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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May 12. 2022

아무 것도 되지 않고 그냥 나로 살다 죽는 거다

강릉살이2_어떤 루틴으로 살고 있습니까?

            

예전에는 맛있는 커피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강릉에 살기 이전부터 그래서, 아침에는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곤 했습니다.     

 

커피의 맛과 향은 그 어느 음식도 흉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거의 10년 이상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맛있는 커피의 맛과 향에 완전히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커피에 눈뜬 것은 스무 살 넘어서입니다. 이 이야기를 언젠가 써야지 하며 쟁여놨는데, 누구나 자기 인생의 커피가 있을 겁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느끼는 여유의 감각을 좋아하는 거지요. 서울 명륜동에 있던 2층 카페 새바람이 오는 그늘이나 2008년 즈음 부암동의 클럽 에스프레소(작년에 가보니 리모델링을 새로 해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지만)에서 마시던 커피 맛, 그때 감돌던 어떤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끼기 위해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러 눈을 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명륜동에 있던 새바람이 오는 그늘은 이름과 주인이 바뀐 채 카페로 운영 중입니다. 사진은 오래 전 카페 옥상 풍경.


엄청 비싼 원두를 사마실 경제적 여력은 없지만 그래도 멀쩡한 원두를 사서 매일 아침 원두를 갈고 커피를 마시는 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루틴이었습니다. 회사를 지각할 것 같은 시간일지라도 집에서 커피 마시기를 고집한 이유는 앞에서 말한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갈아 막 드립한 커피에서 나는 향과 첫 모금을 들이키는 순간의 형용할 수 없는 맛 때문입니다. 회사에서 내려먹는 캡슐커피로는 절대 흉내낼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커피를 마시는 첫 모금 속에 있습니다.      



강릉은 커피 축제가 열리는 커피의 도시입니다. 강릉 커피의 두 축인 보헤미안과 테라로사가 강릉을 커피의 도시로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는데요. 재미있게도 보헤미안 본점이 강릉 북쪽에 있다면 테라로사는 강릉 남쪽인 구정면에 위치해 있습니다. 규모만 보아도 두 커피집의 차이가 확연한데요. 외지인의 시선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두 커피집이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는 강릉에 살며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어느 정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보헤미안 본점에서 마신 커피입니다.


강릉에 살게 된 이유가 커피 때문은 아니지만 다행히 맛있는 커피를 마실 확률은 더 높습니다. 카페도 많을뿐더러 어디 카페를 들어가도 웬만큼 커피 맛이 좋은 편입니다. 커피의 도시로 알려지며 원두 소비량이 많아 원두 회전이 빠른데다가 커피 수업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강릉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되는 보헤미안커피 본점과 집이 가까운 것도 좋은 점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타준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은 날은 보헤미안커피 본점에 갑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되도록 주중에 가는 편인데, 보헤미안커피 본점에서 커피를 마시면 한 모금에 영혼이 달래진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보헤미안 본점의 담쟁이와 멀리 보이는 바닷가의 등대.


강릉에 오기 전까지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이외에 다른 루틴은 없었습니다. 늘 무언가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는데 그때마다 글을 못 쓰고 있다거나 영화를 못 봤다거나 책을 못 읽었다거나 생각했으나 실은 무언가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을 할 뿐 내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한 채 하루가 가는 게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하루 중 유일하게 살아있다고 생각되는 시간은 아침에 첫 모금의 커피를 들이킬 때뿐이었습니다.      

