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교양 문학 시간에 배웠던 것 중,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이 생각이 납니다. 늘 익숙하게 보고 지나가던 것에 신선함을 불어넣어서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문학의 순기능에 대한 것이었던가 싶은데요, 당시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개념이라 번역을 한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그렇지 왜 그렇게 성의 없이 번역했을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굳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알아듣기 쉬운 것을 어려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겠지요. 물론 그 말 자체를 하나의 개념을 아는지 테스트하는 용도로 사용한다면 낯간지러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무언가를 가리키려고 내뱉은 말을 그 자체를 신성시하면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들으면 거부감이 느껴집니다. '낯설게 하기' 역시 비슷한 말을 하면서 그 말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는 식으로 곁들이는 것은 좋으나 그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예를 들어 '교양 문학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는 버전의 저'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하나의 전문 용어로써 사용을 하면 그건 충분히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말 말고는 설명할 말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주위가 일상이 아닌 낯선 무언가의 배경이 되는 느낌을 표현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막 잠이 깨었을 때, 내가 어디에 있는지에서 시작해서 내면을 향해 내가 누구인지 깨달아 가고 밖으로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을 깨달아 가는 과정 중간에 억지로 정보를 입수할 때 일어납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고개를 숙이고 살짝 잠이 들었습니다. 깨는 순간 다음 생각에 덮여서 그 글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어떤 글을 수동 타자기에 한글로 글을 쓰는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꿈까지 꾼 건 아니고, 선잠이 든 상태로, 손에는 핸드폰의 무게를 느끼면서, 무슨 역이라고 말하는 방송 소리를 들으면서 잠결에 상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 지금 멈추려는 역이 무슨 역인지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을 떴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두 자리 비어 있는 건너편 좌석과 그 위의 창문, 그리고 그 밖의 풍경이었습니다.
풍경은 나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당연히 하늘만 보일 줄 알았는데 나무들이 보여서 의외였습니다. 나무들은 이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가 다 되어 가서인지 완전한 초록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나무가 초록색이지만 나무가 초록색인 것이 아니라 초록 색의 수많은, 조그마한 나뭇잎이 붙어 있어서 그런 색깔로 보이는 걸 거라는 것을 느릿느릿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 잠시 그 상태로 눈을 감았더니, 모든 나무에 '초록색 나뭇잎'이라는 조그마한 글자들이 수없이 달려 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눈을 떠 보니 눈에 보이는 나무에 그렇게 꼬리표를 붙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무의 모든 세포에 나무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해도, 세포벽의 무늬를 보는 것과 그다지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나뭇잎에 나뭇잎이라고 새겨져 있거나, 나뭇잎 무늬를 나뭇잎이라고 읽거나 모두가 그렇게 읽도록 약속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각각 나타내는 한자가 모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옛날 사람들의 개념을 가지고 나온다고 해서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약속이 되면 사용될 것이고 약속이 되지 않으면 사용되지 않겠지요.
그 나뭇잎의 글자화를 상상하면서 느낀 것은, 충분히 똑같은 현상도 글로 표현하면 낯설게 할 수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그것을 타고 부산에 가는지는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를 몰라도 사용은 할 줄 아는 것, 그리거나 만들 줄은 몰라도 감상은 할 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공기 중에는 바람소리 대신 웅장한 클래식의 호른 소리가 무겁게 깔리고, 회색으로 된 '구름'이라는 글자에서는 수많은, 투명한 '물'이라는 글자가 쏟아집니다. 그 가운데로 '철판'이라는 글자로 둘러싸인 '지하철'이라는 큰 글자가 지나가고 지하철 아래에는 조그맣게 '철로'라는 글자가 수없이 쓰여 있는 레일이 두 줄 지나갑니다. 그 레일을 따라 '자갈밭'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반복해서 쓰여 있고, 그 옆으로는 회색으로 '방음벽'이라는 글자가 세워져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갈색'나무'들이 서 있고, '나무'의 모든 획에는 많은 초록색 '나뭇잎'이라는 글자가 마치 장모 강아지의 털처럼 복실하게 붙어 있습니다.
글 속의 세상은 아마 이런 모양이 아닐까요? 글로 이루어진 세상이니 모든 것이 글자인 세상. 책을 펼치면 모든 것이 하얀 종이 위의 검은 글씨인 이유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치 원자와 빈 공간으로만 이루어진 우리 세계가 이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채로운 모든 것으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이듯이,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글자들 역시 실체가 되어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면 의미가 중심이 되기 때문에 글자의 획과 획 사이의 공간은 의미가 없게 되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책을 읽는다는 행위, 글을 쓴다는 행위는 단순히 기호를 사용하고 말을 사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와 우리 세계를 연결하는 일인 것입니다. 글을 읽는 것은 글자로 된 세계 안에 머리를 들이밀고 실제 그 안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경험하려 하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들고 다닐 수 있게 글자로 치환해서 들고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가지고 와서 펼치면 우리는 그 안을 들여다보고 치환한 세계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