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직설과 은유 사이

서울남자와 부산여자

by 르완느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스무 해가 되기 전 까지 그곳에 살았다. 성인이 된 후, 서울로 상경해 다정한 말투가 매력인 서울 남자와 결혼했다. 그는 말 하나에 진심을 다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달콤한 말 뒤에 빈말도 많다는 걸 알아차렸다.


한 날은, 부산에 내려가 몇 년 만에 보는 친구에게 어색할 새도 없이 밥 먹었는지 먼저 물었다.


“밥 묵읏나?”


“아직 안무긋지. 니는 밥 묵읏나?”


옆에 있던 남편이 피식 웃었다.


“밥 먹었냐가 인사야?”


남편은 밥 먹었느냐가 안부를 대신한다며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진심으로 밥 먹었는지 궁금해 묻는데, 남편은 잘 지냈냐는 안부인사로 여겼다. 그는 항상 내 말 뒤에 숨겨진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던 그곳에는 에둘러 표현하는 법이 잘 없는데 말이다.


힙합과 발라드같이 같은 가사라도 멜로디가 다르면 전혀 다른 노래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말을 서로 다르게 들었다.


그래서 부부 싸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곤 했다. 그놈에 말 때문이라는데, 나는 솔직하게 표현했을 뿐, 상대를 비난하려 한건 아니었다. 경상도 특유의 억양까지 더해져 억세고 거칠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내 방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필요한 순간에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어떻게 내 생각을 알 수 있을까?


대신 결혼 10년 차쯤 되니 노하우가 생겼다. 인정을 바라는 남편의 일상적인 농담에 최선을 다해 부응한다.


“너 생각해서 딸기 가져왔지”


“원래 내 생각 항상 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딸기까지 챙겨 오고 진짜 멋지네.”


“너 힘들까 봐 입던 옷 빨래통에 넣어뒀지. 잘했지?”


“너무 잘했지. 역시 최고네. 내 생각도 해주고. 덕분에 오늘 허리 한번 굽히는 일도 줄였네.”


남편은 여전히 에둘러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남편과 진지한 대화가 필요할 때는, 말하기 전에 기름칠을 많이 해놓아야 내 고민들이 미끄러지듯 남편 마음에 닿는 것 같다.


같은 말을 두고도 은유로 듣는 사람과,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는 사람.


글은 말보단 한 박자 늦게 닿지만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으니, 누군가 남편에게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띄워주면 좋겠다.


10년이 더 지나 오해 없이 직설과 은유 사이를 넘나드는 부부 사이가 되어있길 바라며.

경상도 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 서울 남편에게.


부인의 거칠어 보이는 말투를 이해해 보시려 애쓰는 그 노고에 작은 경의를 표합니다. 연애 시절에는 부드러운 멜로디의 서울말과는 달리, 온음과 반음 사이를 아슬아슬 오가는 그 삐걱한 억양 속 멜로디를 귀엽게 여기셨겠지요. 하지만 결혼하고 보니 그 말투가 사납게 느껴지실 때가 종종 찾아올 수 있을 겁니다.


부인의 말 뒤에는 숨은 표현도, 숨은 감정도 없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과 사실을 그대로 말할 뿐이지요. 그래서 혹시 상처가 되는 말이 있다면, ‘예쁘게 말해달라’ 하기보다‘그 말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라 해도 모국어처럼 몸에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걷어내기는 어렵답니다.


상처 주려고 날 선 말을 꺼낸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세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요. 고향 떠난 시간이 길어지면, 언젠가 서울식 표현도 조금씩 배어들겠지요. 그러니 연애할 때 사랑스러웠던 부인의 말투와 억양을 잊지 말고, 그대로 사랑해 주세요.


여전히 외국어처럼 느껴지는 그 미묘한 표현에, 문득 상처받는 서울 남편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