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외로움을 느꼈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와 부모님, 오빠 둘, 언니 둘, 막내인 나까지 다해서 8명.
이렇게 대가족이었는데 집안이 좀 엄했고
언니 오빠들이 어찌나 기가 센지
나도 밖에 나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꽤 센 편이었는데 집에만 오면 깨갱이였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외로웠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한다
가족이 그리 많은데 왜?
사람이 많다고 해서 외롭지 않던가
센 사람들과 살다 보면 자연히 여려지고 소심해지기까지 한다.
더욱이 태어나자마자 죽을랑 말랑 하던 나는 툭하면 잔병치레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수두 그러니까 마마가 걸렸다.
둘째 오빠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고, 나를 업고 보건소로 향했다. 그날 밤 오빠 등에 업혀 울면서 가는데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살았다고 .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어쩌나 싶었다. 아직도 흔들거리는 오빠 등에서 소리내어 울며 지나쳐가던 저녁 길이 생생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2달 동안 학교를 못 갔다.
내가 수두에 걸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위에 2살 터울 언니와 중고등학생이었던 오빠 둘까지 전염됐다.
졸지에 수두 환자가 집안에 4명이나 생겨버렸다.
근데 그때도 난 정도가 엄청 심했다.
다들 며칠 만에 가볍게 툴툴 털고 정상생활로 돌아갔는데 몸이 약한 나만 또 죽을랑 말랑~
생각해 보니 그때가 나의 첫 번째 아홉수였다.
완전히 다 낫기까지 오래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앓는 동안 겨울방학이 됐고 그나마 결석일수를 줄일 수 있었다.
난 온몸에 이상한 약을 발라야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그냥 누워만 있었다.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책상 위에 책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책장에는 '양치는 언덕', '달과 6펜스', '쿼봐디스',.. 이런 알 수 없는 책들이 있었다.
뭔 뜻인지도 모르는 책들이었다.
그래서 책상 위에 올라가 책을 살펴보았다.
글씨가 얼마나 작은지 깨알 크기만 했다.
그림은 한 개도 없었다.
그러나 워낙에 심심했던 나는
그거라도 읽기 시작했다.