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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Jun 02. 2022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

강릉살이2_바우길 4구간 걷기

5월 중순 초록 속에 흰 꽃 무더기가 보인다면 찔레꽃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며칠 전 바우길 4구간을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바우길을 걷는 동안 찔레꽃이 많았습니다. 아까시가 지고 나자 찔레꽃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6번 국도를 차를 타고 달려 오대산 쪽으로 들어가면서 흰 꽃들이 피어 있는 것을 보니 모두 찔레꽃일 가능성이 많겠구나 싶었습니다. 



5월은 찔레꽃의 계절 


찔레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보다 찔레꽃 노래가락 한 소절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이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찔레꽃 하면 노래부터 떠오르는데, 실제로 찔레꽃을 이렇게 많이 본 건 며칠 전 바우길 주말걷기에서 처음이었습니다.  



하얗게 핀 찔레꽃 향은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향입니다. 향은 언어화하기 어렵습니다. '향기롭다'는 단어는 너무나도 영역이 넓습니다. 한번도 그 향을 맡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비슷한 무언가를 이야기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떠오른다거나 하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좋은 향에 대해 맛있다는 말을 합니다. 뭉게뭉게한 구름을 보아도 맛있겠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후각이나 시각을 미각으로 치환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미각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어서 일까요? 미각은 정말 혀로 맛을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감각이지요. 감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그럴 때 '맛있다'는 말로 어느 정도 감정이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롭고 좋다는 거지요. 똥 냄새나 방귀 냄새가 맛있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미 좋은 것은 다 빠져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들에게는 좋은 냄새가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들이 거름이 되어 다시 아름답고 맛있는 것들을 피어나게 만들기에 실은 아주 중한 일이기는 하나, 그것들에 맛있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피어나는 것들에만 '맛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요. 



이제까지 5월은 장미의 계절인 줄 알았습니다. 5월이 되면 장미가 여기저기 피어납니다. 몽환적인 붉은 색을 뽐내는 데다, 향도 좋지요. 그러나 알고 보니 5월은 찔레꽃의 계절이더군요. 장미는 찔레꽃을 교접해 인간이 만든 종이라고 합니다. 장미도 다 같은 장미가 아니라 2만 5천 종이 개발되었으며 그 중 6~7000종이 현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찔레꽃에 코를 대면 장미향과 비슷한 듯도 하지만 무언가 더 자연스럽고 맛있는 향을 맡을 수 있습니다. 5월을 장미의 계절로 알고 있던 저는 인간이 직조해낸 세계, 만들어낸 세계만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지금까지 살면서 5월 이즈음에 숲을 걸었던 적이 처음은 아닐 건데, 바우길을 걷다 찔레꽃을 본 뒤 산야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찔레꽃이 피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궁금해야만 알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진실임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이후로 거리를 걷다보니 지난 번 바우길에서 본 식물들이 사방천지를 물들이고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지금 모습으로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 속을 걷다


강릉에는 '바우길'이라는 걷기를 위한 길이 있습니다. 제주의 '올레길'처럼(이런 비유도 좀 웃기지만) 지방의 걷기 길인 셈입니다. 제주의 올레길이 성공한 뒤 지방 곳곳에는 걷기 길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걷고 싶어 했었던가 싶은데, 실제로 사람들은 걷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육체를 이전만큼 사용하지 않는 시대, 그 육체를 감추기 위해 옷을 뒤집어쓰고 그 옷으로 취향과 현재를 표현하며 사는 시대, 두 발은 브레이크나 엑셀레이터를 밟기 위해, 버스에 서있기 위해 잠시 존재하다가 책상 아래서 하루종일 잊혀졌다가 커피를 마시러 갈 때 점심을 먹으러 갈 때 잠시 존재를 증명하고 다시 잊혀지곤 하는 두 발, 두 다리를 사용해 걷는 일은 이제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걷기 좋은 봄이 오면 여기저기 걷기 행사 플래카드가 나붙고 둘레길이 관광상품화됩니다. 왜 집 앞을 걷지 않고 어딘가를 나가서 걸어야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더 나은 풍경을 위해서 일 텐데, 무엇을 위해서일까 했는데 이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지자체의 걷기길이 하염없이 생겨난다는 사실은 TV 속에서 실현되는 야생을 잠시 체험하고 채널을 돌리면 온갖 세련을 덧입은 광고들이 나부끼는 시대에 그래도 두 발로 걷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2182개의 걷기길이 있음을 두루누비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강릉에는 바우길이 1코스부터 17코스까지 있고, 올림픽 아리바우길, 관동팔경 녹색경관길이 있으며 해파랑길은 35코스부터 40코스가 강릉 구간입니다. 이외에 울트라바우길, 바우길 번외편 국민의숲길까지 있지요. 이들 중 일부는 코스가 겹치기도 합니다.  



