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상어예요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그 시절엔 속셈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엄청 많았다. 나 역시 수학하고는 담을 쌓아도 절대 넘을 수도 무너지지도 않는 철벽담을 쌓고 살았던지라 엄마는 숫자 앞에 만 있으면 눈빛이 흐려지는 나를 더는 못 보겠던지 그런 날 끌고 속셈학원에 던져 넣어주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수업을 받으며 시간만 흘러가던 어느 날 웬일로 원장님께서 소풍을 가자는 제안을 했다. 난 신이 났다. 소풍장소는 그 시절 흔하게 갈 수도 없었던 수영장이었다. 소풍도 신나는데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수영장이라니. 난 엄마를 졸라 수영복과 수모를 겨우 얻어냈고 처음 입어보는 수영복의 쫀쫀함은 내 심장을 더 쫀득쫀득한 설렘이 가득 차도록 만들어주었다. 요즘 수영장엔 놀이기구들이 가득한 거대한 워터파크 형태로 지어져 있지만 그때는 파란색 페인트가 가득 칠해진 넓은 사각 공간에 무릎정도 오는 물이 부어져 있는 초간단한 형태의 수영장이 대부분이었다. 난 너무나도 설렜다. 수영을 해본 적도, 수영장 물에 발을 담가본 적도 없었지만 수영장에만 가면 몸이 저절로 떠오를 것만 같았고 수영을 하지 못해도 친구들과 물장구만 쳐도 그저 신나고 재미났었다.
잔뜩 흥이 올라 물에서 허우적거리며 놀고 있는데 더 흥이 오른 원장님께서(남자분이셨다) 아이들을 한 명씩 물에 던져주기 시작했다. 무릎정도의 물높이였기에 아이들 역시 무서울 게 없었기에 물에 빠질 때도 여러 웃긴 자세를 취하며 떨어지는 모습이 마냥 웃기고 즐거웠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난 나는 비행기 자세를 취했다. 쓔웅~! 난 (내 상상엔) 우아하고 빛보다 빠르게 물 위를 날랐다. 하지만 상상은 1초 만에 사라졌고 난 어느새 수영장 물에 얼굴을 거꾸로 처박고 살려달라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냥 일어서면 되는 것을 난 물속에서 머리를 담근 채 꼬로록꼬로록 거리며 살려달라고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놀란 선생님이 서둘러 내 머리통을 잡고 일으켰을 때 난 수영장 물을 입과 코에서 마구 뿜어냈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꺽꺽거리며 마구 울어재꼈다. 이날 처음 접시물에 코 박고도 죽을 수 있다는 게 무엇인지 죽음의 문턱이란 게 무엇인지 온몸으로 경험한 나는 그날 이후로 수영장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
결혼 전엔 운동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낮에는 사회생활만으로도 너무 바빴고 밤에는 회식에 빠져 사느라 더더욱 바빴던지라 운동은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인정하긴 싫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앉아서 글만 쓰는 내 하루 일과를 온몸이 말해주는 것인지 슬라임과 악수라도 나눌 기세로 늘어져가는 아랫배와 마냥 커져만 가는 엉댕이를 볼 때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필라테스나 요가는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 운동인지 별로 운동이 힘들지도 않고 재미가 없어서 중도포기를 많이 했다. 남은 운동이 몇 가지가 없었다. 등산, 걷기도 생각해 봤으나 등산 후 내려와서 먹을 막걸리와 전을 생각하자 이건 아닌 것 같고 헬스는 도무지 지루해서 운동을 하면서도 잠이 쏟아져서 이것도 내 길이 아니었다. 남은 건.. 슬프게도, 비장하게도 수영뿐이 없었다.
