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었을까
20대 때 길거리에 파는 옷을 사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대체 이런 사탕 껍질 같은 옷은 누가 사 입는 거야?'
뻣뻣하고 유연성 없는 옷의 질은 싼 값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한없이 작은 사이즈를 보면 말도 안 나온다. 아동복 아니야?라고 의심될 만한 사이즈의 옷들이 성인복으로 팔리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싼 가격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너무하다고까지 생각된다. 그런 옷가게에 들어가서 옷을 보면 S 사이즈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아무리 사이즈 종류가 없어도 S, M, L 정도는 구비해 두는 편인데 S 사이즈가 없다는 것은 그 옷가게가 중국 공장에서 옷을 떼와서 판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사실을 꽤나 최근에 알았다. 중국에서 S 사이즈는 여성복 33 사이즈라 한국에서는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33이라니.... 중국인들이 유난히 작은 인종도 아닌데 33 사이즈가 성인 사이즈라고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우리가 마른 연예인들의 옷 사이즈가 44 사이즈라며 44 사이즈가 마른 사람의 표본이 된 것을 생각하면 33 사이즈는 병이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그냥 큰 사이즈의 옷을 사 입으면 되지 않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거 아는가. 한국에서 빅사이즈의 옷을 사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정말 웃긴 건 한국의 빅사이즈가 해외에선 빅사이즈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없는 10대, 20대는 길거리 싼 옷들에 자신의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먹거리 문화도 바뀌고 이전에 비해 한국 사람들의 신장이나 몸무게 등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기성복 사이즈는 이전에 비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같은 M사이즈지만 이전의 옷보다 지금의 옷이 훨씬 작다. 심지어 여성복은 옷가게마다 사이즈 차이가 너무 커서 나만 하더라도 XS부터 M까지 입는다. 그러니 사이즈 미스로 환불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다른 가게에서 입던 사이즈가 작아서 맞지 않으면 금세 살이 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살이 쪘다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는다. 옷을 입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혐오를 하고 곧바로 다이어트에 돌입할 것이다. 그 몸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데도.
그렇다. 다이어트. 10 대건 20 대건 30대나 40대, 심지어는 50대인 우리 엄마조차도 다이어트는 평생의 숙제라며 언제나 새해 목표로 세운다. 건강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비만인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살을 빼는 다이어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심지어는 날씬한 사람들 조차 늘 언제나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20대 여성 10명 중 1명은 식이장애가 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의 식이장애를 고백하기도 한다. 단순히 우리의 욕망 때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44 사이즈를 유지하지 않으면 싼 가격의 기성복을 사입을 수 없고 비만인, 특히 비만 여성을 향한 사회의 시선이 절대 곱지 않으며 비만인 사람들은 나태하다는 엄청난 편견을 만들어내는 사회다. 트위터에서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프로아나'는 수많은 병폐를 낳았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이 사회가 단순히 살이 찐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린 키가 몇이든 45kg이어야 말랐다고 평가되고 체지방도 적어야 하지만 근육은 더 적어야 한다. 그래야 '여리여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이 먹지만 살이 찌지 않는 사람으로 보여야 했고 운동으로 마른 몸매를 가지면서도 근육질이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우린 항상 다이어트를 했다. 그놈의 '미용 체중'에 도달하기 위해. 이 사회에서 나태한 사람으로 도장 찍히지 않기 위해. 예쁘고 날씬한 여자는 고시 삼관왕과 같다는 거지 같은 말을 믿으면서 그게 온전히 나의 욕망인 양 우린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했던 내 친구 A는 대학에 들어가서 돌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A는 지극히 보통인 여자였다. 살이 찌지도 않았고 질병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미용에 딱히 관심이 있던 친구도 아니어서 난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새내기들 모아놓고 공연을 하는데 여자애들은 다이어트를 하는 게 좋겠대."
"누가?"
"선배들이."
이해가 안 됐다. 아니, 공연하는 거랑 다이어트랑 대체 무슨 연관성이 있는 거지. 마르지 않으면 공연 무대에 설 수도 없다는 건가. A는 열심히 운동하고 또 운동했다. A는 내 몸무게를 부러워했다. 내가 아무리 키가 A보다 작고 마름의 위험성에 대해 얘기해도 A는 듣지 않았다. A는 대학 시절 내리 남자들의 시선에 잡혀 살았다. 몇 년이 지나 A의 생일에 축하 문자를 보내주었다. 여전히 잘 챙겨 먹지 않는 건 똑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A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생각난다. 오늘은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었는지.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건 아닌지. 또 누군가의 한 마디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회사에서 늘 점심을 함께하는 선생님들은 모두 하나같이 다이어트를 한다. 그들의 건강 상태는 잘 모르지만 선생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살을 빼야 한다고, 요즘 너무 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보기에도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밥을 먹는다. 한날은 어떻게 하면 먹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기괴했다. 이 병든 사회가 우리를 얼마나 아프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써야 하는 직장인들이 사회에 발맞추어 살을 빼기 위해 소식을 해야 한다니. 그건 정말로 슬픈 일이었다.
나는 제때 적당히 먹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게 나에게는 다이어트다. 마른 것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모른다. 마른 몸이 얼마나 위태롭고 약한지를.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식을 했다. 그래서 스무 살 때는 살이 엄청 빠졌었다. 이삼 일씩 무작정 굶었고 배가 고프다 못해 아플 지경에는 초콜릿이나 비스킷 한 조각을 먹었다. 나는 일주일 만에 2-3kg이 빠졌고 살이 빠지면 활동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난 살이 빠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절식을 했다. 병이었다. 영양 결핍으로 살이 빠지니 위가 줄었다. 기분이 나아져서 밥을 먹으려고 해도 이전만큼 많이 먹을 수 없었다. 양을 원래대로 늘이는 게 고통이었다. 절식을 하고 나면 배가 고파 꼭 폭식을 했고 줄어든 위가 음식물을 받아내지 못해 다 게워내기도 했다.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또 탈모가 왔다. 스트레스성인지 영양 결핍 때문인지, 둘 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체도 적은 머리숱은 속절없이 빠졌다. 그러면 또 훤히 드러난 두피가 스트레스가 되었다. 또 추위를 극심하게 탔다. 원래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 아니었는데 살이 빠지고 나서는 추위를 엄청 타게 되었다. 옷을 다섯 겹씩 입고 나가도 추위에 달달 떨었다. 손과 발은 겨울만 되면 항상 얼어서 빨갛게 부어 있었다. 집에서도 양말은 필수로 신고 있어야 했다. 절식을 하는 날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 것만으로도 어지럽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걷는 것도 힘드니 운동은 당연히 못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렸으며 하루에 반 이상을 누워서 잠을 자며 보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말랐을 때 가장 불행했다. 그래서 나는 다이어트를 했다. 하루에 세끼는 못 먹더라도 두 끼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꼭 챙겨 먹었고 집 안에서라도 많이 걷고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귀찮아서 잘 먹지 않았던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아침에 일어나면 꼭 물 한 잔을 마시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회의 병을 우리 몸이 앓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말랐던 살이 쪘던, 아프던 아프지 않던 상관없이 당신은 그저 당신일 뿐이고 그 누구도, 설사 이 사회 전체라 할지라도 당신의 몸으로 당신의 인생을 저울질할 권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