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다다 Aug 08. 2021

말짱의 적

적이 있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미움의 대상은 내 적일까요? 지금 저는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아주 좋은 상태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이 괜찮습니다. 누가 뭘 하자고 해도 대체로 좋다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지도 않지만요.)  



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에 대한 응어리가 쌓여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 그들의 부조리함에 대해 털어놓곤 했으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잠시 그 응어리가 풀려나가는 것도 같았으나 그렇다고 내일이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내 그런 응어리를 듣고 가장 기억에 남는 좋은 충고는 그가 누구를 죽이거나 한 살인자도 아니잖아, 였습니다. 그냥 어디서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나 거짓을 흘리지만, 그냥 사람 사는 동안 벌어지는 일이지요. 지금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바라던 역할에 내가 관심이 없었다는 데 대한 짜증과 약간의 질투, 탐욕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고 멀리 보면 자기의 못난 결을 드러내는 일이지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기 십상입니다. 뒷다마의 공화국이랄까요.  



그래서, 대놓고 '너 그랬다며? 그러지마' 하면 싸움이 됩니다. 싸움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일대백으로 싸워 이긴다는 전설 말고 진짜 싸움을 하려면요. 그런 의미에서 빈센조의 대사 중 '적과 싸울 때는 적의 능력, 탐욕 교활함을 고려해야 한다‘는 대사를 듣고 충격을 받았지요. 단 한 번도 내가 그래본 적이 없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진지한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나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제게는 원칙이 생겼는데, 되도록 그 사람이 없는 데서 그 사람에 대해 좋은 말이 아니라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왠만하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순간적으로 어떤 판단이 들 때가 있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지 않다 보면 흩어집니다.   



예전의 미움이 흩어져 지금 거의 희끄무레해진 것처럼, 순간적으로 어떤 판단이 들건 말건 그는 그대로 살아가고, 그가 사람을 죽이거나 크나큰 해를 입힐 사람이 아니기에, 그렇구나 하고 맙니다. 그는 내 적이 아니지요. 그 순간 그런 판단을 밖으로 내뱉으며 나의 판단에 동조해주기를 바랄 때, 그때 내 적은 바로 나이게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공자님 말씀이지요. 나를 다스리고 집안을, 나라를, 천하를, 그런 의미인데요. 20대때 친구랑 우리는 수신이 안 되니 잘 안 되는 거야, 했는데 지금도 대부분 내 적은 나입니다. 나랑 싸우는 헛깨비 같은 싸움을 매일 하는데 이 싸움이 잘 되지 않습니다. 매일 일어나 운동을 하고 씻고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글을 쓴다, 이 단순한 루틴이 쉽지는 않습니다.   



거리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랑 제일 가까워서 나랑 살기 힘들고 어렵고요. 그 다음 가까운 사람들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내가 잘 안 되면, 나를 미워해봤자 될 게 없으니, 그를 미워하나, 마찬가지로 될 것은 없고, 흘러가나 대부분 이런 버릇 속에서 자기를 지키며 살지만, 그렇게 살지 말자, 아무도 판단하지 말고, 설령 판단이 든다 해도 입밖으로 발설하지 말자, 여기는 정치의 장도 아니고 그가 무슨 큰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사람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고, 우리는 천사도 아니고 다행히 악마도 아니니, 그냥 사람 사는 만큼 사는 사소한 것들에는 그러려니 하자 합니다. 그게 제가 지키는 선입니다.  



이렇게 보면 대부분 소시민들에게 적은 없고, 하루종일 10년 해도 집 한 채 못 하는 이 노동이나 계급이나 이런 시스템을 미워하게 되고, 그 동안 시라는 형식으로 쓴 대부분은 이에 대한 것들이었으나, 시스템이 밉다면 대안을 찾는 게 맞습니다. 체 게바라처럼 총을 들든 뭘 하든, 그 방편으로 글을 써보았으나, 그 글은 웅얼거림으로 남고 말았으나, 지금 제 삶은 아마 내가 미워하던 시스템, 내가 원하지 않는, 보람 없거나 보람이 이상한 시스템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이 세계의 어떤 부분이 되고, 그런 길에 서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믿다 라는 이런 단어가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도 어느날 보면 이상하지요. 종교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어느날 보면 사짜 같기도 한 단어, 그러나 종교가 서지번호 2번에 속한 것을 보면, 이 믿음이란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것도 같아, 때로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단어가 내 입에서 손끝에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뿌리를 가진 단어이나 그 실체가 만져지지 않는 단어요.   



그러다보면 어떤 날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것도 같고 알고 보면 이 해안가 부근 내 발 닿는 데를 벗어나본 적 없이 살고 있는 것도 같지요.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 수밖에 없겠다고 알 것 같습니다. 남이 알아주는것 말고 나 혼자서는요.)  



'말짱'이란 제목의 시를 쓰던 때, 그때와 마음은 지금도 같습니다.


세월 켜켜이 쌓여 덧셈 뺄셈 어떤 산수도 구해내지 못한 말짱을 그리워하며 아침 저녁 사이 잘게 부수어 밥을 번다 파도처럼 오가는데 잡을 수 없다 수영을 배우고 서핑을 배워 볕에 간을 말리자니 노동으로 벌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하고 목구멍은 순진하고 어리석어 잊지 않고 재촉한다 몸은 늙어도 어린 아이 하나쯤 감춰두고 산다는 것 그 아이 키워내기에 하루는 모자라고도 벅차

토끼도 자라도 거북도 되지 못했다 개별과 보편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보편이 되기 위해 개별을 지우나 개별을 별러 보편으로 다가가는 것도 같은 인간의 노동

같지 않은 노동 같지 않은 시간 감정과 손가락과 컴퓨터와 사회가 뒤범벅돼 어떤 계산도 부족한데


때로 상대 없는 씨름 같기도 없는 날개를 휘두르고 있는 듯도

끝내 바닥에 발 붙이고 있나 단 한번 세상에 발 붙인 적 없나

나아가는 동안 없어져가는 거기까지 가자 붙들어 적과 날개와 한몸이 되어 없는 거기 어드메 도착해 있을 수 있나 향이 어렴풋하나 숲이 저기인가 세월 켜켜이 쌓여 말짱히



진짜 나쁜 놈은 미워하고 욕해도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러지 말고 성난 파도 보듯 와 오늘은 파도가 세네, 하며, 그 파도가 내 삶을 침범하는 해일이라면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이제 알아야 할 것은 나의 능력과 탐욕, 교활함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