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를 간단히 정리하고 그 앞에 앉습니다. 책상에 앉는다는 행위 자체가 책을 읽거나 뭔가를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하다못해 인터넷 서핑을 하더라도, 침대에 누워서는 핸드폰이나 들고 있겠지만 책상에 앉으면 적어도 컴퓨터로 할지 핸드폰으로 할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점점 컴퓨터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기에 여전히 책상에 앉는다는 것은 하나의 의지의 상징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에게 책상에 앉는다는 건 그렇습니다. 무엇을 쓰거나 무엇을 읽거나. 컴퓨터는 윈도 운영체제가 설치된 태블릿을 사용하기 때문에 꼭 책상에 앉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반면 책을 읽는 것과 무엇인가를 쓰는 것은 반드시 책상에서만 합니다. 책은, 항상 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읽었던 책 중 좋았던 것을 반복해서 읽는 일이 많아서 결과적으로 '많이 읽는다'라고 하는 범주에는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음에도 매번 책상에서 진지하게 읽는 것을 고수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다고 얼마나 대단한 글이 나오냐고 하면 저도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계속 쓰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수첩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밖에서는 계단 난간에 대고도 잘만 써지던 글이 집에 와서는 반드시 책상에 앉아야만 써지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쓰는 것을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는 것을 보고 읽어보겠다고 한 사람들이 재미가 없다, 잘 못썼다, 이 부분이 이상하다, 같은 평을 하면 일이 년 아예 쓰지 않고 처박아두었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꺼내서 써보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초, 중, 고 12년동안 개인적인 글을 쓴 것을 모으면 한 달치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 수첩에 끄적이기 시작하고 나서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언제, 어떤 이유로 다시 쓰기 싫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겁을 내고 진지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밖에서는 핸드폰에 잘도 끄적끄적하면서 집에서는 그렇게는 써지지 않습니다. 'ㅇㅇ에 대해 한 번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가도 'ㅇㅇ'에 대한 문장만 끝나면 더 이상은 이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먹이를 주어도 함정인가 싶어 경계하는 고양이에게 츄르를 마침내 입에 대게 하려는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건드리며 쓰다 보면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아무 피드백 없이 재미있게 글을 썼다면 지금쯤은 아예 글을 쓰는 것에 미련을 버렸거나 글을 쓰는 일을 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글을 써본 분량과 기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적어서 스스로조차 잘 알지 못하는, 심지어 문체의 특징도 다시 보아도 딱히 없는 것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니 진지하게 연습을 하듯이 한 문장 한 문장 생각을 잘 따라가며 쓰고, 적절한 시기에, 너무 빠르지 않게 글이 끝맺음을 하면 혼자 뿌듯해하는지라 책상에 앉아서 (바른 자세는 아니지만) 계속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바닥에 깔아 놓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얼마나 써야 제 글에 대해 알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쓰면 덜 조심스러워도 된다고, 즐거움 이면에 있는 깨질 것 같은 유리로 된 다리를 건너는 위태로움을 무시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글을 못썼다고 말을 해도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글을 보여주고 아는 사람들의 피드백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계속 쓰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제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밟지 않는 것은 제 책임이라는 것을 알 때도 되었으니까요. 아마도, 이런 글쓰기 자체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사실보다 다른 것에 대해 더 많이 쓰게 될 때가 그 조심성이 필요 없어질 때겠지요.
일이 있어서 새벽에 일어났다가 다시 잘 자고 출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피로가 많이 쌓였나 봅니다. 햇살이 정말 봄 같다며 즐거워하던 아침이었지만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이토록 의기소침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