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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쉬는 돌 Jun 26. 2023

03 안녕 취리히

첫 도시에서 첫 숙소 찾아가기




아침 5시 50분에 눈이 떠졌다. 응? 이상하네, 알람이 왜 안 울렸지? 설마 늦잠??!! 삼초쯤 회로를 돌려본다. 맞다, 6시에 알람이 울릴 예정이구나.


오늘의 일정은 시내버스 3 정거장 - 공항 리무진 버스 탑승 -  공항 도착 후 아침식사 - 12시간의 비행이다. 아이들에게 "애들아, 비행기 타러 가자!" 하니 금방 눈을 뜬다. 어제 몇 번이나 확인한 짐을 챙겨 현관 밖으로 나선다. 달그락 달그락 캐리어의 바퀴 소리에 긴장과 설레임을 더해본다.


시내버스에 짐을 올리는데 끙차, 배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아이 둘과 캐리어 두 개를 끌고 탄 아줌마에게도 버스 기사님은 친절하지 않다. 아이들이 채 기도 전에, 짐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버스는 출발한다. 공항 리무진 타는 곳까지는 걸어서 15분, 버스로 세 정거장이다. 택시를 타기에는 거리가 짧아 기사님께도 죄송할 것 같고, 혹시 택시가 잡히지 않을까 봐 버스를 선택한 터였다. 버스 기사님들 한결같으셔라. 10초만 기다려주시면 안전하게 앉을 수 있다고요~~!!




아이들은 대한항공을 처음 탄다. 그동안 몇 번의 여행을 다녀왔으나 가성비의 여왕인 엄마 덕에 저가 항공사를 이용해 왔다. 남편은 출장 차 가는 것이라 회사에서 대한항공을 예약하였고, 돌아오는 일정을 우리 여행에 맞춰 변경해 주었다.(휴가까지 붙여주신 회사.. 감사합니다!) 나는 그동안 남편이 야금야금 모은 마일리지를 털어서 보너스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래서 결국 아이들도 대한항공을 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쓸데없이 길게 해 본다.


비행기에 탑승하니 너무도 친절하고 멋진 남자 승무원이 오셔서는 두 아이에게 뽀로로 장난감을 선물로 주신다. 어린이 탑승객 선물이라며. 1호기의 표정을 살펴보니 복잡 미묘하다. '선물'이라니 감사하기는 한데 뽀로로라니, 나처럼 형아한테? 그런데 어른이 주신 거니 받긴 받아야겠고 자존심에 스크레치는 나고 아 죽겠네, 하는 표정. 신이 난 엄마는 놀려댄다. "어머나, 좋겠다 우리 아들. 선물도 받고! 이 비행기 너무 좋다. 그렇지? 크크크"



아이들은 처음 보는 좌석 부분의 모니터에 입이 벌어졌다. 평소에 TV 보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집과는 달리 무제한 시청을 허락하니 아이들의 기분이 비행기와 함께 하늘을 날아간다. <밥 주는 비행기>를 처음 타 본 아이들은 야무지게 컵라면까지 얻어먹고 스마트한 세상으로 들어가신다. 주는 밥을 잘 먹고 화장실도 알아서 간다. 비행기에서 아이와 놀아주지 않아도 이렇게 조용히 갈 수 있다니. 12시간 45분의 비행이 이렇게 수월하다니. 와, 요 녀석들 정말 많이 컸구나. (=미디어의 힘 만세다)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 창문이 비로 젖는다. 에고 비가 오네. 취리히 우리 집까지 잘 갈 수 있을까. 공항 기차를 타고 시내로 가는 동안 첫 스위스를 만난다. 안녕, 반가워. 잘 부탁해!


안녕 잘 부탁해


취리히 중앙역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십 분 이내라고 했다. 문제는 중앙역이 너무 크다는 것. 출구도 여러 개라 내가 어디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 구글 맵을 켰으나 어디가 동서남북인지.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향을 탐지하는데, 내가 움직일 때마다 캐리어 두 개와 아이 두 명이 기차놀이를 하듯 함께 움직인다. 얘들아, 엄마도 이십 년 만이야. 잠깐 시간을 좀 주겠니?


엄마가 한 번에 방향을 잡지 못하니 아이들은 슬슬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불안한 눈으로 엄마를 쳐다본다. 장거리 비행 후 첫 숙소를 찾는 것은 정말 막막하다. 방향치에 피곤함까지 더해지니 잔뜩 날이 선다. 겨우 방향을 찾아 역 밖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차가운 비가 우리를 막아선다. 낯선 곳, 해질 무렵, 비. 나랑 싸우자는 느낌이다. 내 목에 감겨있던 머플러를 풀어 2호기에게 칭칭 감아주고 우산을 하나씩 들게 했다. 1호기는 한 손에 우산, 한 손에 작은 캐리어 하나. 2호기는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으로는 엄마의 크로스백 끈을 잡았다. 나는 유러피안에 빙의하여 맨 몸으로 싸우기로 했다. 우산보다 더 중요한 구글맵을 손에 들어야 하므로.


다행히 비는 제대로 맞짱을 뜰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취리히의 저녁은 어쩌면 너무나 예뻤을 터. 하지만 우리는 전투적으로 걸었다. 중앙역 앞의 수많은 트램과 버스의 소용돌이를 뚫고. 마침내 발견한 취리히의 우리 집! 리셉션에 다다르기까지는 긴 계단이 기다렸지만, 야호! 드디어 도착이다.


다음 날은 맑게 개인 취리히, 이제야 우리를 받아주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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