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거리두기
“생각은 자동적으로 우리 마음속에 떠오른다.” 이 사실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생각들이 아주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는 점입니다. 한 가지 사고 실험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매번 강조하지만 생각만으로는 ‘생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경험적 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실천해보시길 바랍니다. 자, 지금부터 레몬을 상상해보겠습니다. 과일 레몬입니다. 아주 신선하고 매끄러운 레몬을 떠올려보시길 바랍니다. 노란색 껍질에는 물방울이 맺혀있습니다. 이번엔 칼을 이용해 레몬을 반으로 잘라보겠습니다. 레몬의 과육은 투명한 노란빛이네요. 자, 이제 레몬을 입으로 가져가 크게 한입 베어물어봅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상상이니까요. 크게 한입 베어물어보겠습니다. 만약 여기까지 직접 상상하지 않고 글을 읽고 따라오기만 했다면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눈을 감고 위 과정을 머릿속에서 진행해봅니다.
어땠나요? 아마 실험을 제대로 했다면 입 안에 침이 고였을 겁니다. 양쪽 볼의 침샘에서 맑은 침이 분비되었을 테죠.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방금 그 어떠한 레몬도 실제로 보지도, 만지지도, 먹지도 않았습니다. 냄새를 맡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라곤 그저 레몬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뿐입니다. 하지만 침샘은 자연스럽게 침을 분비했습니다. 조금 더 생물학적인 표현으로는 우리가 상상한 레몬에 반응하여 우리의 몸은 신경과 호르몬을 이용해 침이 분비되도록 하였습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몸은 실제와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걸까요?
상상력이 부족하여 실험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인터넷에서 레몬 사진을 검색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레몬 사진을 보고 위에서 요구했던 실험을 그대로 시행해보시길 바랍니다. 아마 입 안에 침이 고였을 겁니다.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나요? 자세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고 있는 건 액정에 표현된 노란색의 픽셀들일 뿐입니다. 레몬은 실제하지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의 몸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의 몸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레몬이 지금 여기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닐까요? “생각하는 나는 착각이다”라는 명제를 떠올려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이처럼 생각은 상징적인 효과를 지닙니다. 생각만으로 무언가를 실제처럼 느끼고, 경험하고, 추론할 수 있는 건 인간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생각’이라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능력은 인간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듣기만 해도, 어떤 이미지를 보기만 해도, 심지어는 특정한 생각을 하기만 해도, 그 대상을 아주 쉽고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각은 단순히 마음속의 사건이 아닌 정신적인 ‘실제’로 경험됩니다. 생각이 실로 유용한 건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자, 이번엔 한 가지 실험을 더 해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시켜보았을 때 이 실험은 이전 실험들보다 더 대충 하고 끝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스로가 바보 같아 보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역시나 중요한 실험입니다. 반드시 따라해보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눈을 감고 레몬이라는 단어를 30초 동안 반복해서 빠르게 말해보겠습니다. 레몬, 레몬, 레몬, 레몬, 레몬, 레몬… 이렇게 반복하면 됩니다. 소리를 내서 말해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바보 같아 보인다는 걸요. 부끄럽다면 혼자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여 해도 괜찮습니다. 어떻게든 따라하기만 하면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아주 중요한 경험적 지식이 생길 테니까요. 자, 시작해볼까요? 30초입니다. 레몬. 반복해서. 빠르게. 소리내어서.
고생하셨습니다. 자, 이제 레몬을 떠올리면 어떤가요? 침샘에서 침이 흘러나오나요? 지금 내 머릿속에서 레몬은 이전에 상상했던 그 레몬만큼 강렬한가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레몬이라는 단어는 동일하게 존재하지만, 그 단어 자체의 일반적인 상징은 훨씬 더 약화되었을 겁니다. 이처럼 생각은 상징적인 효과를 지니지만, 그 관계는 아주 임의적입니다. 우리가 간단한 방법으로 그 관계를 잠깐 동안 해체시키자 생각은 곧바로 그 상징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일평생 괴로워하고, 종종 떨쳐내려고 노력하고,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하는 이 생각이라는 것이 기껏해야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
조금 더 직접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마지막 사고 실험입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 중 가장 부끄러운 일, 또는 최근 겪었던 아주 괴로웠던 일을 떠올려보길 바랍니다. 잠시 동안 이 일을 실제로 머릿속에서 되새겨보세요. 당시 나의 모습, 생각, 그때의 기분, 떠오르는 생각들. 그 경험을 잠시 되짚어봅니다. 어땠나요? 아마 과거와 동일하게 부끄러움 또는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겁니다. 누군가는 너무 부끄럽고 괴로워서 이 지점에서 책을 덮어버렸을 수도 있을 테죠. 우습지 않나요? 특별한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휴대폰, 모니터, 어쩌면 활자 속 검은 글씨체를 바라본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아주 빠르게 상징적인 의미를 되찾고, 지금 이 순간으로 가져와,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강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생각은 내가 능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그 생각은 마음속에 자동적으로 떠오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큰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생각은 아주 무작위적으로 튀어올라 우리에게 강력한 상징적 의미를 발휘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미 잊혀지고 지나간 과거도 지금 이 순간의 우울이 될 수 있고, 아직 다가오지, 어쩌면 영영 발생하지 않았을 먼 미래의 사건도 지금 이 순간의 불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생각들에 아주 강하게 영향받습니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상상의 세상을 실제로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러한 세상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갑니다. 생각이 실로 유용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자, 이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생각하는 나’는 착각이다. 생각은 자동적이다. 심지어 그러한 생각은 상징적인 효과를 지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보입니다. 한 가지 해결책이 있습니다. 관계를 다시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해서는 생각과 다시 관계 맺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음속에 생각이 떠오를 때 이를 더 잘 포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스턴싱은 생각을 알아차리고, 생각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훈련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뭐래. 생각은 내가 하는 거야. 나는 어떤 생각이 떠올라도 그다지 영향 받지 않거든?” 그렇군요. 레몬, 레몬, 레몬... 자, 그 생각이 떠올랐고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게 일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채 다음 단계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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