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를 찾아야 하는 이유

끝까지 같은 속도로 나아가기

by 루펠 Rup L

첫 단어에는 항상 임팩트가 있습니다. 읽는 사람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산길이 시작되는 등산로 표지석 같은 것이겠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육상경기 출발선에서의 총소리와 같은 것이어서, 첫 단어 전에는 바위처럼 긴장되어 있다가 다음 순간 전력질주를 하게 되는 경계에 있는 중요한 순간의 상징이 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힘을 빼야 한다고 하는데, 글을 쓰는 일 역시 시작 단계에서부터 힘이 많이 들어가면 스스로 그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어질 문장을 쥐어 짜내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글을 끝맺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첫 단어에서 오는 임팩트를 임팩트로 받아들이게 되면 바로 그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시작하는 지점은 맞지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구슬이 빠르게 내려가도록 내리막으로 된 레일이 나 있고, 글을 시작한다는 것은 구슬을 내려가지 않게 막고 있던 판자를 치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내가 달려 나가야 하는 게 아니라 중력으로 구슬이 굴러가기 시작하듯이 문장이 스스로 흘러가도록 놔둬야 합니다. 그리고 구슬이 가는 길만 잘 따라가면 됩니다. 거기서 힘이 들어가 버리면 구슬은 혼자 굴러가고 나는 넘어져서 점점 중력의 힘으로 빨라져 가는 구슬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구슬이 목적지에 도달할 때, 내가 그것을 글로 옮겼는지 여부는 가리지 않고 글이 끝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힘을 빼고 따라가더라도 글로 옮겨 적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생각은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갈 수 있고, 다시 돌아와 원래 줄기로 합류하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무조건 받아 적는 행위가 그 생각의 흐름을 오히려 가로질러 막아 버릴 수도 있고, 글이 앞서 나가서 생각의 방향을 틀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첫 글자의 압력을 압력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기 시작했다면 거기부터 끝까지 역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스럽게라는 것이 또다시 걸림돌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받아쓰기라면 들리는 대로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써야 하는 것이 이미지고 영상이면 어떻게 써야 할까요? 대화를 상상한 거라면 그대로 적으면 되지만, 심상을 적을 때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문장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는 곳이 이곳입니다.
영어 공부를 생각해 봅시다. 영어회화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문법 분석을 하고 단어의 품사를 따져서 해석을 하고 이어 붙이고 한국어로 알아들은 다음 거기에 대한 대답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영어 문법과 대칭하여 영작을 해야 한다고 해 봅시다. 이렇게 쓰고 나니 영어 공부가 필요 없는 100가지 이유 같은 책에 나올 이야기 같긴 합니다. 어느 정도는 자동으로 반응을 하고 이미지로 받아들여야 대화 중에 알아듣는다고 할 수 있고, 대답도 자연스럽게 절반 이상은 반사적으로 나오는 게 있어야 대화를 나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영어 문제를 푸는 것과 달리 대화에는 연습이 있는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심상을 다루는 것도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나에게 이미지와 영상을 준다면, 나는 절반 이상은 반사적으로 적어 내려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멈칫하는 사이에 생각은 멈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글을 쓰는 일이 시간 싸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떠오르는 대로 글쓰기의 경우는 시간 싸움이되, 타이밍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멈칫하는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그런 생각을 받아 적으면서 어느 정도 정형화된 표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정형화라는 건 보통 찍어내듯 똑같은 것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약간 다른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똑같이 반응한다기보다는, '이런 종류의 이미지는 어떠어떠한 종류의 단어 중에 고르자' 같은 후보군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컴퓨터로 한자를 칠 때 한글로 소리를 쓰고 '한자' 키를 누르면 해당 발음을 가진 한자들의 리스트가 나오고 우리는 그중에서 처음에 의도했던 것을 선택해서 입력하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발음 하나에 연결된 몇 개의 한자처럼 이미지 하나에 여러 표현을 연결시켜 놓고 우리는 그 생각을 받아 적으면서 선택만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과 함께 문장이 흘러갈 때 '어떤 표현을 하지?'라며 문장만 멈추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이런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충분히 써 보았다면 문체가 없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을 쓰는 속도가 느리기도 하고, 글이 끝나면 끝나는 대로 아쉬울 것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어 회화를 연습한다고 하면서 혼잣말을 죽어라고 한다고 대화가 되겠습니까? 글의 흐름을 끊지 않고 최대한 멀리 가보자는 도전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제야 문체를 찾는 연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글은 어차피 나 혼자 볼 거라는 기본적인 인식이 문체를 개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것입니다. 생각은 내 머릿속에 있어서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글로 표현을 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파기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입니다. 칼이나 라이터 같은 도구처럼 우리의 신체를 벗어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뭔가를 만들어 낸다면 쓰레기를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는 건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일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많이 씁니다. 아닙니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허공에 떠 다니던 생각들이 형체를 가진다는 것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 아름다운 일이 한 번에 한 번씩, 존재해야 했던 길이대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나 자신이 노력해서 도달해야 할 목표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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