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교육을 찾아서
‘발도르프’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근사하지 않나. 적어도 나에겐 과도한 경쟁으로 아이를 밀어 넣지 않는 괜찮은 부모는 될 수 있을 것 같은 단어였다. 치열한 교육열 속에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개개인의발달 속도를 기다려 준다니, 이보다 좋은 교육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전업주부가 된 뒤 아이의 발달과 성장은 내 몫인 듯 매달리면서, 육아서와 전문가의 글을 붙잡고 무언가 놓치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 애썼다. 아이의 발달 과제에 깊이 몰두하던 차에 한 블로거의 글을 통해 발도르프를 알게 되었다. 그 글 속에는 이상적인 교육을 실천하려는 교육자로서의 사명감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아이들을 향한 시선과 방향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깊은 진심이 담겨 있어 좋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녀의 글 해시태그에 한 어린이집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곳은 집에서 멀지 않았다.
아이가 36개월이 다가 올 무렵, 입소 대기순번이 되어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이상적인 부모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발도르프 어린이집으로 입소 상담길에 나섰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논 밭을 뛰어놀며, 모내기를 돕고 옥수수와 콩을 따고 추수한 벼를 널어 말리던 그때 그 시절의 감성들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외동인 아이에게 형제간에 겪을 수 있는 일들을 간접체험하는 통합반 운영도 좋았다. 무엇보다 4년간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내 마음을사로잡았다. 한글도 알려주지 않을 만큼 학습적인 것은 철저하게 지양했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가급적 존중해 활동을 강요하는 일이 없다 했다. 상담이 끝날 무렵, 원장님은 집 근방의 어린이집들을 두고,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왔는지 물어왔다.
“아이에게 부모 이외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요.”
아이에게 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부모 외에 믿을 수 있는 어른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것이 평균의 속도보다는 조금 느리고 감각이 발달한 민감한 아이를 절대적으로 위하는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이면이 있다는 것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4년간의 어린이집 생활이 이어졌고 내가 이상적일 것이라 여겼던 교육 방식은 결론적으로 아이에게 좋지 못한 결말을 안겨주었다.
나는 한 선생님이 오랫동안 아이를 맡아 주는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도 4년이란 시간 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선생님의 감정선에 맞추어 살아내야 했다. 세심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아 소수인 곳을 찾아 보냈지만, 아이에게 절실했던 것은 세심함보다는, 그저 존재를 품어주는 관대한 마음이었다.정부 보조로 무료로 갈 수 있는 어린이집들이 도처에 있었음에도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번갈아 타고 아이의 걸음으로 제법 먼 거리의 그곳을 오랜 시간 다녔다.
그곳에서 아이는 섬세하게 바라봐주는 선생님을 통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교정받고 있었다. 왼손잡이였던 아이에게 오른손잡이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그곳에서는 연습해야 했고, 하루에 몇 번씩 이름을 불리며 지적받아야 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아이의 마음속에 이미 불안감이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아이 마음의 파동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버렸다. 아이는 온몸으로 불안을 표현했고, 아이의 온몸을 쓸고 간 틱은 우리 가족에게는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남았다. 모든 과정은 실패와 깨달음의 연속이라지만, 내가 선택한 이상적일 것 같았던 교육법은 우리 가족에게 지워지지 않는 흉터 하나씩 각자의 마음속에 새겨놓았다.
결국 이상적 교육은 내가 믿고 싶은데로 바라봤던 상상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아이에게는 그 어떤 교육적 환경보다는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줄 어른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일 것 같은 교육의 방식도 내 아이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늘 염두에 둔다. 소수보다는 다수에서 자신이 도드라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마음 편한 아이였던 것을 그땐 몰랐다.
이상적 교육은 없었다. 아이가 자신이 가진 색깔대로 나아가는 방향이 있을 뿐. 한참의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희미해질때 쯤, 그때의 실수는 그저 삶이라는 긴 여정 중 하나의 과정이었다고 마음 다독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