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타인에게 보답을 기대하며 무언가를 베푸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런 이들은 시간이 흘러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많은 경우 분노를 띄게 되는데, 이 분노는 자연스레 자신이 노력을 투자한 상대에게 향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메커니즘은 매우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 바로 애초에 자신이 한 배려를 상대가 원했는지, 혹은 기쁘게 여길지에 대한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망에 완전히 매몰되어 타인의 욕망을 인지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꼰대로 예를 들어보자. 그들에게 꼰대 짓에 대한 동기를 물으면 하나같이 이런 식의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생각해서', '챙겨주려는 마음으로', '옛날에 나 같아서', '잘됐으면 해서'.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진지하게 선의를 바탕으로 한 도움이라고 생각하는데, 애석하게도 그 도움들은 사실 대부분이 자신을 어필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자기 자랑'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들은 타인을 배려한다는 명분 하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떠들어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고픈'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상대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들었음은 물론 자신에게 필요한 실재적 정보나 조언 등의 욕망은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이에 필연적으로 사이가 멀어지게 되고 아마 꼰대의 입에서는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가 나올 것이다. 자신에게 고마워하며 띄워주지 않아 존재를 확인하려는 욕망이 좌절된 탓이다.
데이트 폭력도 똑같다. 가해자들은 '너무 좋아해서', '놓치기 싫어서'라며 자신의 욕망에만 집중한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진정으로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상대는 오로지 자신의 욕구('나랑 사귀어줘', '섹스해줘')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고 여기에다가 누가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던 지금까지의 '보답을 위한 배려'가 보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분노로 번지면 '왜 안 만나줘' 등의 심각한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 진심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진심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글로만 배운 것이다.
진정한 배려는 욕망의 비중을 상대방의 것에 치중시켰을 때 이루어진다. 그 와중에 나의 배려로 인해서 상대를 기쁘게 하고 싶은 나의 욕망과 그러한 배려를 원했던 상대의 욕망이 동시에 충족된다면 그게 최고일 것이고. 내가 진짜 아끼는 사람이라면 중장기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 함께하고 싶은 내 당장의 욕망은 좌절되더라도 상대의 행복을 우선시하여 보내주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하물며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불행해서 헤어지고 싶다는데 거기에 내 욕망을 들이미는 경우라면 할 말이 없다. 예전에 어떤 분의 말마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화를 낼 일이 아니라 슬픈 일이다. 스스로 감내해야 할 나의 일이다.'
내가 지금 하는 배려가 나를 위한 건지 상대를 위한 건지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와 타인의 욕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구분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고. 자기가 그냥 살겠다면야 뭐 알 바 아니지만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