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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 Mar 22. 2022

밖에서 먹으려고 '반합'도 샀습니다.

뜨끈한 것도 끓여 먹어야 하니까

 날이 풀리고, 한두 번 근처 노지에 차를 끌고 나가서 밥 한 끼 뚝딱 해 먹고 오는 피크닉을 성공적으로 즐기고 나니 점점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엄밀히 말하면 다양한 음식을 해 먹어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듭니다. 묵직한 무쇠 팬을 가지고 고기도 구워 먹고 이것저것 해 먹는 것도 좋지만, 항상 기름지거나 마른 음식만 먹을 수는 없더군요. 뜨끈한 국물이나, 자작한 찌개 같은 것들을 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니멀하게, 복잡한 장비들 없이 간단히 다니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무쇠 팬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니자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꽤 제한적이었습니다. 집에 있는 적당한 사이즈의 냄비를 몇 번 들고나갔었는데, 양수냄비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편수냄비는 한쪽으로 길게 나온 손잡이 때문에 짐을 정리하는 것이 만만치가 않더군요. 뭘 끓여먹을 만한 마땅한 것이 없는지 주방 찬장을 여기저기 뒤져봐도 딱히 마땅한 것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곰탕


 어릴 적 보이스카웃을 할 때를 떠올려보면 조리도구 몇 가지, 그릇 몇 가지가 세트로 들어있는 '코펠'을 들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냥 냄비로 쓸 것 하나만 필요한데 굳이 세트를 구매할 필요가 있겠냐 싶더군요. 그냥 그렇게 포기하고 있던 차에 캠핑 유튜브를 하나 보다 보니 '반합'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통은 덩치가 제법 크고 깊이가 깊숙한 군용 반합들을 많이 쓰시던데, 그렇게 깊숙한 것은 왠지 불편해 보이더군요. 할 수 있는 요리도 좀 제한적일 것 같고요. 감성이나 느낌도 좋지만, 쉽게 귀찮아하는 성격 탓에 물건이 손에 익지 않으면 몇 번 쓰다가 안 쓰고 결국 버리게 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깊숙하게 생긴 국방색의 반합은 그냥 스킵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렇게 반합으로 야외에서 요리하는 영상을 몇 개 보니 백패킹, 부시크래프트 등 간편하게 야외에서 요리해 먹는 해외 영상이 많이 뜨더군요. 안 그래도 해외 직구를 하려면 '반합'을 어떻게 검색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mess kit, mess tin, canteen 등의 단어가 눈에 들어와서 알리 익스프레스, 큐텐 등을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밝은 회색의 알루미늄 재질로 되어 있는, 옛날 양은 도시락처럼 네모 반듯한 모양의 유럽식 반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디자인은 보통 트란지아라는 브랜드 물건이 가장 인기가 있는 것 같더군요. 검색을 하다 보니 작은 것이 500ml, 큰 것이 750ml라고 확인했습니다. 보통 라면 하나가 면이랑 물이랑 하면 500ml을 왔다 갔다 하니, 큰 것을 산다고 하더라도 라면 두 개를 한 번에 못 끓이겠더군요. 여기저기 해외 쇼핑몰을 검색하다 보니 엇비슷한 디자인의 1L짜리 제품을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들고나가서 이런저런 요리를 해 보았는데, 집에서 쓰는 냄비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밖에서 캠핑 요리하기에 작은 느낌은 아니어서 괜찮았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직구이다 보니 배송은 1~2주 정도 걸렸습니다.



 일단 맨 처음에는 곰탕, 국밥처럼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요리로 시작해 보았습니다. 두식구 모두 양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아침이나 점심에는 집에서도 한 봉투 뜯어서 밥 하나 말아서 같이 나눠먹고는 합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밥을 좀 넉넉히 말아먹는다고 해도 충분한 크기였습니다. 양념이 거의 없는 하얀 국물 국밥을 먹고 나서는 정리도 쉽더군요, 제대로 된 세척은 집에 가서 다시 했지만, 현장에서 물을 조금 부어서 끓인 다음 휘휘 흔들어 정리만 해도 깔끔했습니다.