테라로사 본점은 커피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볼 때 잠시 '아 내가 살아있는 게 맞지' 그런 기분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만물 중 멈춰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나 역시 계속 변화하며 살고 있는데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구나, 미물인 나는 그걸 알 수 없는 게 당연한 걸 거야, 멀리서 보면 개미나 인간이나 다 구별도 못하게 되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요. 하지만 미물이라고 생각이 없지는 않아 잡초처럼 스스로를 바라보지 못하고 알 수 없이 허덕이는 마음을 탓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하루를 훨씬 길게 느낀다고 하지요. 모든 게 새롭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며 감각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더는 새로울 것 없는 삶을 살게 되며 더는 하루를 길게 느끼지 않게 됩니다. 또 해가 뜨고 또 해가 지는구나 할 뿐 더는 거기에 어떤 감동이나 경탄을 섞지 않게 되는 거지요. 그렇게 같은 24시간을 계속 사는데도 나이가 들수록 다른 24시간을 살며 전혀 다른 감각으로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강릉에 와서 1년 반을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지내며 내가 뭘 했는가 돌아봐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고 이사를 하고 정리를 하고 텃밭에 나무를 심고 다음해 봄에 심은 상추, 깻잎이 씨앗을 떨궈 다시 그 씨앗이 싹으로 올라와 상추가 풍성해지고 깻잎 새싹이 밭을 잠식하는 동안, 그 시간 동안 나는 뭘한 걸까 하고요.     



예전에는 구름이 변하는 것을 보며 사는 게 꿈이었습니다. 기상학자라도 되어야 했던 건가 싶은데, 실제로 기상학자도 구름보다는 컴퓨터를 많이 보겠지요. 옥탑방에 살며 하늘을 보면 하늘이란 게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며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거죠. 아주 쾌청한 날, 강수확률 0%의 날 하늘에 구름이 하나도 없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실은 하늘에 무수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조금씩 기울어가는 빛과 그에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색감, 하루하루 달라지는 나뭇잎과 꽃의 색감들을 보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걸 한 단어로 표현하면 ‘여유’일 겁니다.      



여유로운 삶을 살고 계십니까? 여기 네, 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얼마나 될까요?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인기를 끌며 이 문구를 누가 사용했는지는 잊었어도 여전히 문구는 선명한, 명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아니면 일을 위해 술을 마시거나 하며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오롯이 시간을 쓰지 못하는 시대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문구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그 슬로건이 가닿게 된 걸 겁니다. 그 다음은 문화가 있는 삶이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무언가가 있는 삶을 바란다는 것은 그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반증이지요.      


뭔가가 있는 삶을 바라게 되는 이유는 뭔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없는 게 무엇이냐가 진짜 문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뭔지 정확히 몰라도 자본으로 그것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해 돈을 벌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대체 돈만 있으면 여유가 생기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지요. 여유를 위해 돈을 벌다 보면 어느새 여유와 돈의 그래프가 교묘하게 꼬여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정말 그, 없는 뭐가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 중요하지요.      


좋아하던 카페 여름에 써있던 시입니다.


이건 뭔가 라깡 아저씨나 지젝 아저씨가 한 얘기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 듯 합니다. 그런 공부를 하는 게 즐거움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생에 대해 알려주는 공부요. 그러나 그런 공부를 한다 해도 인생에 대해 다 알 수도 없을뿐더러 내 경제생활에는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그런 공부를 작파하였지요. 그러다 돈과 여유(혹은 내가 원하는 것)의 그래프가 꼬인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강릉에 왔습니다. 강릉에 온 뒤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는 요가를 매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마시고 요가를 합니다. 아침에 유튜브를 틀어놓고 그날 맨 앞에 있는 콘테츠를 따라 요가를 합니다. 어떤 날은 요가소년 선생님을 어떤 날은 서리요가 선생님을 어떤 날은 지음요가 선생님을 따라 몸을 움직입니다.      


처음 아침 홈트로 요가를 할 때는 20분 이상은 따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요가를 한 지 1년이 넘고 1년 반이 돼가는 시점에 이르자 30분 요가는 거뜬히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어떤 날은 40분 요가를 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그리 힘들지 않게 영상 속 선생님의 목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고양이 자세를 시연해주세요, 냥님.


문제는 시간입니다. 아침에 밥도 먹고 씻고 옷도 입고 출근길에 올라야 하는데 40분에서 1시간 요가까지 어떻게, 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6시 반에 일어나 요가를 합니다. 요가를 하기 전에는 차를 마시라고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커피 맛이 떠오르면 커피를 마십니다. 7시 20분 알람이 울릴 때까지 요가를 하다 보니 어떤 날은 10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30분 요가를 끝내기도 합니다. 문제는 아예 요가를 하지 않는 것과 요가를 조금이라도 하는 차이입니다. 잠시나마 고개라도 풀어주고 허리라도 비트는 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축 처진 채 겨우 무언가를 우겨넣고 세수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날은 귀찮지만 그래도 일어나면 매트를 우선 펴고 유튜브를 켭니다. 여전히 다운독 자세에서 뒷꿈치를 매트에 붙이기가 어렵지만 우티타 하스타 파당구스타사나(Utthita-Hasta-Padangusthasana, 서서 엄지발가락 잡고 다리 들어올리는 자세)나 아르다찬드라(Ardhachandra, 반달자세)는 여전히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습니다.      


