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등학교의 "아침독서 운동"에 대한 아주 짧은 소견
제 조카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팬데믹 이후 한 달에 한 번 친정식구들과 줌으로 가족모임을 하면서 3월 한 달 동안의 학교생활에 대해 물어봤는데 동생이 "아침 독서 운동"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현해서 놀랐습니다. 비록 한 명의 케이스이니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블로그 이웃이나 혹 다른 학부모님께도 의견을 묻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기로 했어요.
조카의 학교는 아침 1교시 전에 "아침독서 운동"으로 시작한다고 해요. 학생들이 집에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읽는 시간입니다. 동생의 불만과 그에 대한 저의 의견을 써 볼게요.
어차피 집에서 가져간 책을 읽는 거면 왜 굳이 학교에서 읽냐? 집에서 읽으면 되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든 남자아이에게 로봇처럼 조용히 10-20분 동안 책을 읽으라고 하면 조카가 꼼지락거리고 그러면 선생님에게 혼이 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일을 매일 해야 하는가?
판단과 지적은 쉬운 법이에요.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을 공격하거나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님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생에게 "아침독서 운동"에 대해 듣고 나서 저의 첫 반응은 "초등 1학년이 independent reading을 벌써 한단 말이야?" 였어요. 한국 학생들이 취학 전에 이미 글을 뗀다는 것은 물론 들어 알고 있었지만 글을 읽을 수 있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은 다르잖아요. 떠듬떠듬 아는 글자를 읽는 정도로는 책을 스스로 읽을 수는 없지요. 이제 글자를 겨우 읽는 아이들에게 10분의 혼자 독서는 긴 시간입니다. 그 시간 동안 로봇처럼 앉아있으라고 강요를 한다니. 그러다 원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카가 독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까 걱정이 태산입니다. 책을 손에 쥔 채 야단을 맞는 상황 자체를 만들면 안 돼요. 등교 후 1교시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을 통제, 관리하기 위해 "아침 독서"를 오용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미국의 교실에서도 "아침 독서 운동"이 있습니다. Drop Everything And Read를 줄여서 DEAR라고 부르는데 요즘 미국 공교육도 학년별 평가시험 대비 등으로 DEAR 시간이 줄어서 걱정이 늘고 있어요. 시험 대비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DEAR를 했을 때 학력 평가에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하고요. 미국 교실에서 DEAR를 하는 초등 고학년도 반드시 자리에 앉아서 로봇같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누워서 읽는 아이도 있고 벽에 기대앉아 읽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생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조카의 경우 집에서도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러니 여동생이 학교에서 읽을 책을 왜 집에서 가져가는가를 궁금해할 만도 합니다. 줌 미팅을 통해 "스스로 원하는 책을 골라서 읽는 것"에 대한 장점을 설명을 했습니다만 아쉬운 점은 학기 초에 담임선생님께서 "아침독서 운동"의 취지와 의도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입니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모든 reader는 스스로 자신이 읽을 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교과과정을 위해 학년별 기준에 맞춘 책이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는 건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 셈이죠.
미국 초등 1학년 교실에서 DEAR를 한다면? 아마 학부모님들의 불만이 폭주했을 거예요. 왜냐면 스스로 책을 못 읽는 아이들이 대부분일 거거든요. 그래서 DEAR는 independent reading level을 넘긴 3학년부터 보통 하게 됩니다.
1학년이면 아직 충분히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 나이입니다. 스스로 떠듬떠듬 읽는 글밥의 책은 이야기의 서사가 충분치 않아 흥미가 떨어집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많이 들어야 해요. 한 반에 학생 수가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교실 앞에 옹기종기 앉아 선생님이 들려주는 책을 듣는 시간이 정말 정말 필요해요.
요즘 초등학생들의 학력격차가 심해서 선생님이 읽어주는 책을 이미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아이들 때문에 다 같이 모아서 한 책을 읽는 것이 힘들다고요? 저라면 좀 번거롭지만 책에서 글자 부분을 가리고 그림만 확대해서 스마트 보드에 띄워서라도 책을 읽어주겠어요. 글자 조금 빨리 읽을 줄 아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 책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다음에 어떻게 될지 유추하고, 등장인물의 마음을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초등 저학년이 반드시 키워야 하는 문해능력입니다. 글자를 하나도 못 읽어도 위의 세 가지 문해 능력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어요.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이야기를 듣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선생님이 1교시 시작 전에 들려주는 이야기를 놓칠까 봐 지각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많은 교실은 행복한 교실일 거예요.
공부기술자가 아닌 창의적인 학습자를 키워내는데 "아침 독서 운동"이 귀하게 사용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