바우길의 경우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에 함께걷기를 합니다. 혼자 걷기 망설여지는 사람이 있거나 숲속으로 혼자 들어가기가 어려운 사람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그 주의 함께걷기 코스를 공지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집 근처의 향호를 다녀온 뒤로 가끔 바우길 주말 걷기에 참가하고는 했지만, 대부분 사정이 있어 점심 전에 빠져나오고는 했습니다.  


바우길 4구간의 이름은 사천둑방길입니다. 명주군왕릉에서 출발해 이름 그대로 사천천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강릉에 왜 왕릉이 있느냐고요? 신라시대에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경주로 가던 김주원은 비가 내려 가지 못하고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쿠테타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김경신이 신라 38대 왕위에 오릅니다. 김주원은 이후 강릉에 머무르게 되는데,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뒤 '명주군왕'으로 봉해졌다 합니다. 



명주는 강릉의 옛 이름입니다. 강릉은 명주 이외에도 하서량, 하슬라, 아슬라 등의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한 곳인데, 이들 이름은 대부분 바다와 관계됩니다. 명주의 溟도 바다 명자입니다. 그런가하면 하서량, 하슬라, 아슬라 등은 한자를 음차하며 붙여진 이름으로 큰 바다, 아름다운 자연의 기운 등을 뜻한다고 합니다. 유사한 소리값을 가진 '아스라하다'는 단어가 여전히 남아있지요. 옛 사람들의 강릉 바다에 대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지명이 아닐까 합니다. 이 지명은 지금도 강릉 곳곳에 남아있지요. 가장 유명하게는 '하슬라아트월드'에서도 사용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강릉 시내 곳곳에서 하슬라, 명주 등의 이름을 단 간판이나 장소를 자주 보게 됩니다. 시내 부근이던 강릉시와 외곽지역인 명주군이 통합한 것은 1995년으로 지금도 '명주'라는 지명은 명주예술마당, 명주교육도서관 등 공적인 영역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지명만 봐도 알 수 있듯 강릉 현재 속에는 과거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관광을 위해 바다를 보기 위해 왔던 강릉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강릉에 살며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바우길을 걷는 일도 그 중 하나로 좀 더 강릉을 잘 보게 되는 길일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명주군왕이던 김주원은 강릉김씨의 시조로 바우길 4구간을 함께 걷던 전날이 명주군왕릉에서 제사가 봉향된 날이라고 하더군요. 시조인 김주원명주군왕의 제사를 위해 모여든 이들로 드넓은 주차장이 가득 찬다고 합니다.  


걷다 보면 도시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접점 같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아마 도시의 걷기길이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겠지요. 자신이 걷고 있는 도시가 지금 이 모습으로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 속을 걷게 된다고 할까요.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간의 삶의 사소한 것들은 다 제거한 채 평면에 길과 몇몇 이름으로 표현한 지도를 보고 있으면, 사소한 인간사의 많은 부분들이 좀 더 사랑스럽달까 친근하달까 그 정도의 거리감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우길 4구간을 지도로 보면 성산면에서 사천면으로 오는 걷기 길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관령이 있는 성산면과 바다가 있는 사천면 사이를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걸어갔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강릉은 대관령과 바다 사이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걷기인 셈입니다. 



