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보조 양육자의 이야기

내가 아이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뭐였을까

by JHMRH

어느 동물이건 새끼는 귀엽다. 제 아무리 맹수라고 해도 어린 시절은 하찮고 귀엽다. 나 역시도 작고 귀여운 동물에 사족을 못쓴다. 솔직히 동물은 새끼거나 성체거나 몸체가 작거나 크거나에 상관없이 다 귀엽고 좋아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동물은 내게 예외였다. 남들은 그 조그마한 아기를 어찌나 귀여워하고 물고 빨고 난리가 나는데 난 그 어린 인간들이 좀처럼 귀여워 보이지 않았다. 귀여워야 마땅할 동물의 새끼가 내 눈엔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저 놈이 성장하면서 얼마나 주위 사람들을 애타게 만들고 괴롭힐까...하는 생각 뿐이었다.


나라고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분명 어릴 때는 아기도 좋아했고 옆집 아기건 뒷집 아기건 상관없이 다 예뻐했다. 언제부터 인간 아기가 귀여워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막내 동생이 태어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막내는 내가 5살때 태어났다. 나는 이미 막내 말고도 한 명의 또다른 동생이 있었고 이번에는 여동생을 바랐으나 또 남동생인 것을 보고 적잖이 실망하고 있었다. 남자형제들과 경쟁하며 자라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난 한 살 차이나는 남동생과 매일같이 싸워대고 서로 엄마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나눠야 한다는 불평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막내는 또다른 경쟁자의 등장일 뿐이었다.


그러나 막내는 내 경쟁자로 자리하지 않았다. 막내는 갓 태어난 아기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동하지도 먹지도 못하는 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였다. 엄마는 하루종일 갓난쟁이 아기를 봐야했다. 문제는 엄마는 막내 말고도 돌봐야할 자식이 둘이나 더 있었고 두 자식 모두 겨우 4, 5살난 아기였다. 체력에 문제없는 로봇이라면 모를까...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혼자서 세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까지 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그땐 조부모님도 같이 살고 있었고 엄마는 당뇨환자인 할아버지의 간병과 장애인 고모의 수발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나와 내 연년생 동생에게 들어가는 관심은 줄어들었고 또 자연스럽게 큰동생을 케어하는 건 내 몫이 되었다. 겨우 1년 차이나는 형제지만 내가 누나라는 사실만으로. 나는 동생의 누나이자 경쟁자이자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로 엄마가 죽을 것만 같았기에. 나는 엄마의 보조, 동생들의 보조양육자가 되었다. 엄마가 막내를 먹이고 재울 때 난 큰동생을 먹이고 씻겼다. 엄마가 막내를 흔들침대에 눕히고 집안일을 시작하면 침대를 흔들어 막내를 재우는건 내 몫이었다. 둘이서 돌아가면서 가족들의 돌봄노동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엄마는 나를 일찍 유치원에 보냈다. 하나라도 보살필 아이를 줄이려고. 심지어 집에 돈이 없어서 난 2학기에 애매하게 들어갔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에게 치여서 유치원 생활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돌봐야 할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말도 못하고 말을 듣지도 않고 제 성질 내기만 바쁜 동생들이 난 버거웠다. 나도 속상하고 짜증나는 와중에 동생을 달래야 했고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쌓여있는 엄마에게 원하는 걸 요구하기도 뭐했다. 은연중에 날 싫어하는 할아버지와는 대화도 되지 않았고(할아버지는 첫 손주가 딸인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는 집에 오면 그저 티브이 앞을 떠나지 않고 차려진 밥만 먹을 뿐이었다. 난 이 모든 피곤함과 불행이 너무 많은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난 내가 아이를 돌보는 보조양육자가 된 것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미워했다.






최근에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자식을 셋이나 갖게 되었냐고.

"넌 시가에서 하도 애 가지라고 해서."

"그럼 둘째는?"

"걘 너네 아빠가 아들이 갖고 싶다고 해서."

"그럼 막내는?"

"걔도 너네 아빠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막내만 낳아주면 잘해준다느니 어짼다느니 말만 번지르르했지."