난 실로 오랜만에 깊은 고민이란 것에 빠져들었다. 수영을 해볼 것인가. 말 것인가. 괜히 시작했다가 첫날 초등학교5학년 때처럼 수영장물에 코 박고 초라한 황천길행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는지. 고민이라곤 없는 여자가 참으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오밤에 식탁에 앉아 맥주를 깐 채 중얼거리며 고민하는 나를 본 남편이 이게 무슨 섬뜩한 짓이냐며 그냥 하던 데로 하라고 지금 와서 웬 수영이냐고 말려댔다. 말려대는 그를 보자 오기가 생겼다. 황천길이 됐든 꽃길이 됐든 시작해보고 싶었다. 두려움은 선입견일 뿐이다. 어떤 두려움이든 막상 마주해 보면 그 실체는 존재하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걱정할 시간에 하루라도 빨리 행동하면 내가 했던 걱정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걱정거리가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냉큼 동네 수영장을 검색했고 더 끌면 안 될 것 같아서 전화로 바로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수영이란 건 자고로 새벽수영을 해야 뽀대도 나고 참된 수영인인 것 같으니 아침 7시 타임으로 등록을 했고 뭐든 장비발이 빠지면 서운한 것이니 곧바로 이어서 수영복과 수모 물안경을 사들였다.
첫 수업날 내 마음가짐은 거의 국가대표 수영선수였다. 결의를 다진 채 여전히 쫀쫀한 수영복에 몸을 밀어 넣었으며 타이트한 모자 덕에 올라간 눈을 다시 잘 내린 후 물안경도 이마에 잘 고정시킨 채 초급 레일 앞에 다가갔다.
“처.. 처음 왔는데요.
“아 네 회원님 한 바퀴 걸어갔다 오실게요~!”
걸어? 어딜 걸어? 수영하러 왔는데 왜 걸어?
무슨 소린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있자 선배언니님들이 먼저 초급레일 물속을 걷기 시작했고 그제야 나도 눈치껏 그들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 바퀴 돌고 차례대로 와서 선생님 앞으로 줄을 서는데 난 해맑은 표정으로 걸었던 자리 그대로 서있었다. 그러자 옆에 서계시는 이모님께서 조용히 속삭였다.
“뒤로 가세요.”
으응? 왜? 나 여기 이 자리 좋은데?
두리번거려보니 수영실력이 가장 좋으신 분이 맨 앞에 서계시는 것이고 그 뒤로는 실력에 따라 자리가 정해지는 무언의 룰이 있었다. 난 당당하게도 3번째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뒤로 밀려서 가는 길이 어찌나 길던지. 10명의 회원들을 지나 지나서야 맨 꼴찌자리인 13번째 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영 얼마나 하세요?”
“하나도 못해요. 아주 하~~~~~~나도요! 물이 공포스러워요!”
내 긴 대답을 들으신 건지 못 들으신 건지 수영선생님은 그저 미소만 지으신 채 내게 말했다.
“호흡 연습하실게요. 물속에 얼굴 담갔다가 오른쪽으로 들며 호흡하기를 20번 반복하실께요~!”
어푸어푸어푸. 아니 고작 얼굴 담갔다가 들어 올리며 숨 쉬는 게 왜 이리 어려워? 코에 물은 왜 들어가고 숨은 왜 가빠져? 숨쉬기 연습을 하는 내 얼굴은 허예져갔고 죽을까 봐 난간을 꼭 붙들고 있는 내 두 손 역시 핏기하나 없이 허옇게 변해갔다.
“아니 회원님~! 왜 이리 벌벌 떠세요? 호흡 연습하다가 물에 빠지는일 절대 없습니다~! 두 손 좀 놓으시고요~ 자 이젠 발차기 연습 하실께요~!”
푸닥푸닥푸닥푸닥. 내 거친 발차기로 인해 사방에 물이 튀기 시작했고 그 물들은 초급레일에 서있던 선배 언니들의 얼굴에 철썩거리며 날아가 붙어댔다.
“회원님 회원님! 힘으로 하시면 안되시고요~! 자 이렇게 허벅지를 써서 부~드~럽게!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부~드~럽게! 하실 수 있으시겠죠? 자 30번 반복하실께요~!”