보면 보이고 알면 사랑하게 된다


명주군왕릉 뒷편 산길로 들어가는 길에서부터 임도를 걷는 셈인데, 걷다 보면 족제비싸리가 짙은 보라색 꽃을 달고 여기저기 피어 있습니다. 잎이 아카시아와 비슷한 모양이라 초록으로 뒤덮여있었다면 관심 두지 않았을 텐데 보라색꽃을 단 족제비싸리가 신기해 사진을 찍고 있으니 그 꽃이 족제비싸리임을 알려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서든 잘 자라 길을 개간한 뒤 심는다고 하는데, 요새 걷다 보니 족제비싸리가 꽃 피우고 있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번식력이 좋은 식물인데, 지금까지 5월은 얼마나 많았으며 그 사이 족제비싸리의 보랏빛 꽃은 여기저기 피었을 텐데 보아야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처음으로 이 보랏빛 꽃을 보았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였습니다.     



족제비싸리 이름을 알려준 것은 같이 걷던 숲해설사님이었습니다. 뭐든 이름을 물어보라 해 다음으로 자주 보이는 '오리새'의 이름을 물어 알게 되었습니다. 바람에 날려 씨를 퍼뜨린다는 '오리새' 중 몇몇은 꽃을 다 피워 바람에 날려가기 전이고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녀석들도 길 곳곳에 피어 있었습니다. 풍매화라 하지요. 바람에 날려 씨를 흩뿌리고 자라는 아이들, 과학 시간에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날 듯도 했습니다.  


풀떼기라거나 이름 모를 들꽃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초록들이 실은 어떤 이름과 특성을 갖고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인식하지도 않게 돼버린 초록들은 마치 우리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생장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흔해서 보이지 않는 초록에 누군가 이름을 지어주었고, 생태계 속에서 꼭 필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삶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우연으로 직조된 이 자연은 어찌 보면 필연처럼 모두 얽히고 설켜 아마 가장 괜찮은 세계일 지구라는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겁니다. 초록을 베이스로 한 세계를요. 

  


걷다 보면 벼룩이자리라는 손톱보다 작은 하얀 꽃이 발 아래 반짝이고 있는 5월 걷기였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니 친구가 된 기분처럼 거리의 초록이 다 환해집니다. 소나무는 '나 자라고 있어'라는 듯 울쑥불쑥 솟아나 보랏빛 암꽃과 노랑 수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역시 손톱보다 작은 보랏빛 암꽃이 언젠가 솔방울이 된다는 게 신기해서 한동안 쳐다보았습니다. 오래 강릉에 사셨던 분들도 소나무꽃은 처음 본다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집 앞에 무수한 소나무들을 그저 소나무라 여기다 꽃을 달고 번식하는 하나의 생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은 같은 순간 같지만 전혀 다른 순간입니다.  

살아있음 속을 걷다


강릉의 여름 풍경 중 가장 인상적인 강릉다운 풍경을 꼽으라면 감자와 옥수수가 자라는 밭을 볼 때입니다. 6월을 앞두면 강릉 여기저기는 감자꽃이 핀 하얀 밭들이 펼쳐집니다. 넓지 않은 땅에도 옥수수가 자라는 것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하면 여름이 오는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산이 짙은 초록으로 뚱뚱해지며 덮여가는 변화를 볼 때는 조금 무섭다고 해야 할까 광합성에 진심인 풀들의 강렬한 초록이, 자라나고 있다는 의지가 부담스러울 정도일 때가 있지만 감자밭에 핀 하얀꽃과 옥수수밭을 보고 있으면 싱그러운 기분이 듭니다. 강릉에 감자와 옥수수가 많다는 말도 절로 실감하게 되고, 어떤 정겨움 같은 게 솟아납니다. 



논에 물이 들어 산을 비추고 심어놓은 여린 모들이 언젠가 자라 노랗게 물들 가을 풍경도 같이 보이는 듯합니다. 강릉에 감나무가 많다는 것은 가을 강릉 어디를 가도 반짝이는 주홍빛 감을 보며 알았지만 열매를 맺어야만 겨우 존재를 알던 감나무의 감꽃도 올해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노랗게 핀 감꽃이 그대로 열매가 되고 그 감 껍질을 벗겨 해풍에 말려 곶감으로 먹는 일 중 신기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싶은 그런 걸음이었습니다. 