그 어느 자식 하나 엄마 마음대로 낳은 자식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른 건 모두 엄마가 했는데 정작 아이를 원한 사람들은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 몰라라 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케어를 해주지도 않고 , 아이가 조금 커서는 놀아주거나 공부를 시키지도 않았다. 아이가 대학에 갈 땐 관심도 없었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돈을 벌 때 그 돈에 눈독만 들일 뿐이었다. 아빠가 하지 않은 양육은 첫째가 하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보조양육자가 된 첫째 딸은 동생들을, 아기를 미워하게 되었다. 아기는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 피곤한 존재라고. 경험이 없는 어린 보조양육자가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를 컨트롤하기 위해선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폭력을 수반한다. 그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선 나이로 서열이 자리매김하므로 보조양육자이자 연장자인 첫째가 그 밑의 동생들을 힘의 논리로 컨트롤하는건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첫째는 점점 더 강압적이고 보수적이게되고 둘째나 셋째 또는 그 밑의 동생들은 첫째를 무서워하거나 무시하거나 싸워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한다.


내 주변의 첫째 딸들은 다들 보조 양육의 경험이 있다. 나이 차가 적게 나는 동생이건 많이 나는 동생이건 상관없이 그들은 모두 동생을 자신의 자식 마냥 돌봐본 경험이 있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부모가 없다거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만큼 병약한 부모가 있지 않았다. 그냥 다들 평범한 집안의 맏딸들이었다. 여동생이 있는 내 친구는 어렸을 적부터 여동생과 끊임없이 비교당해 왔다. 애교많고 사교성 있는 둘째 딸에 비해 내 친구는 소심하고 애교도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부모님은 언제나 친구가 사근사근한 성격이었음 하고 바랐다. 그들은 딸에게 바라는 것이 참 많았다. 독립해서 먼 타지에 사는 딸이지만, 남들 다 자는 늦은 시각이지만, 딸은 전화를 통해서라도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줘야 했고 아빠에게 시달리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다. 분명 물리적으로는 독립했는데, 친구는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사는 듯 했다.


대학교 떄 만난 동아리의 한 선배는 남동생이 있었다. 선배는 매달 동생의 학원비를 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자신의 생활비며 등록금이며 모두 알바를 해서 충당하고 있었다. 대학생이 알바로 벌면 얼마나 많이 번다고 선배는 코딱지만큼 남은 돈을 매달 동생에게 부쳤다. 선배에겐 언니도 있었고 어머니도, 아버지도 있었지만 그 집 막내 아들의 학원비를 내는 건 아직 학생인 선배의 몫이었다. 선배는 내게 자신이 왜 동생의 학원비를 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왜 자신의 부모는 그리도 당당히 자신에게 동생의 교육비를 요구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알바로 찌든 선배의 얼굴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같은 과 후배는 나와 같이 남동생을 둔 맏딸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내 동생을 씻기고 입히고 별 짓을 다했지만 후배는 나보다 더했다. 그는 아직도 남동생의 안위를 걱정한다. 다 큰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언제까지 동생 뒤치닥꺼리를 할 셈이야. 동생이 마흔이 되도 할거냐?"

"전 그럴 것 같아요. 멀리 놔두면 마음이 안 놓여요."

"동생은 이제 성인이야. 네가 왈가왈부할 수 없어. 게다가 넌 그냥 누나잖아. 부모도 아니고."

"그건 그렇죠..."

후배와 동생의 나이차가 많이 났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동생은 놔두고 너의 인생에 집중하라고해도 후배는 여전히 부모처럼 동생을 걱정했다. 자기 인생 살기도 바쁜 찬란한 20대 초반에 내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존재를 돌봐야한다니. 그것도 나와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존재를.








나는 모든 첫째들이, 맏딸들이 동생의 보조양육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로부터 똑같이 자식으로서 보살핌 받았으면 좋겠다. 동생을 책임이 아니라 그냥 동생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는 건 부모의 선택과 책임이고 언제까지나 부모는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을 모두 케어해야 한다. 형제가 또다른 형제를 부모처럼 케어하는 건 그 아이에게 아이로 살 수 있는 시절을 빼앗는거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도 보조양육자의 삶을 살지 않았더라면 아이를 좋아할지 모른다. 아이를 그저 귀엽고 어린 존재로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전 03화브라를 입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