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마주하는 미지의 것들

by 지인


언슬전이 종영하고 나는 또다른 도파민을 찾아 넷플릭스를 어슬렁거렸다. 습관이다. 이미 보작으로서 봐야할 드라마가 넘치는데, 일로서 드라마를 마주하니 딱! 그 장르만 빼고 다른 드라마가 다 재밌어 보이잖아. 이것은 인간의 어떤 지독한 습성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습성이라고 정의할 수 없어. 다들 그렇잖아요.


어쨌든 언슬전이 종영한 자리에 새로 들어선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시청했다.


tvN 주말드라마 '미지의 서울' (극본 이강 / 출연 박보영, 박진영, 류경수 외)

미지의 서울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 미래가 각각 불의의 사고로 고꾸라진 전직 천재 육상 선수, 금융계 공기업다니는 엘리트라는 전혀 다른 각자의 삶을 바꿔 사는 이야기다.


미지는 고등학교 시절 천재 육상 선수로 기록을 섭렵하면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체대에 갈 절호의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트랙에서 넘어져 발목 부상을 입고 빛처럼 은퇴했다. 현재 30살. 고향인 충청도 두손리에서 밭일, 마트 점원, 학교 청소부 등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중이다. 엄마에게 항상 엘리트 미래와 비교 당하면서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들들 볶이면서도 자기를 끔찍하게 아껴준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두손리에 터를 잡고. 닭가슴살처럼 퍽퍽한 삶에서도 미지는 여전히 방문을 나서기 전 외친다. "어제는 지났고, 미래는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미지는 그런 사람이다. 단단한 시멘트 틈바구니에서도 민들레가 피어날 자리를 보는 사람.


반면에 미래는 어릴 적 심장병을 앓아 가족에게 늘 미안함 마음 뿐인 노력파 엘리트다. 그래서 아픈 게 미안해 다른 모든 것에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부모의 자랑이자 사회의 우선순위가 됐지만, 속내에 쌓인 게 많은 여린 완벽주의자, 무던히 참기만 하는 약자가 됐다. 미지에게는 비교의 대상이 돼 괴로웠을지 몰라도 미래는 미지가 가진 눈부신 '재능' 앞에 자신의 노력은 참 처절한 발버둥이라고 생각한다. 금융계 공기업에 다니지만 원래는 행시에 도전했었고 3년 내리 실패 후에 차선으로 입사했을 뿐이다. 여전히 버티고 넘기며 사는 중 상사의 비리를 고발했다가 직장 내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인생 최고의 고비를 맞았다. 이번 건 버티기가 좀 힘들다. 그때 미지가 제안해준 서로 대신 살아보자는 말에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홀린 듯이 따른다. 미래는 그만큼 힘들었다.


작가는 기획의도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의 삶을 마음 깊이 이해하는 다정함과 더 나아가 나의 삶도 너그럽게 다독일 수 있는 따뜻한 연민을 권하고자 합니다."


늘 입 꾹 닫고 버텨내던 미래가 4층 높이의 서울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릴 때, 미지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미래의 팔을 붙잡는다. 그리고 같이 떨어진다. 미지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알던 미래가 버티지 못했구나. 미래에게 닥친 현실이 더는 버틸만하지 못했구나. 모든 유년 시절과 10대 시절과 밥그릇과 외모마저 공유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미래의 현실을 알아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버텨야 하는 현실이 뭐든 대신 맞서보기로 한다. 대신 미래에게는 자신의 현실을 던진다. 남의 떡은 더 커보이고 남의 고통은 자잘해 보이고 남의 인생은 쉬워 보이고. 미지와 미래도 그런 마음으로 서로의 인생을 토스했다.


2화에서. 미지는 미래의 상사로부터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받아 버렸다. 덫이었는데. 공기업의 부지 확보 문제로 가게 한 곳을 찾아가 땅을 팔도록 설득해야 하는 미션이었는데. 당차게 나섰다가 미지는 결국 사장님에게 일주일 넘게 소금을 맞았다. 개꿀 같던 미래의 자리가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늪 한가운데 같다. 한편 미래는 미지가 일용직으로 일하게 된 딸기 밭에 출근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 라는 미지의 강력한 이력서 한 줄에 미지만 믿고 고용한 딸기밭 사장 한세진은 계속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한다. 미래는 밭일을 해본 적이 없어 매일 가만히 앉아만 있다 오고 월급 루팡으로 얻은 일당은 쌓여 간다. 드디어 뭐 좀 해보려고 하지만 실수로 사장 심기만 건들고.


미지와 미래가 서로의 삶에서 맛 본 '미지'의 것들은 이제 시작이다. 현실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도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니 낯설게 느껴지고, 오가는 감정들도 짐작했던 것들이 아니고. 미지의 서울과 미래의 두손리는 늘 막다른 골목길처럼 변화구를 맞을 것이다. 1, 2화만으로는 그녀들이 변화구에 어떻게 맞서고 또는 속절없이 끌려가는지 알 수 없다. 벌써 목요일. 3, 4화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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