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서울 오는 날이다. 지난 뜨거운 여름, 아빠는 오래 묵혀둔 허리 수술을 했다. 절뚝거리던 발로 몇 걸음 옮기기 힘들어진지 한참이 되어서야 겨우 수술할 시간을 내었다.
오늘은 수술 5개월 차 정기 검진이 있는 날이다. 정기 진료라고 해봐야 엑스레이를 찍고서 3분 남짓 의사를 만나는게 다지만, 아빠는 분주히 준비해 비행기에 몸을싣는다. 의사를 만나러 오는게 아니라 딸과 다정하게 밥 한 그릇 먹으러 병원 핑계 삼아 온다는 걸 안다. 나도아빠 병원을 핑계 삼아 남편에게 아이의 오후 일정을 맡겨두고 밥 한 그릇 먹으러 공항으로 향한다.
그렇게 오늘은 아빠와 내가 병원을 핑계 삼아 데이트하는 날이다. 아빠 보다 더 희끗해진 머리칼로 갈 수는 없으니 급히 미용실에 들러 미뤄둔 새치 염색도 했다. 칠순을 갓 넘긴 아빠이고 마흔을 훌쩍 넘어선 딸이지만, 어린 시절 두 손 꼭 잡고 다니던 그때처럼 아빠를 만나고 싶다.
공항행 시내버스를 타고 시간 맞춰 도착했다. 입국장 출도착 전광판에 아빠가 탄 항공편이 도착했음을 알린다. 입국장 문이 여닫기를 반복하며 분주하게 나오는 사람들 틈 속에 아빠를 찾는다. 한눈에 아빠를 알아보지 못할까 마음이 분주하다.
보름달 같이 동글동글한 얼굴에 볼록하게 솟아 오른 배를 가지고, 널찍한 어깨로 나를 힘껏 안아주던 아빠. 이제는 까무룩한 옛 모습이 되어버렸다. 얼굴은 제법 홀죽해 졌고, 그 틈에 주름살이 자리 잡았다. 볼록했던 배도 사라졌고, 어느새 나보다 가벼운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사람들 틈 속에 한눈에 아빠를 찾았다. 반가운 마음에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든다.
다정하고도 어색하게 아빠의 손을 잡고 공항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순두부찌개. 아빠와 나는 입맛도 비슷해서 좋아하는 것도 같다. 메뉴를 기다리는 틈에 마주 앉아 바라본 아빠의 눈망울엔사랑이 묻어난다. 친척들과 이웃들의 안부를 묻고 아빠의 안부도 묻는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 하나 하나를 눈에 오래 오래 담았다. 눈을 감아도 언제든 아빠의 얼굴이 구석구석 떠오를 수 있게.
우리는 밥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아빠의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보호자가 되어 진료표를 뽑고, 엑스레이 촬영실까지 아빠를 안내했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달달한 바닐라 라떼 한 잔을 사 와 아빠에게 건넨다. 아빠의 이름이 호명되고 함께 진료실로 향했다.
의사는 짧게 설명했고, 다음 진료는 6개월 뒤, 그다음은 1년 뒤에 보자 한다. 아빠는 엑스레이 찍으러 서울까지 올 필요가 있겠냐며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달력을 꺼내 예약 날짜를 확인했다. 나도 그날을 핸드폰 달력에 표시하고 알림을 설정해 두었다. 아빠와 둘이서 공항에서 밥 한 그릇 먹는 날이니깐.
아침부터 먼 길 온 시간에 비해 진료시간은 짧았다.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까지 제법 남아 아빠와 저녁 산책 삼아 자주 가던 롯데리아로 향했다.. 아빠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나는 후렌치 프라이. 사이좋게 하나씩 시켜 두고 자리 잡았다. 아빠도 그때가 떠오르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웃는다. 내가 별 시덥지 않은 소리를 계속해도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내내 미소 짓는다. 아빠의 사랑을 오래 기억하라는 듯. 우리는 각자의 몫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녁시간이 다가오니 남편과 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라며 아빠는 내 등을 떠 밀었다. 아빠를 공항 3층 출국장까지 바래다 주고 인사를 건네고선, 뒤돌아보지 않고 아래층으로 발걸음 옮겼다.
결혼 전에 아빠는 부산역으로 나를 마중 나오고 배웅했다. 스무살 부터 서른 두살까지 나를 12년간 떠나보내고 맞이했다. 나는 아빠를 위해 몇 번의 마중을 나갈 수 있을까. 아마도 손가락으로 세어 볼 수 있을 만큼이겠지.
오늘 아빠와의 데이트는 끝이 났다. 올여름이면 아빠가 다시 서울로 오겠지. 무사히 다시 마중 나갈 그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