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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y 16. 2024

아빠, 당신을 이해해 봅니다


“네가 보고 싶어서..”

처음 듣는 아빠의 감정이었다. 무뚝뚝하고 이기적이고 평생 내게 아픔을 주던 아빠의 입에서 내가 보고 싶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서 뭔가가 덜컹 떨어지는 것 같았다. 몇 주 전 아빠는 다시금 배에 통증을 느꼈다. 유별난 성격 때문에 배까지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CT촬영 결과는 암의 재발이었다. 자잘하게 퍼진 암이 다시 대장을 막고 있다며 재수술이 결정되었다. 힘든 과정을 다시 밟아야하지만 수술을 하면 나아지리라 생각하던 난 며칠 전 엄마의 떨리는 전화를 받았다.


“포비야 담당교수님이 갑자기 내일 보호자만 따로 보자고 하네...”

“왜? 무슨 일로?”

“자세한 얘기는 안하는데 아빠 상태보고 배 만져보고 하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젓더라고. 그러더니 내일 보호자면담을 좀 하자고 하셨어.. 엄마 너무 떨려서 교수님을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아.. 아빠 몇 달밖에 안남았다고 하면 어떻하니...흑...”     


엄마는 너무 많이 울고 있었다. 암환자의 보호자만 따로 부르는 경우는 보통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라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이럴수가 있냐며 엄마는 울고 또 울었다. 도무지 엄마 혼자 담당교수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난 면담 전까지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표를 바로 예매했고 그렇게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로비에 앉아있는 아빠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빠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측은하게 마른어깨, 듬성듬성 빠져버린 머리칼, 거뭇해진 얼굴빛, 초점 흐린 눈동자, 얼굴 여기저기에 퍼져버린 기미와 검버섯들은 아빠에게 성큼 다가온 죽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밥은 먹고왔냐고 힘없이 묻는 아빠의 표정은 아무 힘없는 어린아이가 날보며 애처롭게 울먹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푹꺼진 눈동자로 아빠는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소리 없이 계속 외치고 있었다. 평생 얼어붙어 있던 내 가슴이 쨍하고 금이 갔다.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아빠 왜 여기서 앉아있어.. 병실에서 기다리지..”

“우리 딸이 자꾸 생각이 나서... 네가 자꾸 보고 싶더라.. 이렇게 보니까 너무 좋네..”     


찔러도 피한방울 나오지 않을 듯이 건장했던 아빠는 어느새 찾아 볼수가 없었고 삶의 후회만 가득한 늙고 왜소한 남자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는 아빠의 눈엔 계속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아빠는 한평생 언니만을 바라봤다. 기대치에 비례해선지 불행히도 언니에게 더 많은 폭언과 폭력을 퍼부었고 그래서 결국 지금 언니와는 등을 진 사이가 돼 버렸다. 언니는 아빠의 투병기간동안 한번도 아빠에게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죽음을 앞둔 아빠는 언니에 대한 배신감과 절망감으로 더 빠르게 주저앉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언니에게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다. 아빠가 언니에게 보내는 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커오는동안 해왔던 모든 폭력에 대한 미안함, 가정도 직업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언니 미래에 대한 걱정, 고맙다는 답문자 하나라도 받고 싶은 애절함이 모두 담겨있는 돈이지만 언니에게 그 마음은 전혀 닿지 않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괜찮냐는 문자 한통조차 없을 수 있냐고 한을 쏟아내지만 언니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봐왔던 나로선 언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난 아빠에게 언제나 탐탁지 않은 딸이었다. 혼자 잘 살아내도 혼자만 잘 사냐는 질타를 받았고 말이 없던 내 성격 또한 속을 알 수 없는 계집애라며 못마땅해 하며 언니와 엄마나 잘 챙기라며 네가 뭘 할수있냐는 핀잔을 듣고 살았다. 난 언제나 말을 아꼈지만 2-3년 전쯤 아빠와 큰 싸움을 한적이 있었다. 나는 딸이 아니냐며. 도대체 내가 어디까지 해야하냐며 엉엉 울며 아빠에게 소리쳤었다. 아빠는 내가 내지르는 말들이 건방지고 괘씸해서 핸드폰으로 녹음까지 해놨다며 내게 협박 아닌 협박까지 했었다. 그 후론 내 마음은 완전히 차가워졌고 형식적으로 꼬투리만 잡히지 않을정도로 아빠를 대해왔다.


그랬던 아빠가 처음으로 내가 너무 보고싶었다며 나만 생각하면 눈물뿐이 나오지 않는다며 내 앞에서 울고 있다. 믿을 사람이 너뿐이 없다며. 자신이 가고나면 네 엄마좀 부탁한다며. ‘그애’에겐 이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다며(아빠는 이제 언니를 ‘그 애’라고 부르고 있었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를 안아주었다. 무섭고 멀고 단단했던 아빠는 내 작은 품으로도 안을 수 있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사그라 질것만 같았다. 암의 고통은 아빠의 몸보다 마음을 더 크게 아프게 하고 있었다.     


보호자 면담은 불행 중 다행으로 시한부판정은 아니었다. 대신 암이 재발했기 때문에 수술을 다시 해야 하고 열어봐야 알겠지만 수술을 못할수도 있고 한다해도 합병증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들이었다. 아빠의 병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수술이 어떻게 될지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건 내 마음속에 있던 아빠에 대한 감정의 변화다. 평생 미워해왔던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은 아빠를 안아줌과 동시에 사그라들어버렸다. 아빠의 모든 삶을 이해할 순 없지만 그는 내 아빠이기 이전에 나처럼 많은 실수를 하고 살아온 한 인간이였고 삶의 마지막에 가까이 온 그는 지금 많은걸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도 아빠를 그만 용서하고 싶었고 그를 위해서 내가 마지막으로 해 줄일 또한 그의 삶을 이해해주는 것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런 질타가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겠어. 화해하게, 자기 자신과 주위의 모두와···. 자신을 용서하고 그리고 타인을 용서하게. 시간을 끌지 말게, 미치. 누구나 나처럼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누구나 다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게 아니지.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아빠를 이해할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지금을 행운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쉽게 행운이라는 단어를 올릴 순 없지만 아빠의 삶을 더 이상 탓하며 살고 싶진 않다. 아빠의 병은 내게서 아빠를 앗아가겠지만 어쩌면 내게 아빠에 대한 기억을 새롭게 심어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많은 시간동안 아빠에 대한 원망의 기억이 아닌, 아련함이 깃든 서글픈 미소라도 올릴 수 있는 행운을 가져다주리라 믿어본다. 그의 고통이 너무 크지 않길 이제야,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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