이날 난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처음 느껴보는 수영장 물은 이빨이 딱딱 부딪힐 만큼 춥게 느껴졌고 역시나 처음 해본 호흡법으로 인해 초급레일의 물을 반은 마신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내 모습은 물에 불은 좀비였다. 흐느적거리며 이불을 온몸에 감싸 안고 조용히 감기몸살약을 꺼내 입에 한 움큼 털어 넣었다. 식탁에 오그리고 앉아 다시금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놈에 수영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비장하게 나갔다가 비참하게 돌아온 내 모습을 본 남편은 혀를 끌끌 차며 그러게 괜한 거 하지 말라니까 라며 나를 놀려댔고 그의 모습을 보자 또다시 오기가 올라왔다. 내 기필코 물에 떠보리라. 시작을 했으면 끝을 보고 말 것이다. 그 끝이 결국 포기가 될지언정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보기는커녕 물에 발만 담그고 와선 겁에 질려서 포기할 순 없었다.
수영강습은 일주일에 3번이었으나 난 자유수영을 더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수영을 나갔다. 강습날 배운 것을 다음날 자유수영 때 연습을 했고 그렇게 반복적으로 매일 지독히도 수영을 했다. 발차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만신창이로 허우적거리던 내 다리는 한 달이 지나자 모터 달린 발차기 실력을 내뿜으며 소리 없이 강하게 물살을 가르게 되었고 2달이 지나자 목숨줄처럼 잡고 있던 킥판을 던져버리고 드디어 맨몸으로 물에 뜨게 되었다. 그날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잘 되지 않았던 팔 돌리기가 어느 날 갑자기 바퀴가 돌아가듯 회전하기 시작했고 모터 달린 다리와 바퀴 달린 팔 돌리기는 서로의 힘이 합쳐져 나를 한 마리의 상어로 만들어주었다. 250M 레일을 상어로 돌변한 채 단숨에 완주하자 지켜보시던 선생님과 선배언니들은 오올~!!을 외치며 엄지척과 박수를 날려주었다. 선배언니들은 처음엔 내가 하루 이틀 나오다가 안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고 했다. 물에 대한 공포심이 누가 봐도 엄청 심했고 배우는 속도도 빠르지 못해서 금세 하다 말 것이라고 생각했다는데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어 나오는 나를 보고 지금은 매일 아침 밝게 웃으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준다. 지금 나는 자유형을 넘어 배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이라면 접시물에 코 박고 황천길 가는 곳이라 생각했던 내가 이젠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물살을 가르고 있다. 세상 기적 같은 일이다.
지금은 남편도 함께 수영을 다니고 있다. 시큰둥했던 남편도 수영 후 활기차진 내 모습을 보고 얇은 귀가 요리조리 흔들렸고 결국 나를 따라 수영강습에 등록했다. 요즘 우리의 대화 주제는 반 이상이 수영자세이다. 이 자세를 하면 더 잘 나가고 이자세를 하면 가라앉는다며 서로 열을 올리며 자신만의 비법을 들어보라며 열띤 토론을 한다. 부부가 같은 취미가 있으면 좋다는 얘기를 듣기만 했는데 막상 내가 겪어보니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운동으로 인해 생활이 활기차지고 같은 관심사로 인해 은근한 동질감으로 똘똘 뭉쳐진다. 용기 내서 시작하고 행동하고 실천한 덕에 우린 물속세상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함께 알게 되었다.
망설일 땐 우선 시작해 보자.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것들을 주변인들과 함께 나눠보자.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더 많은 삶의 변화가 다가온다. 내일 아침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수영장의 상쾌한 물살냄새가 벌써 내 주변을 맴도는 것 같다. 그 언젠간 더 넓은 제주 바다로 나가 한 마리의 상어가 되어 유유히 바다를 헤엄칠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