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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사와동화 Nov 18. 2023

리프카의 편지

캐런 헤스 | 207쪽 | 사계절 | 2005년 6월

감명 깊게 읽었는데... 현재는 품절되었다.     


줄거리     


『리프카의 편지』(Letters from Rifka)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에 살던 유태인 소녀 리프카의 러시아 탈출기이다. 이 작품은 1919년 2월부터 1920년 10월까지, 러시아를 떠나서 미국으로 향하는 열두 살 소녀 리프카의 여정을 담고 있다. 사촌 언니 토바가 준 푸슈킨 시집 여백에 빼곡히 적어 내려간 리프카의 편지들은 험난한 탈출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각 장마다 한 구절씩 인용된 푸슈킨의 시구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러시아는 1905년과 1917년 두 번의 혁명을 겪으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다. 

리프카는 러시아 사람들이 유태인에게 행하는 폭력과 차별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빠를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고,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살림을 싹쓸이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밉고 싫다. 군대에 끌려간 오빠가 군에서 탈출해 집에 돌아오자, 아빠와 엄마는 가족 모두의 목숨을 구하려면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세 아들이 먼저 가서 살고 있는 미국행을 택한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리프카 가족은 폴란드에 도착하지만, 그 곳에서 식구 모두가 발진티푸스에 걸려 뿔뿔이 흩어진다. 식구들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 다시 만나게 되지만, 미국에 가는 배표를 사려는 순간 리프카는 떠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다. 기차에서 만난 폴란드 여자에게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피부병이 옮은 것이다. 결국 리프카만 남고 식구들은 모두 미국으로 떠난다. 홀로 남은 리프카는 벨기에로 가서 치료를 받는다. 의지할 곳 하나 없고, 말도 통하지 않지만 마음을 열고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리프카는 전혀 모르는 남이라고 해도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렵게 리프카는 미국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엘리스 섬에 도착한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없는 리프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이유로 리프카를 미국으로 들여보낼 수 없다고 한다. 리프카는 낙담하지만, 섬에 있는 병원에 머물면서 저능아 취급을 받는 러시아 꼬마 아이의 마음을 열게 하는 등 기적과 같은 일들을 해낸다. 

마지막 입국 심사 날 리프카는 "머리카락이 없어도 얼마든지 똑똑하게 살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친다. 그 동안 리프카의 명석함과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지켜 본 의사와 주위 사람들은 그런 리프카를 인정하고, 리프카는 드디어 입국허가서를 받게 된다.           



책 속 문장들

(군인들에게 쫓기고 감시 당하는 장면)


* 무거운 군화 때문인지, 순시를 하느라 기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10쪽)          

* 순찰대원들은 총검으로 화물칸에 있는 짐꾸러미, 짐, 상자들까지 하나하나 찔러 보았어. 그 잔인한 칼질이 나탄 오빠를 찾아내는 방법이었던 거야. 칼날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며 온 숲에 메아리쳤어.

순찰대원들이 재빨리 내게로 왔어. 한 명은 면도도 안 했는지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에 입술이 두툼했어. 내가 누군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마음을 바꾸었는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만져 보는 거야.

순찰대원은 계속 느끼하게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데 그 손에서 청어랑 양파 냄새까지 나서 정말 역겨웠어.

난 털이 무성한 못생긴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했어.

만약 순찰대원이 한 명뿐이었다면 어떻게 해 봤겠지만, 한 명이 더 있었어. 갸름한 얼굴에 등이 곧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눈은 봄날 에메랄드 색 얼음과 뒤엉킨 차가운 테테레프 강물 같았어. 내 머릿결 따위엔 관심도 없었지.

“걔는 내버려 두고 화물칸이나 뒤져 봐!”

내가 말을 너무 빨리 한다는 걸 느꼈어. 집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사울 오빠가 엄청 짜증냈을 거야. 

하지만 천천히 말할 수가 없었어.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거야. 순찰대원들이 내 말을 계속 듣고 있게 할 수만 있다면, 기차를 못하게 시간을 벌 수 있잖아.

기차는 선로에서 잠시 뒤로 미끄러지는 듯하다가 드디어 천천히 베르디체프를 뜨기 시작했어.

언니도 알지? 내가 얼마나 훌륭한 달리기 선수인지. 사울 오빠를 따라잡으려고 늘 뛰어다녔잖아. 움직이는 기차에 올라타는 것쯤은 식은죽먹기지, 뭐. 우선 내 짐보따리를 들어 기차 칸에 던지고는, 발 밑에 있는 돌이 튕겨 나갈 정도로 잽싸게 몸을 날려 기차에 올라탔어. 그러고는 배로 슬금슬금 기어서 잔뜩 웅크린 채로 엎드려 있었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기차 칸 속으로 아무한테도 안 보이게 몸을 파묻고 나니까 화물칸에서 나는 냄새가 무척 푸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어. 외할머니네 집에서 키우는 소 말이야, 프루실러. 그 소 생각이 나는 거야.(14~25쪽)     


* 별 문제 없이 폴란드 국경까지 왔으니 다행이다 싶었어.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사납게 생긴 보초병들이 우리 앞으로 오는 거야.

“기차에서 내려!”

땅딸막한 아저씨가 명령했어. 얼굴은 둥그스름하고 뺨은 불그레한 게, 날카로운 목소리와는 영 딴판이었어.

“짐 모두 내려놔. 옷은 다 벗고! 의사가 너희들을 검사할 거다.”

상상이나 했겠어? 기차역 마당 한가운데서 옷을 홀랑 벗으라니... 언니, 언니도 등이 구부러졌나 보려고 옷을 벗고 의사 선생님한테 진찰받은 적이 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잖아?

“시키는 대로 해! 안 그러면 모두 러시아로 돌려보내고 말 테다!”

보초병이 어찌나 무섭게 소리치던지 정말로 우리를 러시아 경찰에 넘기고도 남을 것 같았어.(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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