더는 요가하는 시간이 힘들지 않다는 것도 예전보다 나아진 점 중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몸을 풀어주는 게 뭔가 나한테 약이 될 거야,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럴 거야 라는 기분으로 요가를 했다면 이제는 와 시원하군, 뭔가 좋군, 이런 기분으로 요가를 합니다. 그 ‘뭔가’가 뭔지를 말하기는 아직도 어렵지만 분명 뭔가가 있음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강릉에 오기 전까지의 삶의 루틴은 아침 핸드드립 커피가 유일했다면(거의 10년째 마시고 있는 듯 합니다. 엄마 왔을 때나 본가에 갔을 때는 이례적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는데, 엄마가 위 나빠진다며 걱정하셔서입니다. 위가 나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위냐 기분이냐에서 기분을 택하기로 한 거지요.) 다음 루틴으로 요가가 생긴 겁니다. 이 하루 두 가지 루틴은 모두 다 오롯이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루틴이 더 있게 되었습니다. 이건 좀 지금까지의 내 삶의 궤적을 보자면 어울리지 않는 일 같은데, 3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웃집 언니가 같이 달리기를 하자고 추천해 런데이 앱을 깔고 해본 건데요. 실제로 달리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그전까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습니다. 저는 달리기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니까요. 고등학생 때 체력장이라는 것을 시험하고 급수를 매길 때 5급을 면해본 적이 없습니다. 달리기는 꼴찌를 면해본 적이 없고 심지어 오래 달리기는 남들보다 한 바퀴 덜 달렸는데도 선생님이 그만 달리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왜 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다들 열심히 달리는 게 싫기도 했고 실제로 별로 몸으로 하는 무언가를 하는 데 대한 인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제는 등대까지 달리기를 해 다녀왔습니다.


삶은 몸이라는 꺼풀을 입고 하는 무언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몸에 대한 인식이 한참이나 멀다고 할까요?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용과 친구들은 아예 우리랑 방식이 다르다고, 몸으로 사는 사람들은 완전히 사유 방식 자체가 다르다고요. 평생 잊을 수 없는 말 중 하나입니다. 몸으로 산다는 게 뭔지 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그럼 나는 머리로 사는 걸까. 아마 대부분 그럴 테지요. 머리로 살며 손가락을 움직여 컴퓨터를 칩니다.     


내게 달리기를 추천한 그녀 역시 누군가의 추천으로 앱을 깔고 달리기를 한 겁니다. 우리에게 최초로 달리기를 추천한 사람 역시 인생에 달리기가 없던 저와 비슷한 저질체력이었는데요. 그녀는 달리기가 준 활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잠시 달린다고 무언가가 변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런 책도 그냥 다 딴 나라 얘기라고만 생각했지만 그때만 해도 놀고 있을 때라 30분 달리기라는 놀이가 하나 더 추가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냥 한번 달려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앱을 깔고 강릉 종합운동장에 섰던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날 함께 식사한 이웃이 코로나 양성이 나온 사람과 있었다고 해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던 참인데, 그때 강릉에서는 신속항원검사를 종합운동장에 부스를 차리고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검사가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미뤄지며 운동장에서 앱을 켜고 달리기를 먼저 하게 됐습니다. 5분 준비 걷기를 한 뒤 1분 30초 달리고 2분 걷기를 4회 반복하고 마무리로 다시 5분을 걸으면 프로그램이 끝납니다. 30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걷고 달리게 되는데 중간 중간 걷는 타이밍이 있어 달리는 일이 그다지 버겁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동안은 시작했으니 그냥 계속해볼까 하던 달리기를 지속한 지 20회가 넘었습니다. 프로그램에 따르자면 매일 달리는 것보다 하루 이상 쉬고 달리는 게 더 좋다고 해 이틀에 한번씩 달리는 것을 내 인생의 루틴으로 삼았습니다. 1분 30초 달리기는 조금씩 시간이 늘어나며 마지막으로 달렸을 때는 10분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달리다보면 달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것이 대부분 잡생각임을 알게 됩니다. 땀이 나고 전진하고 풍경이 바뀌게 되는데 달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 시간에도 잡생각을 했겠구나 싶어 달리는 게 더 나은 일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게 됩니다. 달리다 드는 생각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되지 않고 그냥 나로 살다 죽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발을 구르다 들곤 합니다. 주변 바닷가를 달리고 선교장 인근 경포습지나 경포호를 달리며 강릉은 정말 달리기 좋은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음 이야기에 더 써볼 계획입니다)     


