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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펠 Jun 20. 2024

타자기의 매력

타자기라는 기계가 있다. 검은색 먹지 리본을 끼워 두고 그 리본 종이 앞에 정확히 위치하도록 잘 조절한 후 자판을 쳐서 지렛대의 원리로 활자를 날려 힘껏 리본을 때린다. 그러면 활자가 리본을 때리는 힘으로 종이까지 때리면 리본의 먹이 종이에 활자에 새겨진 모양으로 글자가 찍히는 것이다. 지렛대가 계속해서 동작하는 만큼 철컥철컥 하는 소리는 글을 쓰는 일이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완전 수동식 타자기나 전기식 타자기는 종이의 틀이 움직이고 활자는 똑같은 위치를 계속 때리게 되어 있지만 전자식 타자기는 활자 위치가 움직이고 종이의 틀은 움직이지 않는데, 이 차이는 단순히 '누가 움직이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글 쓰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서 종이가 움직이지 않는 방식은 자판의 너비만큼의 공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지만 종이의 틀이 움직이는 방식은 종이의 틀이 움직이는 양쪽의 공간까지 확보되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요즘은 전기식은 너무 시끄럽고 전자식은 차라리 컴퓨터가 편리하기 때문에 누군가 중고 타자기를 구입한다고 하면 수동식 타자기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당근마켓만 보아도 그렇고 구식 타자기를 수리해서 판매하는 곳들도 대부분의 제품이 수동식 타자기이다. 나도 하나 장만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불편함이 타자기를 가지고 있다는, 혹은 타자기를 사용해서 글을 쓴다는 것의 상징성보다 너무 커서 어쩔 수가 없었다.
타자기의 독보적인 정체성은 바로 '글을 쓰는 데에만 사용하는 기계'라는 것이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필기구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필기구를 구분하는 것 같은. 그런 기계의 매력은 바로 글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앞에 앉기만 해도 글을 쓴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아 머리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배부른 줄도 모르고 맛에 집중을 하듯이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뭔가 준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기 전에는 우리의 의지라는 것이 대단히 허약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리  마음을 먹었다 해도 바닷가의 모래성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데다, 나름 파도에 대비를 한다고 해도 달려오는 아이가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허망한 결말에조차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이중의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글을 써야 한다는 의지가 굳건한 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글이 써지지는 않는다. 물론 당연히 예열해야 하는 오븐이나 샤워 부스의 온수처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라도 알고 있다면 그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수록 글을 써지는 시간은 더 오래 기다려야 찾아온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 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타자기가 글을 쓰게 도와준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장난감 같은 기계장치여서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도와준다는 것일까? 아니면 예열을 도와주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게 해 준다는 뜻일까?
조금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이야기하타자기가 도와준다는 말은 타자기로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글을 쓰는 것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타자기를 관찰하거나, 키를 단순히 눌러보는 것만으로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는다. 어떤 워드 프로그램도, 타자기도 수첩도 그런 기능은 없다. 타자기가 글을 쓰는 것을 도와주려면 우라가 글을 써야 한다. 애국가라도 써 보기 시작하면 그제야 머릿속에 문장이라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막상 그런 아이디어가 눈앞에 나타나면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려고 생각한 것이 십 년이 지난 것처럼, 너무 당연한 생각인데 그것을 어떻게 잊고 있었을 수 있나 싶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 당연한 것이 떠오르려면 마중물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문장이라도 눈앞에서 야 한다. 반드시 타자기일 필요 없다. 글을 쓰기 위한 수첩도 상관없다. 나는 한때 수첩과 만년필을 사용해 보았는데, 손가락이 아파서 곧 키보드로 바꾸기는 했지만 그때도 낙서하듯 끄적이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 떠오르게 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 지금도 글감의 메모는 만년필로 쓴 글씨를 연상시키는 굵은 볼펜을 사용해서 남긴다. 때로 그렇게 메모 한 줄 남긴 것이 다른 아이디어를 촉발해서 전혀 다른 짧은 글을 쓰게 되기도 한다. '글쓰기에 필요한 도구'라는 인식이 박힌 도구를 사용하면 글을 쓸 만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진다.
것이 타자기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타자기여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쓸데없는 한 페이지 정도는 희생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 당연한 이야기, 책상 위에 어제 읽던 책이 그대로 놓여 있다거나, 오늘은 아침을 먹지 못했다거나 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아무 편견 없이 쳐 나가기 시작하면 금세 속도가 붙을 것이다. 속도에 집착하지 말고 글에만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이 어느 정도 속도감 있게 흐르기 전에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고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반드시 타자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컴퓨터 모니터의 하얀 화면을 보면서 생각 없이 빨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똑같다. 검정 글씨로 된 문장들을 보아야 생각이 본격적으로 떠오른다. 결국 생각도 검은 글자의 형태로 새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니터를 보면서 워드 프로그램에 글을 쓸 때는 나중에 쓸데없는 글은 지울 수 있으니 더욱더 필요한 글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마음껏 써볼 수 있을 것이다.
타자기는 번거로운 물건이다. 여러 번 매물을 입맛 다시며 보았지만, 역시 한글 타자기는 영문 타자기처럼 예쁜 물건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인테리어 소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타자기를 장만한다면 한글 타자기여야 하는데 그중에서 예쁜 것이 있기는 하겠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없으니 고를 수가 없다. 그리고 타자기로 종이에 글을 쓰고 나면 다시 베끼거나 일일이 스캔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요즘은 스캔하고서도 글자를 인식해서 뽑아낼 수 있다고 하는데 타자기 글씨체 얼마나 잘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단지 타자기로 쓴 글씨, 타자기로 친 글이 있는 종이가 필요한 것은 니까.
결국은 이렇게 생각은 다시 돌아서 원점으로 돌아온다. 입맛을 또 다시기는 했지만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타자기 리본도 언제 단종될지 모른다고 한다. 단종될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다고 하기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3.5인치 디스크가 들어가는 워드프로세서가 잘 팔린다고 하니 타자기도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사용할 용도이다.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필요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매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기 시작하는 데에는 타자기든 컴퓨터든 글을 써 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타자기도 준비운동하듯이 사용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다.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 하지만 제목은 '타자기의 매력'이라고 해야겠다. 어쨌든 아직까지 고민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닌 듯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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