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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Dec 13. 2022

과메기부심자의 과메기 샌드위치

아침에 들이판 음식 이야기



2021. 1. 15. 금요일     


- 과메기로 샌드위치를 만든다고? 안 비려?

- 과메기가 샌드위치가 돼??     


결론부터 말하자면 된다. 암~ 되고 말고. 

모든 식재료는 안되는 게 없다. 다만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이 다채로운 밥상을 못 만들게 할 뿐.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먹던 대로 먹는 것’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먹던대로 먹는 것’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새롭게 먹는 방법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법이다. 피카소가 기초적인 그림 그리기를 완벽하게 한 후에 압도적으로 멋진 추상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얘기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고기나 가공육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생선이 주재료인 샌드위치나 버거는 연어나 피시버거 정도인 것 같은데 등푸른 생선 특유의 향 때문인지 “양식”집에서는 별로 본 일이 없어뵌다. 그러나 정작 유럽의 어느 지역에 가면 소금과 올리브유에 절인 정어리, 청어, 멸치 같은 것 (통조림도 있잖아요?)을 빵에 넣어 먹는 것을 본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오늘 내가 먹은 과메기가 좀 더 건강할 듯하다. 일단 염분이 덜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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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가 애매하게 딱 두 쪽 (꽁치 한 마리 분량)이 남아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만든 <과메기 샌드위치>! 

오늘 나에겐 곧 유통기한을 넘길 통밀 식빵이 있었고 삶은 달걀도 빨리 먹어 치워야 해서 나름 냉장고 정리용으로 만든 샌드위치였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맛있었다. 과메기 양이 많지 않아 과메기의 맛이 그리 많이 나지는 않지만 중간에 씹히는 쫀득한 식감이 아주 훌륭하고 아삭한 로메인과 등푸른 생선과 찰떡인 시저드레싱의 조합이 예상대로 환상이다. 흰 살 생선보다 등푸른 생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전에 만들었던 옥돔 샌드위치보다 오늘 이 과메기 샌드위치가 훨씬 맛있다.   

   

아, 역시 나는 물고기애자.. 샌드위치도 물고기가 맛있어!     


양이 너무 많아 반 밖에 먹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워! 맛있는 것은 몽땅 다 먹어줘야 하는데...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배가 안불렀으면 좋겠다. 그리고... 살도 안쪘으면 좋겠..;;;; 헴... ㅎㅎ     


함께 먹은 주스는 제주산 유기농 감귤을 직접 짠 귤즙이다. 귤도 겁나 큰 박스로 집에 와서 엄빠와 동생 집에 나눠주고 내가 먹을 것을 남겨두었는데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나의 냉장고는 마법 냉장고인가?) 그리하여 휴롬에 다섯 개의 귤을 몽창 짜버렸다. 겁나 달고 시원하고 맛있다.      



과메기 얘기를 좀 해보겠다.     

태어난 곳이 포항이고 외갓댁을 포항으로 둔 사람으로서 과메기부심이 남다른 편이다. 등푸른 생선을 일본식으로 초절임하여 밥이나 빵과 먹거나 스페인이나 북유럽 스타일로 올리브유, 소금에 절여 먹는 것과 달리 과메기 스타일의 가공법은 독보적이라고 본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과메기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계절 음식이었다. 그것도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나 먹을 수 있었다. 청어나 꽁치를 줄줄이 엮어 (또는 꿰어) 바닷바람에 말리는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말려야 하는 것이라 다른 계절에는 가공이 불가능했다. 과메기의 맛을 제대로 보려면 한파가 제대로 왔다 가야 했는데 한반도의 겨울 날씨의 특징이라던 삼한사온(三寒四溫)은 과메기 가공에 최적의 조건이지 않았을까? (지금은 아무 때나 춥고 아무 때나 추워서 어이가 없지만)

    

이제까지 먹었던 과메기 중 최고로 맛있었던 과메기는 국민학교 (나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5, 6학년 즈음, 외할아버지 제사 때였다. 12남매인 엄마의 형제들은 물론, 그 해에는 유난히 많은 친인척들이 모여 엄마의 사촌 형제들도 있었고 옆집, 뒷집 사시던 어르신과 줄줄이 딸려온 자녀들까지 있었다. 음식이란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쩍하게 먹어야 맛있는 것 아니겠나? 그 때의 과메기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과메기의 그 맛보다 분위기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생각해보면 그 때의 “과메기가 정말 맛있었다”는 진실을 증명할 몇 가지 팩트가 있다. 


      

첫째, 과메기가 다르다.

요즘엔 보통 과메기를 말릴 때 뼈를 발라 말리는 것도 많다고 하는데 그 때는 무조건 한 마리를 통으로 말렸다. 그리고 자고로 과메기는 추운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해풍에 말라야 하는데 요즘 과메기는 기계에 말리는 것이 대부분이니 그 때의 과메기는 그냥 질적으로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옛날 과메기는 확실히 겉은 말라있지만 속은 촉촉했다. ‘겉바속촉’까지는 아니어도 속살에 꽁치 특유의 기름과 살 조직이 적절하게 엉겨 남아있어 그냥 약간 덜 말린 육포를 씹는 요즘 과메기 식감이 아니라 쫀득한 절편을 씹는 느낌이랄까? 그러한 식감에서 씹으면 씹을수록 지방의 고소한 맛이 나온다. (씹을 것도 없이 넘어가지만 말이다)      


손질해서 파는 과메기가 아닌고로 엮여진 체 사먹는 과메기는 먹는 사람이 직접 배 따고 뼈 바르고 손질을 해야 한다. 그래서 과메기 손질의 달인이 있어야 한다.   

