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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령 Jan 17. 2022

16화. 아스라이

word by mingchuu_s

그를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젠 세상에 없는 이에 대한 기억은 아리도록 선명해져 나의 마음을 난도질한다.

추억은 그리움으로, 사랑으로, 외로움으로 나를 베어낸다.

아스라이 사라질 기억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더욱 선명해질 줄이야……


“보리야, 오빠 보고 싶지?”

내 말을 알아들은 보리는 휘휘 돌리던 꼬리를 축 내린 채 나의 무릎에 머리를 올렸다.


“많이 보고 싶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보리가 내 무릎 위로 올라오더니 날름, 혀로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보리 네가 있으니 내가 버텨”


나는 보리를 쓰다듬고 나서 부엌으로 가 보리차 한 잔을 마셨다.



그는 보리차를 좋아했다.

보리의 갈색 털을 본 그는 단번에 이름을 보리라고 지었었다.


“아니 보리가 뭐야. 좀 예쁜 이름 없어?”

나의 물음에


“사람 먹는 음식으로 이름 지어야 오래 산댔어.”

라고 그가 대답했다. 그는 확고했다. 


그래서 보리의 이름은 보리가 되었다.



“보리야. 우리 산책 가자.”

나는 보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셋이서 같이 산책하던 길을 걷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나는 다시 육지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그가 없는 제주는 너무 외로웠다. 

제주 곳곳에 그가 묻어있고, 제주의 자연이 뿜어내는 모든 향과 색채엔 그가 녹아있었다. 

나는 그가 없는 제주에서 그의 환영을 매일같이 읽어냈다.

괴롭다. 힘들다.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못다 한 이야기 끝)



<단어 줍는 진이령>은 인스타그램 project_jiniryeong 계정 게시물에 달린 댓글을 기반으로 적은 연작소설/에세이입니다.


댓글로 단어를 달아주시면 그 단어들을 엮어 연작 소설을 적거나 에세이, 짧은 글을 써보고자 기획하였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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