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또 고마우니, 다 좋다

스승의 날에

by 역사와동화

스승의 날이라고 만나 주다니, 고마워

“딱히 스승의 날이라고 만나고 싶은 좋아하는 선생님도 없고, 선생님은 한번 보고 싶었어요.”

예쁘고 고급스러운 음식점 앞에서 만났다. 자리에 앉고 주문을 한 뒤에 선물을 내밀었다. 향초가 있는 작은 스탠드였다.

아이들은 수업을 끝냈지만 엄마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었다. 서로 안 만났어도 서로 알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마 어머님들이 마련한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감사했다.

나를 만나 준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해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가르친 아이들이다. 보통 역사 수업을 시작하면 주제별 박물관 1년, 시대별 박물관 1년, 그리고 역사 논술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은 역사 논술을 끝내고 인문 책 읽기 수업까지 같이 했다. 최종 인문 책 읽기 수업까지 같이 한 아이는 세 명이었다. 세 명 중 한 명은 작년에 대학교를 들어가고 두 명은 재수를 했다. 그리고 올해 모두 대학교에 들어갔다. 1년 동안 엄마들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기에 같이 기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겉모습은 변했어도 아이들 고유의 특징들은 변하지 않았다. 만나기 전 연락할 때부터 세 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특성대로 행동했다. 조심조심 나한테만 모임 장소를 물어본 아이, 인사만 한 아이, 단톡방을 만들어 장소를 정한 아이. 이녀석들, 안 변했네, 만나기 전부터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을 만나러 갈 때 많이 설레었다. 아이들이 숙녀가 되었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했다. 나도 아이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다. 아이들을 만나고 나는 풋 웃고 말았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나이든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가 꾸민다 해도, 그렇다고 뭘 그리 꾸미지는 않았지만, 막 피어나는 아이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게 나도 참 철이 없지 싶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어색할까 봐 조금 걱정을 했는데, 어제 만났던 아이들 같았다. 자기네들도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어색하면 어쩌나 했는데, 금방 편해졌다고 했다.

핫한 성수동에서 인스타에 올리면 딱 좋을 곳에서 밥을 먹고, 역시 사진 찍기 아주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은 사진을 계속 찍었다. 계속 사진을 찍어서 서로 교환하고 사진을 고르고. 나로서는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재미있고 좋았다. 만나주는 게 고마우니, 다 좋아. 더군다나 스승의 날이라니! 하는 마음이었을까.

“얼굴 각도를 잘 맞추어야 해요. 그렇게 찍으면 각지게 나오거든요.”

아무렇게나 찍어도 예쁘기만 하구만. 너는 너무 예쁜데 너만 모른다고 말해 주었다.

“제 꿈이 남녀공학 들어가서 밴드부 들어가서 남자 친구 만드는 거였는데, 여대를 가는 바람에 다 틀렸어요. 그래서 연합 동아리에 계속 응모하고 있어요.”

“사진 보세요. 제 남자 친구예요. 남자 친구 얘기 우리 엄마한테는 하지 마세요. 남자 친구 있다 하면 엄마가 늦을 때마다 남자 친구랑 있었냐고 걱정하세요.”

“저는 여자 친구들과 놀러다니는 게 아직 더 재미있어요. 전공에는 조금씩 재미가 붙기 시작했어요.”

다 다르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예의상이었겠지만 나의 수업에 대해서 좋았던 기억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쁜 기억으로 자리하지 않은 게 고마웠다. 진짜 이날은, 비 오는 것까지 감사했다.



뭐든지 다하는 다해 모임


수업할 때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송구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스승의 날 같은 날 선물을 받으면 더 송구스럽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하고 관심도 많지만 한 달에 한 번, 짧으면 1년, 길면 3~4년 같이 수업하는 것으로 선생의 지분을 주장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떤 아이일까 알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어떤 특징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마음을 다친 아이도 보인다. 아이들은 수업하는 동안에도 많이 성장한다. 부모님도 아시겠지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한다고 할까. 아이들과 수업하는 것도 좋고, 어머님들과 아이들 얘기 하는 것도 좋다.


수업을 하다 보면 친구하고 싶은, 좋은 어머님들을 많이 만난다. 아무리 그래도, 수업이 마무리되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아도,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과 헤어지는 건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어렵다. 좋은 어머님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쉽다.


세 명의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나에게서 배울 것은 다 마무리되었기에 떠나보내는 게 당연하고 앞으로 얼굴 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근데 세 명 아이의 어머님들이 너무 좋아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한편에는 아이들이 일순위인 어머님들도 자기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살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모임을 만들자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 이름은 다해. 뭐든지 다한다는 뜻으로 지었다. 책이든 영화든 여행이든 자기 순서에 맞춰서 마음대로 해보는 것이다. 모임의 주관자는 돌아가면서 했다. 주관자가 정하는 스케쥴을 따라가는 것이다. 모임을 의논해서 정하면 이상하게 비슷한 곳에서 비슷하게 계속 모인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다해라는 모임에 맞게 모이자고 이렇게 정했다. 그랬더니 모임이 다채로워졌다. 음식점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곳에 가고 누구는 영화를 예약하고 연극도 예약하고 소풍도 가고 여행도 갔다. 여유가 없으면 김밥을 싸갖고 와서 공원에서 먹기도 하고 여유가 있으면 뮤지컬도 예약하고 자기 형편에 맞춰 모임을 주관했다. 각자 자기 차례가 오면 어디서 먹을지 무엇을 할지 고민해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머님들을 계속 만났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계속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다 아이들을 만나도 많이 알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날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다해 모임 엄마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선생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부족한, 아주 조금의 지분으로 나는 잘 성장한 아이들을 만났다. 다해 모임이 계속되는 한, 아이들의 남자 친구 얘기도 들을 거다.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한 아이는, 이제는 자기 집에서 같이 밥을 자꾸 먹고 싶어한단다. 근데, 조금 남편이 신경 쓰인단다. 남편이 너어무 예쁜 자기 딸을 데려가는 남자 친구에게 아직 맘을 못 내주겠다고 불편하다고 한단다.

앞으로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까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을 공짜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많은 것들을 공짜로 얻는 기분이다. 새삼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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