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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주 Oct 21. 2022

족발로 기력 점프

아침밥 단상 - 아침에 드는 백만가지 생각





족발밥 ㅡ,.ㅡ



2022. 10. 12. 수요일


집에서 직접 안만들어 먹는 음식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족발이다. 일단 나는 발이 싫다. (엇! 그래서 발이 아픈가????? 벌써 다섯 달 째 족저근막염과 씨름하고 있다) 닭발, 돼지발, 소발 (우족牛足이란 한자어의 우아 떠는 이름도 있지만 라임을 맞추기 위해) 등등 발의 형태가 보이는 음식이 상 위에 올라오는건 딱 질색이다. 아니, 먹을 수 있는 수많은 식재료가 있고 육류도 사육을 통해 그토록 풍부해졌건만 왜 하필 남의 발을 먹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단 말이지? 발을 먹는 게 싫은 이유? 이유는 없다. 그냥 싫다.


하지만 돼지족발은 그 갈라진 발가락과 발톱만 보이지 않는다면 살도 많고 그 껍질도 쫄깃하니 식감도 겁나 좋고 맛 또한 훌륭하다. (물론 요리를 잘하는 식당에 한해서지만) 그래서 간혹 사다 먹거나 배달해 먹기도 한다. 가뭄에 콩 나듯.


얼마 전부터 족발이 너무 먹고 싶은데 배달시키려니 배달로 오는 양은 너무 많고 같이 딸려오는 스끼다시, 특히 막국수는 맛도 없는데다가 양도 많아 혼자 사는 나로서는 늘 처치곤란. (정말 이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배달을 해야 하니 메인 음식 외에 필요 없는 것들이 ‘양 많이’ 포진하여 지구를 아프게 한다) 먹고 싶으나 시키지 못하겠고, 나가서 먹으려니 이 또한 혼자 먹기는 애매하여 누구를 섭외해야 하는데 딱히 시간 맞는 친구나 후배도 없다. (왜 불쌍하지? ;;) 족발 먹으러 가자고 하면 술 생각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태반일텐데 족저근막염과 각종 근육 부상으로 술도 마시지 못하는 Pre-갱년기 여성이라 민폐 끼치지 않으려 “족발 먹고 싶어” 같은 말은 코어 근육 깊숙이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족발만 배달해 주는 곳을 발견해버렸다아아아아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족발이 어느새 원대한 소망이 돼 버린 즈음, [족발만 배달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는 마치 첫사랑이 이혼하고 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 만큼이나 경이로왔다.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다) 


여튼, 그리하여! 족발을 맛있게 먹기 위하여!!!

(원래 빨리 일어나지만 더 빨리 일어나) 새벽 4:30 기상. 집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나서 11시까지의 허기를 잠재우기 위해 (배달은 11시부터 된다) 어젯밤 끓여놓은 북엇국 세 숟갈을 먹었다. 뭔가 기분이 좋은 상태임을 인지하고 ‘아. 몇 달을 지속한 무기력함은 족발로 푸는 것인가?’ 하며 잠시 나의 단순함에 웃음.    


7:40am 헬스장 ; 

어차피 뛰고 걷는 건 못하니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움직여 웨이트를 좀 해보고 발 이외에 허리와 골반 통증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을 확인하며 혼자 완전 감동!  


10:50am 필라테스 를 마치고 돌아와 드디어! 족발을 시켰다!

그리고 함께 곁들일 새우젓 양념장, 쌈장(전에 만들어 놓은 것)을 담고 채소들 (마늘, 양파, 청양고추)을 썰어 담았다. 몇일 전 밴댕이 횟집에서 배달할 때 보내줬던 쌈채소를 재활용하여 담고 아껴먹었던 이경실 언니의 미나리 김치를 차려놓았다. 


그리고!! 족발이 왔다!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똥도 제대로 익혀서 싸면 오르가즘을 느낄 만큼 시원하듯이, 가슴과 머리에 품은 크나큰 족발바라기가 드디어 입으로 들어와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된 순간! 환희와 희열 그 자체였다. 밥은 반도 안 먹었고 배달된 족발의 1/3 밖에 안먹었지만 너무나 기분좋은 아침밥 한 끼를 먹었다.

오늘 저녁에도 족발을 먹고 그러고 나면 한 동안 족발은 쳐다도 안보겠지만, 

오늘의 이 한끼는 한 동안의 무기력을 기력으로 만든 최고의 영양제였다.


이제 2시가 되면 집에서 집으로 혼자 출근(?)하여 기획안을 쓰고 9시가 되면 다시 혼자 집에서 집으로 퇴근하겠지. 오늘은 어제보다 덜 무기력하게,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기력있게. 그렇게 점점 바닥에서 올라가보자...고. 족발을 점프대로 쓰던, 책을 점프대로 쓰던, 기획안에 들어갈 훌륭한 외모의 남성분들 사진을 점프대로 쓰던, 이사나 가구조립이나 설거지나 청소를 점프대로 쓰던.....


매사 에너지 풀가동녀였던 정상 궤도로 진입하려면 어쨌거나 점프는 한 두 번 필요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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