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바라는 인생 노선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고 결혼 했다. 남들이 얘기하는 결혼할 때가 되었고 시기를 넘기면 출산에 지장 있으니 막차에 몸 구겨 넣듯 한 결혼이었다. 결혼했으니 다음 차례는 임신과 출산이 남았다.
신혼 3개월 차, 시어머니는 남편 없는 틈에 ‘너네 피임하니? 내게 물었다. 부모의 기대와 타임 노선대로 줄곧 살아오고 있는데 시어머니는 부부관계까지 확인한다. 기대와 압박 속에 배란일을 체크해 가며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임신에 성공했다. 결혼하고서 6개월 차에 임신을한 셈이니 그리 늦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조급했다. 원하던 임신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이가 생겼다는 기대보다는임신 못할 몸뚱이는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콘돔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내 입으로 되돌려 내뱉아야 했던 수치심을 극복하듯. 그렇게 나는 임신에 성공했다.
누가 자식은 사랑이라 했나. 첫눈에 태어나 한눈에 그리 반할 수 있는 것인가? 출산이 임박하면 덤프트럭이 배를 밟고 지나가는 느낌이라더니 정말 묘사 한번 정확했다. 산소호흡기 없이는 숨쉬기 조차 힘들었다. 새벽 2시부터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 오전 8시까지, 남편은 터질 것 같은 방광 부여잡고 내 곁을 지켰다.
오전 10시 27분 배가 아파 죽기 직전에서야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머리는 꼬깔콘처럼 봉긋했고 얼굴은 양수에 팅팅 불어 있었다. 영화처럼 “오! 예쁜 나의 아가!”같은 감탄사는 없었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 인지 확인하고, 아무도 몰래 팔다리에 털이 있는지 재빠르게 확인했다. 털 많은게 콤플렉스였던 내가 간절히 빌고 빌었는데. 절망스럽게도 내 딸임을 인증했다. 하늘도 무심하게 내 기도는 닿지 못했다.
이제 아이가 태어났으니 모성애가 뿜어 나와야 할 때가 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이가 너무 예뻐 죽겠다는 모든 어미들이 내뱉는 그 말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는 저절로 장착되는 본능의 영역이라 생각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먼지 한 톨의 의심도 얹을 수 없는 절대 불변의 진리인 줄 알았다. 그 절대 불변의 진리를 나는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온라인 속 육아맘들은 아기를 향한 사랑 고백 일색인데, 나는 ‘아기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과감히 이렇게 대답할 수 있지.
“사랑이 뭔데? 힘들어 죽기 일보 직전인데 사랑이 가능한 건가? 회사도 그만뒀겠다. 주 업무가 육아인데,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게 사랑한다고 할 수 있나?”
본능과 책임감의 행위는 같을지라도 과정은 엄연히 달랐다. 의식하지 않고도 저절로 행해지는 것이 모성애라면, 책임감의 영역은 철저한 계획에 따라 실패 없이 수행하는 엄청난 노력의 산물인 것이다. 이제는 돌아갈 회사도 없으니 육아에 대한 직업의식을 철두철미하게 갖춘 채로 업무에 몰입하듯 아이를 키웠다.
주어진 책무에 모든 힘을 끌어다 완벽을 기하고 있는데, 아이는 야심찬 계획이라도 한 듯 돌변했다. 두 돌을 기점으로 갑자기 열린 감각의 소유자로 변신한 것이다.
혀끝의 미각부터 피부의 촉감까지 모든 사람들의 감정도 한 번에 다 흡수해 버릴 수 있는 초능력자. 청국장에 밥도 쓱쓱 비벼 먹던 아이는 이제 없다. 모든 음식 알갱이들의 고유 촉감 하나하나가 아이의 혀끝을 맴도나 보다. 밥 위에 반찬을 올려 포개어 놓는 건 더 이상 상상할수 없게 되었다. 하물며 촉각은 열리다 못해 폭발한 지경인지 외출복을 입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26개월엔 기저귀도 던져버려 소변 마려운 아이를 들고 뛰는 일은다반사에, 동네 화장실 위치와 비번을 알아두는 건 필수였다. 완벽을 추구하는 고집미 넘쳤던 아이는 말도 느렸다. 완벽하게 어른처럼 문장을 구사하고 싶었던 건지 30개월 문턱에 차서야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3일 만에 문장을 구사한 초능력자 아이.
육아는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는데 그걸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아이의 본능적 욕구 보다 내가 세운 계획에 맞추려 스스로를 옥죄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주어진 책무를 잘 수행하는 것이라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미련한 짓이었나. 이제와 고백컨대 아이가예뻐 보인다는 말을 아이가 다섯 살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이해했다.
어느 날 옆에 누워 잠든 아홉 살 된 아이를 보니 제법 길쭉 해졌다. 18개월까지 아기띠에 매달고 다니던 그때 그 시절의 아이는 이제 없다. 고사리 손으로 학교 수업 따라가느라 애쓰네 싶었는데, 손가락도 제법 길쭉 해지고 더 이상 고사리 손이라 칭하기에는 세월이 훌쩍 지나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면 최대한 현관문 앞으로뛰어가 밝게 웃으며 아이의 이름 불러주려 노력한다. 아직도 모성애 장착은 덜 된 건지, 잊지 않으려 애쓰며 가끔은 가식적인 미소를 내뿜기도 한다.
어느 날 엄마에게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성애가 생길 줄 알았는데, 나는 아니더라.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막 사랑스러운 건 아니더라고.”
“모성애가 처음부터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
엄마가 답한다.
모계유전인가. 엄마도 나 키울 때 모성애가 자동으로 장착되진 않았나 보다. 하기야, 엄마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낀 건 결혼 후였으니, 나도 딸아이가 결혼하면 모성애 다운 모성애가 나오려나? 우리 딸이 모성애 느낄 수 있게 해주려면 나는 부디 오래오래 더 건강해야겠다.
이제 메모지에 쓰는 계획 따위는 집어치웠지만, 여전히엄마로서 주어진 책무에 수많은 계획들이 마음속에 둥둥 떠다닌다. 굳건한 다짐 마냥 꼭 -해야지,-해줘야지로 끝나는 말들로. 내 딸이 자녀를 낳을 때, 모성애의 정의를 이렇게 적어서 건네야겠다. 아무래도 내 유전자를흠씬 물려받은 아이이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때가 오면 적어둔 메모지 쓱-하고 건네야겠다.
모성애(母性愛)
– 본래 뜻: 어미의 본능적인 사랑
– 그러나 실제 의미는 아래 항목에 더 가깝다.
1. 사랑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애쓰는 노력의 과정
2. 아이를 낳는다고 자동 장착되는 기능이 아님
3. 때로는 계단처럼 한 칸씩 쌓여 올라가는 형태를 띨 수도 있음
4. 책임감으로 중무장하는 것도 초보 엄마가 택할 만한 생존 방식임
5. 모성애는 학습으로 만들어지는 사람도 있으니 타고나지 않았다고 슬퍼하지 말 것
6. 본능적 사랑과 의도적 책임감은 과정은 달라도, 결과는 종종 닮아 있음
7. 무엇보다 아이는 스스로도 잘 자라는 존재이니, ‘내가 모성애가 부족했다’고 자책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