라면


 제대로 된 양을 테스트해보기 위해 라면도 끓여 보았습니다. 하나는 면을 깨지 않아도 여유 있게 끓일 수 있는데, 두 개를 끓이려면 면을 부순 다음 세로로 좀 세워두면서 천천히 불려 나가야 되긴 했습니다. 물도 두 개 끓이는 정량을 다 넣으면 나중에 끓을 때 넘칠 수도 있겠더군요. 그래서 스프를 조금 덜 넣고, 물도 조금 덜 넣어서 먹었습니다.


 열 전도율이 좋은 알루미늄으로 되어있다 보니, 반합 전체가 뚜껑까지 포함해서 금방 뜨거워집니다. 이게 조금 불편하더군요. 빨리 끓이고자 뚜껑을 덮으면 나중에 이걸 열 때 장갑 같은 것들을 챙겨야 합니다. 이게 생각보다 뜨거워서, 잠깐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온도가 아니었습니다.


순대볶음


 분식을 먹기에도 아주 좋았습니다. 떡볶이나 순대볶음 2인분 밀키트 하나 넣고 익히기에 아주 적당한 크기였습니다. 국물이 자작한 요리들은 2분도 한 번에 너끈히 조리가 가능했습니다. 떡볶이를 먹을 때는 튀김을 조금 곁들여 먹으려고 냉동 김말이를 챙겨갔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김말이를 반합에 먼저 튀기거나 지진 다음 뚜껑에 덜어두고, 기름기가 남아있는 반합에 떡볶이를 익힐 생각이었는데, 사이트 구축하고 출출할 때 밀 키트를 뜯어서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하다 보니 떡볶이를 먼저 익히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냥 해동 된 김말이를 조리 중인 떡볶이에 넣고 같이 끓였는데, 바삭한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밖에서 먹으니 꿀맛이었습니다.


떡볶이와 김말이 튀김


 반합을 구매할 때 몇천 원 보태서 찜기 세트를 같이 구매했습니다. 군산, 서천 차박 당시에 군산에서 전날 구매했던 유명 분식집의 찐만두를 아침에 일어나서 살짝 쪄서 먹으니 꿀맛이더군요. 아직은 새벽에 차 안이 꽤 서늘한데, 폴폴 김이 올라오는 따끈한 만두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양념을 묻히고 끓이고 하는 음식도 아니다 보니 반합 정리도 간편하게 할 수 있었고요.


찐만두


 이 알루미늄 반합은 네모난 실내 공간에 작은 시에라 컵, 숟가락 등 도구들을 수납해서 다닐 수 있어서 공간 활용도 좋고, 실제로 다른 캠퍼분들도 그런 수납(Stacking)의 재미 때문에 구매하시기도 한다고 그러더군요. 수납이 좋다 보니 백패킹 하시는 분들도 많이 쓰시는 것 같고요. 이 안에 쏙 들어가는 팬, 컵 등등을 챙기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뭔가 아기자기한 소꿉장난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수납을 하겠다고 아직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굳이 살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여기에 수납이 가능한 크기를 찾아보긴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집에 있는 것들 들고나가서 밖에서 간단히 야외 생활을 즐겨보자고 시작한 것인데, 생각보다 자꾸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이 생깁니다. 물론 필요한 것들은 좀 구비를 해야겠지만, 집에 잠자고 있는 물건들 중에서도 분명히 괜찮은 것들이 있긴 할 텐데요. 일단은 꼭 필요한 것들, 생활의 질을 높여줄 만한 것들은 신중하게 차근차근 구매하고, 멋있어 보이는 것들, 조금 편리할만한 것들은 장바구니에만 담아두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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