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상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p L Sep 29. 2024

책 1을 덮고 책 2로

요사이 며칠 동안 슬럼프에 시달렸다. 운동을 하거나 새로운 연구를 하는 거창한 도전을 하면서 슬럼프에 빠지면 내세울 말이라도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돌아보니 슬럼프의 원인이 단순히 책을 읽다가 진도가 지지부진해진 것이었는데, 시작은 그냥 소설책이었지만 삶의 모든 부분이 마치 도미노로 연결된 지반 위에 지어진 것처럼 책을 읽는다는 한 부분이 쓰러지니 다른 부분도 모두 이어서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그 사이에 피곤한 일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일들 중에서 온몸의 기운 빠질 계기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 점차 맥주를 보아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술 때문인가 싶어 맥주를 거의 이틀 건너 하루씩 마시던 것을 그만 마셔 보았지만 그것도 생각해 보니 더위가 가시면서 시원한 맛에 마시던 맥주의 재미가 절반 이상 날아가 버린 것뿐이었다. 회사 일도 생각보다 잘 풀렸고, 하려던 일들 중 지지부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만 빼고.
2주 전에 시립도서관에서 전자책을 하나 빌렸다. 두 권으로 된 스티븐 킹의 '욕망을 파는 가게'였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전에도 전자책은 잘만 읽었었다. 심지어 전자책 리더로 읽은 책이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아서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컬러로 다시 본 후 종이책을 구입한 적도 있다. 그러니 전자책이어서 생긴 문제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조금 돌아가자면, 내 성격이 솔직한 편은 아니라는 건 먼저 밝혀야겠다. 부정적인 뜻은 아니고, 그저 함부로 왈가왈부하거나 기분 나쁜 소리를 면전에 대고 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내 성격이 솔직해서 그래.'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데도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기분이 나쁠 때와 똑같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는 사람과는 최대한 멀리하려는 편이다. 식당에서도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당연히 컴플레인은 하지만 꼭 그래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그러지도 않는다. 대신 다시는 그 집은 가지 않누군가 근처 맛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런 집이 있다고 꼭 설명해 준다. 코엑스 안에 있는 한 분식집에서 공깃밥 넣는 곳에 자기들 먹던 밥을 함께 보관하다가 우리 테이블에 고춧가루 잔뜩 묻은 밥을 가져와서 불러서 뭐라고 했더니 밥공기만 바꿔주고는 웃으면서 계속 놀랐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결국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을 때도 그랬다. 그 사람들이 싸운다고 해서 고칠 것도 아니고(고쳐도 나에게는 도움 될 것도 하나 없기도 하고) 내가 바보라서 다시 가는 것도 말이 되지 않으니까. 이런 것을 보고 뒤끝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격인 걸 어쩌겠나. 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제 입으로 말하면서 대신 면전에서 지랄지랄해야 속이 풀리는 사람도 있는 걸. 뒤끝 있다고 욕하는 사람은 내가 면전에 욕을 퍼붓지 않아서 우습게 보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든다.
지금 성격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전자책 소프트웨어 때문이다. 시립도서관에서 그 책을 전자책 버전으로 빌리면서 이용한 것이 영풍문고 도서관 앱인데, 영풍문고 앱은 서점 앱부터 해서 느낌이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에 가면 웬만하면 영풍문고 오프라인 매장에 들르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평범한데 앱은 왜 그런지 모르겠다. 전자책의 글자들도 어느 정도 전자잉크 설정을 따로 맞춰줘야 자연스럽게 보이고 글자 크기라던가 하는 것의 설정도 매우 조악하다. 리디 구독이나, 교보 도서관이나, 예스 24 도서관이나 알라딘 전자책 등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설정이다. 일부러 그러는 건지 돈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책이 잘 읽히지 않는 것이 소프트웨어 문제인 줄 알았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그게 소프트웨어 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기분이 나쁘면 하나하나 지적해 주는 성격이 아니다. 이건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그냥 현상을 설명하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결론이 반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영풍문고 도서관 앱에는 진작 적응했고 지금 두 권째 접어드는 상황에서 내린 결론은 가독성 같은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소설 자체가 나에게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 잘못한 건 없다. 중간중간에 몰입되던 부분도 있기는 했는데, 나와 맞지 않은 것은 뭔가 억지로 만든 할리우드 영화처럼 빌런이 알고 보니 이런 능력도 있더라, 저런 능력도 있더라 하면서 점점 포장이 처음과 달리 두꺼워지는 것 같아서다. 이런 소설은 마지막에 클라이맥스에서 쾌감이 그만큼 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걸 확인할 생각이 없으 스토리를 읽어나가는 것이 힘겨울 수밖에. 홀리 기븐스가 나오는 다른 소설을 구해다 놓아서 빨리 이 책을 끝내고 그 책을 읽으려는 마음도 어느 정도는 기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팩트는, 그분의 소설을 대부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우려의 마음도 없지 않다. 제발, 이것이 슬럼프의 원인이 맞기를. 생활에는 흐름이 있어서 그것이 막히는 느낌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사실 경제적 자유라는 것을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그렇게 흐름을 막는 것들 중 많은 부분이 돈으로 치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뒷부분이 궁금한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나중에, 자연스러운 기회가 왔을 때 보기로 하고 반납 처리를 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다시 돌아보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4년, 드디어 가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