 학교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풍금에 맞춰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던 시간은 여전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과 조개탄 난로의 훈훈한 공기, 창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찬바람과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
지금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볼 수 없는 뿌연 추억. 나에게 풍금은 가족을 떠나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줬던 위로로 남았다.
(끝)
<단어 줍는 진이령>은 인스타그램 project_jiniryeong 계정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기반으로 적은 연작소설/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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