  

둘째, 그래서 그 때 과메기 손질의 달인의 손길로 손질한 과메기를 먹었다.

과메기일 것 같은 최초 문헌이 <규합총서(閨閤叢書)> (1807년 빙허각 이씨가 엮은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의 책. [‘비웃(청어)을 들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는 그 맛이 기이하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 두산백과) 라는 것에 의거하면 적어도 1800년대부터 포항 근처의 사람들은 과메기를 먹었을테니 포항에서 태어나 자란 엄마와 엄마 형제들에게 과메기 손질 정도야 젓가락질 정도 아니겠는가?  

    

그러나 젓가락질도 잘하는 사람이 있고 그냥 하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양새부터 이상한 사람이 있고 쌀알까지 디테일하게 안떨어뜨리고 옮기는 사람이 있다. 포항 사람이어도 누구나 과메기를 잘 다루는 것은 아닐 터!      

포항 사는 근태 삼촌과 부산 삼촌은 달인 중의 달인이었다. 비닐 장갑과 목장갑을 겹쳐 끼고 한 손에는 잘 드는 가위를 든 과메기 가위손! 가위손 전사! 

신문지 펼쳐 놓은 바닥에 과메기만 던져 놓으면 쓱싹 쓱싹 쭈우욱~ 촥 ~~! 뼈 바르고 껍질까지 고이 벗어놓은 과메기 살들이 접시 위에 올라왔다. 윤기가 촤르르 흐르는 과메기는 댕강 댕강 짧게 자르지 않고 대충 이등분! 아이들을 위해서는 삼등분으로 잘려졌다. 


거기에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생미역을 돌돌 말아 초고추장에 푸욱~! 찍어 먹으면 바다내음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진 훌륭한 화합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그 때의 과메기가 맛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 신선한 미역과 초고추장이다. 

동해의 웬만한 수산물은 포항으로 들어온다. 울릉도 오징어가 제아무리 유명해도 포항에 제일 많고 영덕 대게가 유명해도, 장생포 고래 고기가 유명해도 포항 죽도 시장에 모조리 들어온다. 미역 역시 죽도 시장에는 가장 신선한 채로 많은 양이 있었다. 

동해의 미역은 남해의 미역에 비해 억세지만 과메기를 먹을 때는 제격이다. 잎이 두껍고 풍미가 강해서 조금은 비릴 수도 있는, 또 조금은 느끼할 수도 있는 등푸른 생선의 향과 맛을 제대로 잡아주는 것이다. 동해안 생미역의 매력은 풍미뿐 아니라 알싸한 느낌의 떫음이다. 아주 어릴 땐 입안에서 떡떡 달라붙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싫었는데 그 즈음의 나는 그 매력까지 알아챘었나 보다.

     

초고추장은 또 어떠한가? 외할머니가 직접 담으신 매콤한 고추장과 외숙모들과 사촌 언니들 (언니들이 나와 나이차가 좀 많아서 이모뻘이었다)의 비법 레서피로 중무장한 초고추장에는 설탕 대신 오렌지 주스가 들어갔다. 내 기억에 무슨 무슨 청! 이런 것이 대중화된 것은 이때보다 한참 후여서 매실청이니 레몬청 같은 것은 있을 리 없었다. 누군가 패트병에 있는 오렌지 주스를 초고추장 만드는 데 넣는 것을 보고 놀란 기억이 난다. 내 머릿속에서 그것은 그냥 음료수였는데 음식 만드는데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고추장과 고춧가루, 오렌지 주스, 다진 마늘, 그리고 외할머니가 담으셨다는 식초! 이것이 화룡점정이었다. 이날 이때까지, 그 때의 초고추장 맛을 못 본 이유는 다 식초 때문이다. 뭘로 담으신 식초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수의 서대회무침처럼 막걸리 식초를 썼을 확률이 높을 것 같기도 하다. 슬픈 건, 막걸리 식초로 초고추장을 만들어봐도 그 때 그 맛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어쩌면 할머니 손맛이었으니 외할머니 없이 그 맛이 날 리가 없다.


초고추장의 마지막은 절구에 간 깨와 송송 선 쪽파. 여기까지가 과메기 초고추장!      


꼬리쪽은 바싹 말랐다! 

이거 묵고 싶은 사람은 이거 묵고 

몸통은 들 말랐으니까 요고 묵고 싶은 사람은 요고 묵고!     


그 조그만 과메기 한 마리에서 부위별로 맛이 다르니 얼마나 훌륭한가? 

어릴수록 꼬리를 찾았고 나이가 더 있을수록 몸통을 찾았다. 어른 흉내를 내고 싶었던 나는 몸통을 공략하다가 기름과 함께 떨어지는 꽁치피 (피가 맞았을 수도?)를 보고는 꼬리를 먹기도 했다.      



과메기 전사 근태 삼촌은 몇해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재활에 힘쓰고 계시고 부산 삼촌은 작년 초, 돌아가셨다. 잔정 많고 고우셨던 외할머니는 이미 아주 오래전 내가 고3 때 세상을 떠나셨다. 내 기억에 그 이후로 외할아버지 제사는 가보지도 못했었는데 그때 말고도 우리 외갓댁 식구들은 과메기를 둘러앉아 함께 먹었을까? 돌아오는 외할아버지 제사는 가보고 싶다. 둘러앉아 과메기를 먹지 않더라도 살아온 날보다 살날들이 훨씬 적어진 엄마의 형제들을 모두 보고 싶은, 그래서 그냥 이 얘기 저 얘기 하고 싶은 소망..?     


갑자기 외할머니 보고 싶네... 쫍.

아놔~ 과메기로 샌드위치 하나 만들어놓고 이 무슨 난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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