달리기를 하다 마주친 벚꽃 핀 경포습지의 일몰 풍경입니다.


달리기를 하며 며칠 전 루틴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런데이 앱에서 추천해준 방식인데 한 시간에 한 번씩 물을 마시는 겁니다. 그렇다고 정각에 꼭 물을 마시는 건 아닙니다. 일곱 시의 물, 여덟 시의 물을 일곱 시부터 일곱 시 오십구 분 오십구 초 사이에 한 번, 여덟 시부터 여덟 시 오십구 분 오십구 초에 한 번씩 마시는 겁니다. 이렇게 매시간 그 시간의 물을 마시며 수분을 보충하는 게 요새 새로 생긴 루틴입니다.      


물을 마시는 게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듣고 살아서 아 물을 자주 마시자 해도 결국 잊어버리고 말지만 매 시간의 물을 마시기로 하니 습관적으로 물을 한 잔씩 계속 들이키게 됩니다. 뭔가 물만 마시고도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동안 미뤄뒀던 일, 오롯이 나를 위한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강릉에서는 단오가 유명합니다. 다른 도시에서는 단오가 음력 5월 5일이다보니 쉬는 날도 아닌 단오날을 모르고 지나칠 때도 많았는데, 강릉은 단오가 가장 큰 축제라고 합합니다. 단오는 양의 기운이 가장 센 날을 기념한다는데 이 또한 재밌는 지점입니다 그런 날 시내 모든 가게에서 감자전을 부치고 어디서나 막걸리를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코로나 때 이사 와서 한번도 그런 흥성스러운 축제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해 이번 단오를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강릉에는 올해 단오 축제를 다시 오프라인으로 한다는 들뜬 분위기가 감돕니다. 단오제에 신에게 바치는 술, 신주를 빚기 위한 신주미 봉정도 진행됐는데요. 각 집에서 술 빚을 쌀 3kg과 가족들의 이름을 적은 소원지를 내면 단오제 기간에 신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말에 면사무소에서 당직하시는 분께 쌀을 내고 소원을 뭘 적을까 하다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사랑’이라고 적었습니다.



예전에는 꼭 뭐가 되어야 한다는 불안 같은 데 시달렸습니다. 그 뭐가 뭐냐고 물으면 버젓한 무언가입니다. 남들 보기에 버젓한 직장, 남들 보기에 버젓한 월급, 남들 보기에 버젓한 권위나 유명세 이런 것들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내 기분을 붕 띄울 수 있지만 금세 땅으로 가라앉고 마는 뽕 같은 것일 뿐이고 나는 계속 땅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어떻게 땅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되지 않고 나로 사는 데 만족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사랑을 이루면 좋겠구나 우리 가족과 이웃 모두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물론 나로 사는 방법을 계속 찾고 그것을 실행하고 부딪히고 때로 실패하고 허망하고 그래도 다시 찾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있지만요. 오늘도 점심을 먹고 잠시 짬이 나자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과연 내 인생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게 좋을까, 뭔가가 없는 상태를 계속 느끼지 않고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아무것도 되지 않고 계속 나로 살자는 이 다짐은 변함이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 이 다짐의 유일한 마음강령입니다.     


달리기를 하던 중 경포호수에서 발견한 강릉시의 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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