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性으로 사는 모두에게
man [mæn]
1. 남자
2. 사람
'man'은 남성을 의미하지만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뜻할 때도 쓰인다. 그러니까 man은 가장 기본적인 사람의 형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man의 첫번째 사전적 의미에 해당하는 남성이다. 여성을 뜻하는 'woman'은 가장 기본적인 사람인 man에 접두사 wo-가 붙은 형태이다. woman은 기본적인 형태가 아니다. 파생어다.
언어에 성(gender)가 있는 라틴계 언어에서 대부분의 복수 표현은 남성명사의 복수 표현을 쓴다. 예를 들어 에스파냐어에서 소년(boy), niño의 복수 표현은 niños이다. 소녀를 뜻하는 niña의 복수 표현은 niñas이다. 그러나 소년과 소녀가 한데 모아져 있고 이를 가리키고 싶을 땐 소년의 복수 표현인 niños를 쓴다. 이는 남성 명사가 기본 형태이기 때문이다.
언어 뿐 만이 아니다. 사람을 나타내는 픽토그램의 기본 모양은 남성형이다. 여성을 나타내는 픽토그램은 화장실을 구분할 때나 보행자 표지판에만 쓰지 그 외에 사람을 나타낼 때는 쓰지 않는다(보행자 표지판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어른은 여성으로 묘사된다). 사람의 기본 형태가 남성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물론 사람형 픽토그램엔 성별이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픽토그램이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왜 일까.
그 외에도 의문스러운 건 매우 많다. 우리는 학교를 부를 때 ○○여중, ○○여고라고 부르지만 ○○남중이나 ○○남고라고 부르는 경우는 겨의 없다. 첫째 딸이 집안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동참하는 경우는 흔할 정도로 많지만 첫째 아들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동참하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같은 집안에서 쓰는 돌림자는 본디 아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딸은 이름에 돌림자를 쓸 수 없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어머니의 성을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성을 쓰는 과정은 힘들다. 어머니의 성으로 바꾸는 것보다 피 한방울 안 섞인 새아버지의 성으로 바꾸는게 더 쉬울 정도다. 성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은 여성이며 이는 신고되어 통계에 들어간 숫자일 뿐이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역사는 양적으론 거의 차이가 없는데 질적으론 엄청난 차이가 난다. 왜 일까. 어째서 여성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의 부차적인 성(제 2의 性)으로 살아왔던 걸까. 그리고 왜 여전히 그 간극이 존재하는 걸까.
여성으로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조금씩 다를지라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전혀 다른 경험을 해도 귀결되는 지점이 같거나. 그래서 난 더 많은 여성들의 경험이, 그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경험을 모아 통계치를 추산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인생이 전혀 다른 생뚱맞은 게 아니라 이 사회의 굴레 속에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게 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