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라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린 모두 태어날 때 노브라였다.
브래지어. 여성들이 가슴에 덧대어 입는 속옷. 나는 일평생 그 속옷을 사랑해 본 적이 없다. 사실 브라를 좋아하는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입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굉장히 불편하다. 단순히 착용감이 불편한 것을 넘어 소화불량을 일으키기도 하고 가슴 근육 생성을 저해하기도 하며 작게는 조임끈에 피부가 눌리기도 하고 크게는 유방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우린 왜 이렇게 불편하고 건강을 해치는 브라를 줄곧 입어 왔을까.
청소년기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가슴이 조금 나오기 시작하자 엄마는 재빠르게 내게 청소년용 브래지어를 입게 했다. 그때가 열 두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청소년용 브라라 와이어도 없고 면재질이었지만 불편했다. 입고 누우면 후크 때문에 배겼고 명치 언저리에서 눌러 소화가 안됐다. 한날은 엄마 몰래 브라를 입지 않고 학교에 갔다. 내가 브라를 입지 않고 몇 번 학교에 간다는 걸 안 엄마는 여자는 브래지어를 꼭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내가 물었다.
"그거 안하면 가슴 쳐져."
"난 상관없는데..."
"그냥 입어. 남들 다 입잖아."
그렇게 난 남들 다 입는다는 이유로 브라를 입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가슴이 커지자 엄마는 와이어가 있는 브라를 사다주었다. 그건 훨씬 더 불편했다. 소화불량이나 후크가 배기는 건 둘째치고 와이어가 계속해서 가슴을 찔렀다. 끈을 조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조이개는 무거운 가방을 매면서 어깨를 파고들었다. 딱지가 들어 떨어지면 또 상처가 나기를 반복했다. 나만 이렇게 불편한건 줄 알았다. 잘못 입은 건가 싶어서 몇번이나 고쳐 다시 입었지만 불편한건 매한가지였다. 결국 난 와이어가 있는 브라를 벗어던졌다. 옷장에 처박아두고 입지 않았다. 초등학생 떄 샀던 브라를 고등학생 때도 입고 다녔다. 당연히 몸에 맞을리 없겠지만 내 가슴에 맞는 브라는 불편해서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그맘때쯤 나는 남자애들의 평평한 가슴을 부러워했다. 가슴이 나와 있는 상태가 난 싫었다.
'쟤들은 뛸 때 가슴이 아프지 않겠지.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는데.'
'쟤들은 이 더운 여름에 브라 안 입어서 좋겠다. 브라 입으면 땀 배출도 안되는데. 심지어 가슴을 가릴려고 입은 브라인데 또 브라를 가리기 위해 셔츠를 입어야 하잖아.'
'쟤들은 수영복 입을 때 편하겠다. 물 묻은 원피스 수영복, 쟤들은 입어 본 적도 없겠지.'
'나도 셔츠 한 장만 입고 놀고 싶다. 쟤들은 셔츠도 안 입는데...'
남자애들이 부러웠다. 체육시간에 내려가는 브라끈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더우면 옷을 벗을 수도 있고 여름에 개수대에서 물 뿌리며 놀고 흠뻑 젖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어렸을 적 남자애들을 부러워만 했던 나는 그들처럼 자유를 누리기로 했다. 한창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내 주변의 페미니스트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간혹 스포츠브라나 브라렛, 니플 패치 등 대체 속옷을 입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정말 아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겉옷을 입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은 너무 편하다고 했다. 아직까지 따가운 주변의 시선을 감당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 그냥 얻어지는 자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대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겨울에 맨 가슴에 그냥 겉옷을 입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서 어딘가 휑한 느낌이 들었지만 밖을 돌아다니며 어느 순간 내 가슴에는 신경도 쓰지 않게 되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었고 어디 기대거나 드러누워도 등에 배기는게 없었고 어깨엔 더이상 상처가 나지 않게 되었다.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 아무도 내가 브라를 입었는지 안입었는지 몰랐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딱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난 여름에도 도전했다. 아직까지 흰티를 바로 입는 건 어렵지만 프린팅이 크게 되어 있는 티셔츠라던가 색이 있는 티셔츠는 브라 없이도 그냥 입는다. 가끔 속옷을 안 입었냐며 묻는 친구는 있지만 난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편하면 그만이지 않은가. 남들 시선 따윈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브라를 입지 않았을 때 난 더 행복하고 건강했다. 뛰면 중력에 의해 걸리적 거리던 가슴은 브라를 입지 않자 근육이 붙어서 훨씬 덜 아프게 되었고 소화도 잘 되고 무엇보다 브라를 입음으로서 동그랗게 커진 내 가슴을 보지 않아서 좋았다. 평생 남자애들의 평평한 가슴을 부러워했던 나로서는 그나마 나은 대책이 되었다.
물론 처음 탈브라 운동을 시작할 땐 엄마와 마찰이 있었다. 엄마는 브라를 착용하지 않으면 가슴이 쳐진다며 집 앞 슈퍼가는 짧은 시간에도 속옷을 입으라고 아우성이었다.
"엄마, 어차피 가슴은 나이들면 다 쳐져. 오히려 브라가 가슴 근육 형성을 방해한다고."
"그건 그런데... 밖에서 안하고 다니면 남들 보기에 안 좋아."
"다들 내 가슴에 관심 없어. 엄마 아들도 안하고 다니는데 엄마 딸은 왜 해야돼. 난 안 입어."
난 우리 엄마의 반응이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또래 중에서도 브라를 벗고 밖에 나가면 큰일나는 줄 아는 애가 많았다. 심지어는 집에서 잘 때 조차 브라를 벗지 않는다는 애도 있었고 집에 아빠가 있으면 브라를 못 벗는다는 애도 있었다. 가장 편해야 할 집에서 조차 숨 막히는 코르셋을 차고 있어야 한다니 여자로서 그래야 한다면 난 여자이길 포기하겠다.
언젠가 모 방송에서 설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브래지어는 악세사리예요. 입고 싶을 때 입고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옷에 매치하죠. 입고 싶지 않다면 안 입어도 되요."
브래지어는 악세사리일 뿐이다. 나는 그 말에 동감했다. 브래지어를 입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입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목걸이를 할지 말지, 귀걸이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스타일링 하는 것처럼 오늘 스타일링에는 브래지어가 어울리는지 그렇지 않은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린 브래지어를 입을 권리 못지 않게 브래지어를 입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건 선택할 수 있느냐는 거다. 악세사리를 선택하듯 브래지어의 착용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