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취미

by 루펠 Rup L

얼핏 생각하면 말이 많은 사람들이 할 말을 반만 주워 담아도 글에 쓸 것이 많을 것 같다. 영어회화는 확실히 말 많은 사람이 똑같은 이야기를 영어로 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여러 표현들을 빨리빨리 배우고 연습하는 경향이 있다. 영어라는 게 공부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머리로 외우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욕심을 덜 부리고 덜 급하게 달려들고 꾸준히 체화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게, 영어 회화에서는 파트너를 앞에 두고 새로운 표현이나 새로운 주제에 대한 단어를 주고 말을 하도록 연습을 시키게 되는데 내 경우에는 그런 주제로는 남들과 한국어로조차도 이야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를 영어로만 바꾸면 되는 사람들과는 연습의 질이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필요한 말을, 단어를 조립하듯이 해서 전달하는 것은 영어나 한국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는 또 다른 문제이다. 나에게 있어 글을 쓰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글을 쓰는 모습조차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고 쓴 글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공개하는 건 조금 다른 차원이기는 하다. 다 다듬고 나서 보여주는 거니까.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글쓰기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상대가 없으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혼잣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오히려 남들과는 대화를 그다지 많이 하지 않고, 말이 많은 사람이 혼자 있을 때조차 쉬지 않고 혼잣말을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럼 글을 쓰는 것은 혼잣말을 하는 것과 같은 차원인가, 하면 그것도 딱히 맞지는 않다. 나는 혼잣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혼잣말하는 습관이 들 때가 있지만 스스로 깨닫고 나면 곧 입을 다물고 혼잣말을 하지 않게 의식적으로 신경을 쓴다. 남들이 들을 수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들면 곧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줄어든다. 글을 써야 한다고 느낄 때가 아니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저절로 글로 쓸 것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쓰지 못한다. 아마추어조차 이러니, 글 쓰는 일이 업인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써야 하는 일이 잦을 테니 그 고통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듯하다. 그런데 혼잣말을 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덜 든다면 그건 일종의 풍선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뭔가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데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은 그 욕구를 충분히 풀고 있고 대화를 별로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글을 써서 그 욕구가 쌓이지 않게 하는데 혼잣말을 하면 마치 풍선에 투명테이프를 붙이고 바늘로 구멍을 뚫었을 때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 욕구를 풀어버리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몇 시간이고 쌓여서 압력이 생기면 컴퓨터 자판을 앞에 놓고 앉자마자 뭔가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욕구는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압력을 낮춰서 글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그 단계로만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게 되면 미칠 노릇이 된다. 원인을 모른다면 글쓰기에 소질이 없어서 마음만 앞서고 글은 안 써지는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매번 그럴 때마다 혼잣말이 간간이 나오는 것을 자각했고 이제는 혼잣말은 술, 담배만큼이나 버릇이 쉽게 들지만 버려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행운아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쓰고 싶을 때마다 쓸 수 있으니 이게 행운이 아닌가. 사실 말도 많고 친화력도 뛰어나고 대화 주도형이면서 좋은 글도 기막히게 많이 쓰는 사람이 없을 리가 없지만 내 관심사가 아닐 뿐이다. 단지 나는 내 성격 상 지금 내 상태에서 대화를 좋아했다면 글은 쓰지 못했을 거라는 건 알기 때문에 단지 글 쓰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성격에 감사하다. 사실 한국에서 사회생활하기에 좋은 성격은 아니기는 하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손해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보았을 불이익을 모두 되돌릴 수 있다면, 지금 글을 가지고 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글 쓰는 재미를 반납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다. 머릿속에 정해진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의 세트로서 남아 있는 4차원 이미지를 말로 펼쳐낸다는 건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본인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해내려 할 것이다. 그러니 나로서는 그 정도 불이익을 감수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보통의 예술 분야가 아니라 단순히 글 쓰는 일이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즐기는 돈 안 드는 취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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