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명품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서 있었다. 산 지 얼마 안 되어 보이고 딱 봐도 꽤 값이 나갈 것 같았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와, 저거 비싸겠다. 저거 살 돈이면 우리 식구 어디를 며칠 여행할 수 있을 텐데'였다.
그리고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명품 가방을 든 저 사람은 자기만족이기도 하겠지만 필시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을 텐데. 훗, 계속 쳐다보는 걸 보니 부러운 모양이구나? 라며. 그런데 어쩌면 나는 여자로 태어나서 저런 걸 하나도 가지고 싶지 않은 거냐. 아무리 현실적이라고 해도 조금 부러울 수는 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은 걸 보니 역마살이 단단히 끼었구나.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이 비행기 표를 예약한다. 물론 여행이야 항상 가고 싶지만 비행기표를 끊는 그 순간은 내가 정말 뭐가 씌었구나 싶게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해내는 일이다. 남편과 미칠 듯이 상의를 하고(여행지나 일정에 대해, 내 마음에는 거의 결정되어 있지만 마지막 컨펌을 받는 정도랄까) 결제를 마치고 나면 그제야 현실로 돌아온다. 돈은 어쩌지? 아이들 컨디션은 괜찮을까?
나는 여행 준비를 길게 하는 편이다. 평소에도 늘 떠나고 싶은 사람이라서 여윳돈도 조금씩은 준비해둔다. 내가 여행을 가면 주위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간다고 생각하지만, 넉넉한 돈과 시간을 가지고 여행 다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뭘 살까' 보다는 '어딜 가볼까'가 먼저 떠오를 뿐이다. 덕분에 우리 집 가구들은 아주 저렴이고, 앞으로도 10년쯤은 바꿀 생각도 없다.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종종 듣게 되는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외국 나가니 면세점에서 명품 하나 사겠구나'라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만약 나에게 가방 살 돈이 있다면 그곳에서 더 있다가 오겠어." 그런 이유로 나는 그 흔한(?) 명품가방도 없다. 결혼 전 하나 가져봤던 것은 직장을 그만둔 후 사용할 일이 없어서 다른 집으로 보냈다.
비싼 가방을 사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볼 때마다 너무나 행복하다면, 그로써 이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나의 관심사가 아닐 뿐.
이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신혼여행은 '합법적으로 돈을 쓰며 여행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행 경험이 별로 없던 남편을 꼬드겨 신혼여행을 배낭여행으로 둔갑시켰다. 첫날밤은? 두바이 공항에서의 노숙이었다! 남들이 럭셔리 풀빌라에서 로맨틱한 신혼여행을 즐길 시간에 우리는 걷고 헤매고 여행했다. 그러면서 나는 평생을 함께 할 여행친구를 길들였다. 결혼을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잘 맞는(내 일방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여행친구를 선물 받았다. 그와 함께한 몇 번의 여행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경험하고 발을 맞추어 본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