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bi미경 Nov 07. 2024

아름다움은 우릴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 다니고 있는 수영장에는 나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나오는 고정멤버들이 있다. 내가 등록하기 2-3개월 전부터 다니고 계신 분들인데 평균연령 5-60대로 언니라고 불러야 할지 이모님이라 불러야 할지 살짝궁 애매한 나이대의 언니님들이다. 언니님들은 무척이나 활기차다. 샤워장에서부터 시작되는 만남은 반가운 인사와 함께 각자의 몸을 씻으며 오늘 할 수영에 대한 가벼운 얘기와 함께 시작된다. 수영장에서는 모두 꾸밈이 없다. 몸을 드러내는 건 당연하고 깨끗한 민낯에 머리통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수모까지 쓰고 나면 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든 나이는 어떻게 되든 전혀 상관없이 모두 다 그저 활력 넘치는 수영인일뿐이다.      


언니님들은 죽어라 늘지 않는 실력에도 매일 나와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언젠가부터 반갑게 맞아주었다. 본인들만 알고 있는 수영팁도 알려주고 영 실력이 늘지 않을 땐 본인들도 그랬다며 위로도 해주고 조금 잘하는 날엔 박수를 쳐주면서 함께 환호도 해준다. 처음에 나는 언니님들과의 나이차이로 인한 거리감 때문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얘기를 나눠볼수록 그들의 지혜로움과 밝음 활기참에 젖어 들어갔고 나 역시 어느새 언니님들의 나이 또래에 접어들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는 귀여운 40대를 추구하다 보니 내 실제 나이보다도 스스로를 어리다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수영장에는 2-30대의 젊은 여성분들도 많이 있다.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땐 그들의 탄력 있는 몸매와 민낯에도 탱글한 피부가 예뻐 보이고 부러웠다. 그래서 남몰래 그들이 입은 수영복 디자인과 비슷한 디자인을 눈이 빠져라 검색해 보다가 사본적도 있고(폭망 했다) 그들이 쓰고 있는 깜찍한 수모도 따라 사봤지만(죠막만해서 머리 터지는 줄) 내게는 이미 지나간 나이를 실감하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영을 다닐수록 점차 미의 기준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2-30대의 젊은 여성분들은 그저 그 나이대의 어림이 귀여워 보일뿐 오히려 5-60대로 접어든 우리 팀 언니님들이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유행에 따르는 화려한 수영복은 아니지만 본인의 몸에 잘 어울리는 차분한 색감의 수영복이나 은근히 수영복에 맞춘 심플한 디자인의 수모, 꾸준한 운동으로 적당히 탄력 있는 몸매, 다리에 새겨진 작은 타투, 놓치지 않는 작은 액세서리까지 그들에게서 풍기는 센스 있는 매력들은 그들의 나이와 어우러져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외형뿐 아니라 언니님들에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다. 바로 수영장까지 환하게 만드는 밝은 웃음과 스스럼없는 친화력이었다. 수영선생님을 웃겨주고 잘하는 회원들에겐 박수를 보내주고 실수하는 회원들의 긴장감까지 풀어준다. 언니님들의 이 밝은 기운덕에 수영수업시간은 항상 웃음이 넘친다.      


“포비야~! 같이 오는 남자분이랑은 관계가...”

“아 네네 제 남...”

“남매 맞지!! 어쩐지 둘이 너무 닮았더라고~! 남매가 어찌나 사이가 좋아 보이던지 얼굴도 쏙 닮아선 분위기도 비슷하고 호호호호호 역시 내가 보는 눈 하나는 정확하다니까~!”

“아..아니 언니 그게 제 남..매가 아니라 제 남편이에요. 제가 남편이랑 그렇게 닮았는지는 평생 몰랐는데 아하하..하하하...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하하..하하하”

“어머나 남편이였어어어?? 아니 어쩜 그리 닮은 사람이랑 결혼을 했대그래~!! 다들 주변에서 남매라고 오해하지?? 닮은 사람끼리는 잘 산다던데 둘이 딱 어울리네그래~!!”

“그렇게 닮았을 줄이야... 남편은 눈도 새똥만한데.. 하하하..하하하......”     


나이가 어렸을 때는 5-60대 만의 스스럼없는 이런 대화방식이 부담스럽고 그저 피하고만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그들 무리에 섞여 깔깔 거리며 함께 대화를 하고 그들의 지혜를 얻고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들의 삶의 태도에는 긍정이라는 단어가 항상 깔려 있다. 어떤 사람을 대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캐취하고 웃음으로 풀어낸다. 그들을 볼 때면 마치 긴 세월 잘 다듬어진 옥구슬을 보는 것 같다. 화려한 빛을 내진 않지만 은은한 옥색 빛이 그들과 그 주변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며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빛깔은 20대의 화려함 못지않게 빛이 난다. 나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낯을 가린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하던 얼굴 근육을 풀고 요즘엔 내가 먼저 인사를 걸고 웃음을 나누려 한다. 처음 수영을 시작하고 헤맬 때 내가 그들에게 응원을 받았듯이 누군가 힘들어하면 나도 그랬다고 조용히 응원을 해준다.      


어느새 언니님들을 알게 된 지 4개월 차. 일요일 빼고는 매일 만나는 사이지만 우린 아직도 서로의 나이도 직업도 취미도 거주지도 알지 못한다. 여전히 맨몸에 수모를 쓰고 민낯으로 서로를 반겨준다. 

“언니, 언니는 어쩜 이리 곱게 연세가 드셨어요. 볼 때마다 너무 이뻐요.”

“어머머머. 정말정말? 포비는 아직 젊고 날씬하잖앙~ 나도 수영 더 열심히 해서 살도 빼고 더 이뻐질꺼양~ 호호호호”

“언니는 지금도 충분히 이뻐요~ 저는 언니처럼 곱게 이쁘게 나이들꺼예요!”

“호호호호 오늘 너무너무 이쁜말을 들어서 수영하다가 나 날아가는 거 아니야? 호호호호~”     


젊음은 우리를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우리를 지나치지 않는다. 20대든 5-60대든 노년이든 우린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나의 내면에 끝없이 물을 주고 아껴주고 다듬어주면 내면에서 풍겨 나오는 고운 기운이 나를 여전히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여유를 찾기위해 아침 6시에 수영을 나간다.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름다운 언니들의 미소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