4월 벚꽃이 지고 아쉬울 때쯤 아까시가 핀다고 알고 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되고 밤에 걷다 보면 어디선가 기분 좋은 향이 나는 딱 한철, 아마 1주일 길면 열흘 정도 세상에 향기가 넘쳐나는 시간이 있습니다.



올해는 많이 밖에 나가서인지 아까시의 하얀 꽃이 온 산을 뒤덮은 듯 했습니다. 왜 작년보다 올해 유독 아까시가 많은가 물어보니 자연은 어느 해에는 텔레파시가 통한 것마냥 훨씬 많은 생산물을 낸다고 합니다. 어쩌면 올해가 아까시에게는 그런 해였는지도요. 그 텔레파시를 들은 적은 없지만 어쩌다보니 그 목격자가 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바우길 4구간은 명주군왕릉에서 출발해 임도를 지나 사기막에 이르면 사천 둑방을 따라 걷게 됩니다. 강릉생명의숲 부설 생태환경교육센터 포!레스트에서 개두릅 김밥을 준비해주셔 사천 해살이마을 야영장에서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그네도 타고 하다 다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볕이 강렬히 내리쬐는 날이라 좀 덥다 싶기도 했으나 사천에 있는 무인서점이며 1천원짜리 커피를 파는 무인카페 등이 있어 다음에는 자전거를 타고 와서 서점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겠구나 싶은 한적함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도 좋은 곳입니다.  


최근 최재천 선생님의 유튜브를 보고 글을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글 중에 우리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글을 최근에 본 적이 있습니다.  


걷다 보면 이름 모를 꽃들이 천지인 세상이 생겨나기 위하여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 유전자를 섞으며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도 유전자를 섞기 위해 5월 꽃들이 피고 벌들이 바람이 그들이 섞이도록 도우며 그래서 어딘가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다고, 올해 봄이 작년 봄과 달랐듯 내년 봄은 같은 듯 다를 것이라고 조금씩, 내가 알아채지 못해도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그게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알게 되는 걸음이었습니다.  


'다채롭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 같은 것 없이 다르면서 어우러지는 이 세계가 이루어지기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유전자가 섞였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자연의 변화를 보며 걷는 5월 걸음이었습니다. 


명주군왕릉에서 출발한 걸음은 사천해변에서 마무리됩니다. 바우길에서 자가 운전자를 위해 버스를 운행해주셔 사천에서 명주군왕릉으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버스는 대관령 쪽으로 들어가 보광리 쪽으로 길을 틉니다. 대관령 기슭에 5월 빛을 받으며 잎을 반짝이는 나무들 중에 반짝이지 않는 검은 나무가 있어 저건 무슨 나무냐고 물으니 죽은 나무라고 합니다. 이 광합성 하기 좋은 계절에 빛나지 않는 나무는 죽은 나무라고요. 살아있는 나무들 틈에서 죽은 나무가 유독 검은, 살고 죽는 일이 다 일어나는 5월입니다.  


요새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야생과 본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비슷한 인간들의 욕망을 가지고 사는 듯 보이지만 실은 우리 속에는 야생과 본능이 살아있으며 그것이 발현되는 순간, 반짝이는 순간, 인간 이전의 동물처럼, 이 종의 진화의 최고포식자로서 그 모든 전의 과정을 잊어버린 채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세련을 장착하고 사는 이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봉이 아닌, 살아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입니다. 인간이 직조한 세계의 덧없음이라기에는 나도 인간이라 맨날 거기를 헤매느라 정신이 없으나, 그럼에도 걷고 걸으며 눈을 뜨면 나라는 인간의 종이 직조한 세계가 전부가 아니며 먼 공간과 시간 속에서 여기 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인간 세계에 그 많은 걷기 길이 생기는 이유는 실은 많은 이들이 그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며 그것을 통해 조금 더 이 지구 속에서 나라는 이 하찮은 미물, 그러나 너무 많은 생각과 이해타산과 가깝고 덧없으나 잘 지워지지 않는 생각들로 가득찬 이 존재의 이유나 당위, 흔들리는 나무로 광합성 하다가 어느 순간 까맣게 서서 죽어가는 나무처럼 되고 마는 생에 대해 짐작하고 싶은 어떤 바람들이 모아진 때문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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