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다물기 전, AI에게 내 말의 온도를 묻는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나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말도 같이 자랄 줄 알았다.
아는 게 많아지면
굳이 조심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는 근사한 말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는 달랐다.
말은 새로워지기보다
익숙해졌다.
늘 하던 이야기,
이미 여러 번 해본 설명,
끝이 정해진 조언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로서는 진심이었고,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을 말들이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이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 말이 너무 오래되어서.
내가 막연히 느껴온 이 불안감이
분명해진 건
어느 강의 자리에서였다.
강의중 쉬는 시간,
한 리더가 조용히 다가와
머뭇거리며 물었다.
“강사님, 제가 하는 말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AI를 활용할 방법이 있을까요?"
순간 웃음이 날 뻔했지만,
이내 마음이 묵직해졌다.
그것은 기술적인 궁금증이라기보다,
'말'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에
더 가까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에게 이렇게 답했다.
“하시고 싶은 말을 사람에게 하기 전에 AI에게 먼저 말씀하시듯이 적어보세요.
그리고 그 내용이 잔소리처럼 들리는지 한 번 물어보세요.”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 질문은
내 머릿속을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제야
내 말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 아주 사소한 일에도
AI의 도움을 받는 편이다
청소기 하나를 살 때도
AI를 켜고 성능을 비교하고,
아이의 간단한 질문에도
AI를 통해 더 나은 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그렇게나
기술의 도움을 빌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왜
내 '말'에 대해서는
그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아닌 일에는
그렇게 공을 들이면서,
내 입에서 나간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남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지나쳐온 건 아닐까.
말을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잘 들리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
이미 충분히 아는 사람일수록
그 마음은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어른이 된다는 건
말을 더 많이 하는 일이 아니라,
말을 더 무겁게 다루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입을 닫으라는 그 말은
어쩌면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지
한 번 더 헤아려 보고,
그만큼 더 정성스럽게
말을 골라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이제야 그 흔한 말이 아주 조금은 이해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